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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떼뜨망 Apr 04. 2024

남자가 떠나면 남는 것

고집쟁이는 교환학생(13): 튈르리 정원, 몽소 공원

“아름다운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확히 두 부류로 나뉘고, 난 내 위치를 잘 알고 있어.

난 창작자가 아닌 감상자야.”


고등학생 시절 내 꿈은 작가, 영화감독… 파고들면 가장 괴로운 직업들이지만 피상적으로는 자유롭고 멋지기만 한 지위들에 끌렸다.

창작자와 감상자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누구든 창작자를 선택하지 않을까? 영향이든, 상처든, 인상이든 남에게 가하는 위치가 당하는 삶보다 매력적일 수밖에.


사실 아이디어는 많고, 어떻게 글이나 시나리오를 엮어본 16% 짜리 샘플은 내 노트 앱에 잔뜩 굴러다닌다. 그런데 이미 좋은 글들, 좋은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다시 읽으면 유치하고 조잡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지만, 남자는 떠나며 썩 괜찮은 플레이리스트를 남긴다. 내게 음악은 와인 같은 것이라, 비싼 거 싼 거 차이도 잘 모르겠고 어느 정도 괜찮으면 마실 만하다. 좋은 음식, 인상적인 연애와 곁들이면 뭐든 어느 정도 맛있기도 하고.


어렸을 적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읽던 나는 결론을 추리하려는 버릇이 남았는지, 탐정처럼 가수들의 디스코그래피 하나하나를 핥으며 정답을 찾으려고 했다. 질문은 항상: “우리의 사랑은 왜 정지됐을까?”


그 노래들을 반복 재생하면 가사 사이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은 사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로 이루어졌으니까… 상대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1세대 힙합의 리듬이나 80년대 음악 특유의 감성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연애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유치원 바다반 수지라는 친구가 딸꾹질이 나면 코를 꼬집고 숨을 참고 10까지 천천히 세어보라고 조언했다. 난 아직도 딸꾹질이 나면 코부터 집는다.

고등학생 때 영현이랑 야자 시간에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일부러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교정을 누볐다. 다시 교실로 돌아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짜며 “반지의 제왕” 속 골룸 같아진 서로를 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았다. 얼마 전 파리의 예측 불허한 소나기가 쏟아질 때 우산을 꺼내지 말까 - 잠깐 고민했다.


수지는 십몇 년간 못 만났고, 영현이랑은 성인이 되고 나서는 예전처럼 붙어 다니지 않게 됐다.


그런데도 내 일상과 버릇에는 그들의 조각이 묻어 있어,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나를 매개로 세상에 기록된다. 언젠가 나는 내 유치원생 아들에게 딸꾹질이 나면 코를 꼬집으라고 조언하겠지. 수지가 이걸 알면 기분이 어떨까?

내 취향과 플레이리스트도 누군가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에 기록될 거라고 상상하면 기분이 묘하다.




나는 감상자다.

튈르리 정원의 녹음과 색색의 튤립과 웃기게 생긴 까마귀,

초록색 금속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하는 중국인들,

파란 하늘과 마그리트 그림 같은 구름에서 아름다움이 보인다.



나는 기록자다. 

몽소 정원의 강이 흐르는 자국,

추상적인 듯 융통성 없는 조각 앞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하는 남성,

조랑말을 타며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폭소가 사라지는 게 아프다. 





근본적인 창작자 - 그것이 자연이든 빅뱅이든 신이든 영적인 무언가든 - 를 제외하면 결국 우리는 모두 감상자다.


봉준호는 마틴 스코세지한테 영향받았고, 스코세지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를 존경했고...

세잔느, 피카소, 헤밍웨이, 피츠제랄드는 서로 영감을 뜯어먹으며 생존했고.

내가 세상을 감상하듯 누군가도 날 감상하고.


감상이 아닌 창작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결국 잊히기 싫어서였다. 너무 허무하다.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주구장창 듣다가 질려서 잊고 있다가도, 언젠가 다시 떠오르면 처음만큼 인상적인 플레이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대신 나는 의욕적인 감상자, 평화로운 중재자, 섬세한 기록자.

관찰하고 써 내려가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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