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대기업 취업기 한국피앤지 P&G 취준 후기
"Hello world! FUCK YOU!"
J는 조수석 창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어 우리를 재빠르게 지나치는 어두운 고속도로를 향해 소리쳤다. 검고 건강한 긴 생머리의 끝이 뒷자리에 앉은 내 얼굴을 찰싹찰싹 때렸다.
옆에서 운전대를 잡은 S는 "뭐야" 하며 웃었다.
로스쿨을 다니는 R은 아쉽게도 부산으로 내려갔지만, 나머지 셋은 모일 수 있었다.
우리는 8년 전 고등학교 같은 반에서 만났다.
녹차 버블티를 나눠 먹고, 점심 메뉴가 별로일 때면 옥상에서 각자 가져온 반찬을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먹던 생그러운 17살의 우리는, 어느새 퇴근 후에 즉흥적으로 을왕리 드라이브를 가는 성인 여성들이 되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 "쉘 위 댄스"에서 베벌리는 묻는다. "사람들이 왜 굳이 결혼하는지 알아?"
상대의 대답을 듣고선 고개를 젓고 정정한다: "그건 우리 모두 증인이 필요해서 그래. 서로의 웃음과 눈물을 지켜봐 주는, 보잘것없는 인생의 증인이 되어주기 위해서."
대학교에 입학해 첫 MT를 갔을 때도, 첫 남자친구들과 헤어질 때도, 졸업하고 취준 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증인이었다.
7월 1일, 여의도 빌딩 숲 한가운데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불안감을 억누를 때에도 J는 어김없이 내 한숨의 증인이 되어줬다.
J는 두 달쯤 뒤에 독일로 떠난다. 아마도 몇 년은 못 돌아올 거다. 이 두 달은 그녀와 보내는 마지막 여름일 수도 있다.
작년 여름 이맘때쯤 같은 건물에 위치한 투자 회사에서 인턴십을 했다. 당시 난 많이 무기력한 상태였다. 1년간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다가 포기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CPA 공부는 러닝머신 위에서 가장 빠른 속력으로 달리는 기분이었다. 다리는 지칠 대로 지쳐가지만 눈앞 풍경과 주변에서 같이 뛰는 사람들은 변함이 없어서, 제자리에서 진전 없이 정체된 것 같은 막막함에 숨 막혔다.
인턴십을 시작하며 하루 평균 15시간을 보내던 도서관을 벗어나 대리석 바닥과 멋진 뷰를 가진 건물에서 매일을 보내게 되니, 조금 우습지만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취미도 발전시키고, 색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내 세상이 확장되는 기분이 들었다.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기분...
7월 1일에 피앤지 인턴십을 시작하며 똑같은 건물로 출근했지만, 마음가짐과 부담감은 비교할 수 없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1. 내가 지원한 부서는 Analytics & Insights 부서였는데, 함께 지원한 사람들 중 내가 가장 애널리틱스 경험이 부족했다.
2. 한 인턴 당 하나의 프로젝트를 온전히 맡아서 해결해야 하는데, 내가 받은 프로젝트의 목적도 이해가 안 되어 과정도 예상하기 어려웠다.
3. 교환학생을 다녀온 지 두 주쯤 지나 바로 일을 시작했는데, 내가 멍청해졌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그전 날은 J의 생일이었다. 작은 케이크를 준비해 갔고, J는 후- 하고 촛불을 불어 껐다.
나는 J의 소원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고등학교 시절, J는 장난으로 자기는 40살이 되면 안락사하러 스위스로 갈 거라고 공표했다. S는 자기도 따라갈 거라고 동의했다. 늙기 싫다며.
그럼 난 "내가 너희 없으면 왜 살아!" 할 때도 있었고, "난 내 인생의 전성기가 40살이었으면 좋겠는데." 하며 반박할 때도 있었다.
7월 중순, 중간 프로젝트가 일주일 정도 남은 시점에 J를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처음으로 부모님께 소개해드리고 함께 식사를 했다.
J와 한 번이라도 대화를 나눠 본다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빠는 J가 집에 돌아간 뒤 내게 "예지도 J처럼 사회생활 해야겠다"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저는 주변 사람들한테 예지가 어떤 사람인 지 얘기할 때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제가 원래는 비관적인 감정이 많은 편이었는데, 예지는 사소한 것도 되게 아름답게 보거든요. 인생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사람이 예지예요."
고등학교 시절에 많이 감정적이었던 J는 인간관계에 서툴고 정을 주는 법을 모르던 내게 의지했던 것 같다.
빈 교실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J를 위로한 기억이 났다. 또 대학교 입학 면접을 보기 전 날에 어김없이 우리 집 우체통에 초콜릿과 응원 메모를 넣어 둔 J의 따뜻함이 기억났다.
난 J를 통해 사랑이 뭔 지 배웠다.
8년간 우리는 닮아갔고, 닮아지고 싶은 사람으로 발전했다.
엄마가 물었다.
"J는 예지가 나중에 어떤 남자친구 만났으면 좋겠어?"
"예지는 누가 봐도 잘난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요. 듬직하고 자상하고 똑똑한 사람? 그리고 잘생겨야 돼요."
나는 격하게 동의했다. 그리고 이어 대답했다.
"나는 J가 같이 있으면 편한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 그 사람 앞에서 자기 본연의 모습이 나올 수 있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J는 이미..."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닭볶음탕 앞에서 울었다. J는 날 비웃었다.
중간발표가 코 앞으로 다가오며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벅참도 조금은 묻어났던 인턴들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 게 느껴졌다.
사내 카페에 모여 삼삼오오 떠들던 무리들은 점점 흩어졌다. 같은 부서 인턴 한 명은 항상 출근과 동시에 혼자 쓰는 부스로 들어가 버려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간헐적으로 고3 시절로 돌아간 꿈을 꿨다. 불안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프로젝트들은 대개 가설을 설정하고 검증하는 과정으로 이뤄졌었는데, 내가 만든 중간발표 자료를 읽을수록 처음부터 잘못 접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되는 데이터가 은근히 방대해서 어떤 정보가 중요한 지 핵심을 파악하고 인사이트를 뽑는 게 서툴렀다. 하지만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방향성조차 못 잡았다.
A&I 부서 분들은 모두 정말 친절해서 내게 힌트를 주고 도와주고 있다는 느낌은 받았는데, 그게 어떤 조언인 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중간발표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