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쟁이는 교환학생 (15): 브런치 1주년을 기념하며
"My registered name should be Yejee, but I'd much rather be called Djuna. (서류에는 이름이 '예지'로 되어 있을 텐데, 영어 이름 '쥬나'로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매 수업이 시작하기 전, 교수님들께 미리 말씀드렸다. 외국인 친구들이 발음하기 쉽도록 입맛에 맞춘 건 아니었다.
다만, 난 변하고 싶었다.
난 항상 날 사랑했지만, 교환학생을 시작한 시점에는 '예지'가 싫었다.
마음 약한 예지, 방향성이 희미한 예지, 무엇 하나 제대로 끝맺음도 못 하는 예지...
난 내가 ‘예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원했다.
'쥬나'는 차분하고 냉철하고 섹시한, 포용력이 넓지만 자기만의 선은 확실히 긋는, 그런 사람일 계획이었다.
글로벌 소비자 행동론 (Global Consumer Behavior) 수업의 첫날이었다.
교수님은 머리에는 히잡을, 얼굴에는 뿔테 안경을 쓴 흑인 여자분이셨다. 그녀는 개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커다란 에너지 덩어리라고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사람이었다. 말 한마디마다에 교환학생 수업이라고 쉽게 가르칠 생각이 없다는, 우리를 계몽시키겠다는 강인한 의지가 녹아있었다.
그래서 첫 수업시간 이후 바로 수업을 철회했다. (^^ 주말에 보강 수업을 두 번 잡으시겠다고 하셔서… 죄송합니다…)
그 결정은 차치하고, 교수님의 첫 수업은 참 인상적이었다.
"Nothing is 'normal' for everyone. That's what makes culture so special. However, I've noticed one similarity. Almost every culture hides a special meaning within peoples' names. (모든 문화권에 걸쳐 '정상적인' 건 없어. 문화가 정말 특별한 이유 중 하나지. 하지만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사람의 이름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더라."
그녀는 교실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이름을 검색하게 시켰다. 아시아 문화권에서 온 친구들은 거의 이미 이름의 한자어 뜻을 알고 있었고, 나 또한 그랬다.
밝을 예, 뜻 지.
머릿속으로 반복했다. 밝은 뜻, 밝을 뜻, 밝힌 뜻, 밝힐 뜻…?
하루에도 수십 번 불리고, 종이에 수천번은 썼을, 이미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두 글자가 오늘은 낯설었다.
어렸을 때부터 썼던 Djuna의 뜻이 궁금해져서 검색해 봤다.
The light of the moon, 달의 빛. 내 이름의 뜻을 발표했더니, 안경으로 두 배는 확대된 교수님의 눈이 반짝였다. 눈의 흰자보다도 더 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으셨다.
“네 한국어 이름과 영어 이름의 뜻이 참 비슷하다!”
내가 쓴 에세이를 인터넷에 공개하기 시작한 지 어느새 1년이 됐다.
글은 항상 써 왔다.
초등학생 때는 제네릭한 줄거리의 소설, 중학교 때는 다시 읽으면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로 현학적인 에세이.
고등학교 때 비로소 내 글들을 처음으로 남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생겼다.
고등학교 1학년, 교내 백일장 대회였다. 인문학에 강점을 둔다는 교내 비전에 따라 전교생이 필수로 참여해야 하는 대회였고, 그런 만큼 정말 아무도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다. 내 주변에 앉은 친구들이 밈(meme)에 가까운 운문을 작성하고 서로의 격자무늬 종이를 돌려 보며 누구의 글이 더 선생님들께 황당하게 비칠지 진지한 논의를 하고 있을 때, 난 진땀을 흘리며 두 시간 내내 이백 자도 안 되는 글을 지우개와 연필로 거듭 다듬었던 기억이 난다.
생활기록부를 위해서 거의 모든 대회에 출전했었는데, 그 백일장만큼 진지하게 임한 적은 없었다. 이상하게 너무너무너무너무- 잘하고 싶었다.
장님과 귀머거리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귀머거리가 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1학년 8반의 시끌벅적한 쉬는 시간 중 눈을 감고 매끈한 플라스틱 책상에 이마를 맞대면 내 두 귀는 편견투성이 눈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듣는다. 날 둘러싼 목소리들은 내 기억에 흔적을 남긴다. 나는 그 흔적들을 손님으로 반긴다.
(중략)
한때 나는 아름답지 않은 손님들을 거부하려고 했다. 매일 밤 뒤척이며 엄마의 “넌 의지가 없어.”와 박지연의 장난 투의 “네가 그것 말고 잘하는 게 뭔데?”가 문을 쾅쾅대며 침입할 것이 너무 두려웠다. 그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17살은 아무것도 아니다. 동시에 17살은 모든 것이다. 손님들은 내가 상상도 못 할 깊이를 가진 것들이다. 손님들이 나에게 어떤 선물을 들고 올지 예측할 수 없지만 그들은 나를 내가 원하는 이상향으로 인도해 줄 것이다. 그래서 손님들은 나의 악몽처럼 문을 허물고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눈을 감고 마중 나가야지만 손님들은 웃으며 내 팔짱을 끼고 같이 걸어준다. 지금 그들에게 위로받고, 상처받고, 사랑받고, 증오당하고, 비판받고 싶다.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공부하고, 대화하고, 농담하고, 토론한다. 자기 전에 웃으며 손님들을 마중 나간다. 몇 번의 “어서 오세요!” 후에야 나는 어른이 될까?
해외에 살다 보면 아주 간단한 물건에서 부모님 생각이 자주 난다.
화장실 청소를 하며: 화장실이 저절로 깨끗해지는 게 아니구나. (당연히) 엄마는 이걸 이십 년간 매주 두 번씩 해오셨구나.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며: 유럽 내에 다니는 비행기라도 은근히 비싸구나, 아빠 덕분에 내가 이런 경험도 해보는구나.
마트에서 발견한 토마토 식초: 초등학생 때 유럽 여행에서 사 와서 샐러드에 넣어 먹었었는데. 유럽의 조각을 들고 온 것 같다면서 여행이 끝나고도 몇 달간, 식초를 끝낼 때까지 들떴는데.
마지막으로 유럽을 온 게 십여 년 전이라서일까?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삼십 대이셨을, 지금 내 나이와 그리 차이 나지 않는 젊은 부모님의 과거가 자꾸 떠오른다.
스물여덟, 나랑 세 살 차이밖에 안 나는 젊은 엄마는 배 속에 9개월간 날 품고 ‘예지’라는 이름을 지으며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최근에 이사를 갈 때, 내 책상 밑에서 아마 엄마도 잊으셨던 것 같은 육아일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첫 장에는 임신테스트기를 통해 나의 존재와 처음 만난 엄마의 손글씨가 있었다.
빼곡히 적혀 있었다 - 잘 키울 자신이 있는지도 확실치 않고 앞으로의 시간이 너무 두렵지만, 그래도 선물처럼 와줘서 고맙다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순간 너무 부끄러웠다. 난 그 작은 수첩을 더는 못 읽겠어서 덮고 한참을 울었다.
스물여덟 살에 생명체 하나를 품은 엄마는, 그 무거운 두려움 속에서도 와줘서 고맙다고 말할 줄 아는 엄마는, 아이의 이름을 ‘밝은 뜻’이라고 지은 엄마는 얼마나 강한 사람이었던 거지?
나를 조금이라도 싫어하거나 부족하게 여겼던 순간들이 떠오르며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럽고 부끄러웠다. 스물여덟 살, 두려움과 기대감과 희망과 크나큰 사랑을 느꼈던 우리 엄마에게 못할 짓이었다.
사과 먹으라고 나오라는 엄마 말을 듣고, 알았다고 외친 후,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안 운 척하면서 솔로지옥을 보면서 사과를 먹었다.
내가 혼자 자주 글을 쓴다는 걸 먼저 알고 있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R이 내게 처음으로 꾸준히 글을 공개하라고 제안했다.
당시에 꽤 오래 준비하던 시험도 망치고, 꽤 오래 이어왔던 인연도 망했던 때라 ‘예지’가 정말 끔찍하게 싫었다. 그 시험과 그 인연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면, 난 대체 뭐지?
인생에서 가장 자존감이 낮았던 시기였다. 도대체 누가, 도대체 왜 ‘예지’가 쓰는 글을 읽고 싶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구독을 한다. 도대체 누구지?
주변 친구들과 안 친한 지인들도 내 글을 읽고 잘 쓴다고, 흥미롭다고, 계속하라고 응원한다. 도대체 왜지?
나를 정의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날 떠났지만, 내가 진심으로 작성한 글들, 내가 정말 흥미를 갖고 하는 일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걸까?
무언가 속에서 꿈틀 했다.
그 이후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비중을 내 삶에서 더 키웠다.
5년간 소속됐던 동아리에 공연을 올렸다. 무대 조명의 열기와 매주 주말에 한 연습과 날 따라준 팀원들과 친구들의 함성과 그들이 줬던 꽃다발… 아직 내 배경화면은 그날 와준 친구들 사진이다.
재밌어 보이는, 내가 흥미 있는 분야의 인턴을 경험했다. 들어갔던 미팅들과 따로 한 공부와 생생하게 들었던 조언들과 그때 만난 인연들.
그리고 교환학생을 왔다.
그리고 사람들한테 Djuna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엄마의 육아일지가 기억났다.
부끄럽고 죄송스럽고 가슴이 저릿했고 입에서 단내가 났다.
이름은 아름답다.
부모님 두 분의 마음, 절대적인 사랑, 그렇기에 절대 잃어버릴 수 없고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자기애의 근거가 담긴 것이다.
나와 닮기를 바라고, 내가 사랑하는 이를 닮기를 바라면서도 우리와는 다르게, 조금 더 잘 살기를 간절하게 바란 그 이름.
당신의 이름은 뭔가요?
어떤 뜻을 가지나요?
친구들이 믿는 당신만큼,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 당신을 이루는 것들만큼, 당신과 몇 살 차이 안 나던 젊은 부모님의 두려움만큼,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나요?
꾹꾹 담아 부르는 이름 두 글자에 얼마나 깊은 염원과 소망이 담겨 있는지 기억하자. 그리고 날 더 소중히 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