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낯을 가리는 편이다.
굳이 나를 낯가리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리며 스스로를 틀에 가두고 싶지 않지만, 이것은 그저 사실일 뿐이다.
그렇다고 소극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새롭게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익숙해지는 것에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다.
나의 낯가림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들과는 여러 번 만나고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도 쉽게 마음을 열기가 어렵다. 오히려 상대방은 아무렇지 않은데 그들 앞에만 서면 혼자 자꾸만 뚝딱거린다. 그렇게 상대방과 혼자만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자기 전에 나의 뚝딱거림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어 이불 킥을 찬다.
그런가 하면 때때로 첫 만남에도 낯가림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분명 처음 봤는데 전에 몇 번 본 사람인 마냥 장난치게 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왜 그들에게는 첫 만남에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까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최근에 깨달은 것은 내가 상대방을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때는 상대방의 어떤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게 되는 때이다. 같은 어려움이 있거나,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에 대한 경계가 빠르게 사라진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나에겐 좀처럼 드문 일이 긴 하다.
내 안의 이 소심이의 존재를 알게 된 지 사실 나도 얼마 되지 않았다. 예전의 나는 내가 낯가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 극 외향인 내 주변 친구들 뒤에 숨어서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주길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혼자 처음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감당해내야 했던 고등학교 편입 시절, 꽁꽁 숨어있던 나의 소심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새로운 고등학교 모든 것이 새로우면서도 동시에 초면이던 때였다. 나는 내가 당연하게도 잘 적응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그때의 나는 내가 마주한 모든 것에 낯을 가렸다. 어쩌면 처음으로 마주한 진짜 내 모습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힘들었기에, 밥을 같이 먹으러 가자는 한마디를 내뱉을 수 없어서 기숙사 방에 혼자 숨어있었다.
내 안의 소심이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나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이러한 나의 모습을 다루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낮을 가리고 상대방을 경계했다면, 이후 나는 그 경계심을 낮추고 먼저 말을 걸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미국에 오고 난 후,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이후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맞이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점에 서있는 것에 너무나 큰 기대가 있었지만, 또 내 마음속 한편에 있는 소심이가 나를 자꾸만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에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미국 생활은 내가 경험해 온 것과 또 달랐다. 무엇보다 가장 다른 부분은 '언어'였다. 내가 하는 생각을 영어로 온전히 전달하는 것에 아직 어려움이 있다 보니, 혹여나 내 말이 의도한 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또한 너무나 당연하게도 자신의 모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자꾸만 위축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은 사라지고 막연한 두려움에 이야기하는 상황 자체를 회피하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한 학기를 지내고 첫 방학을 맞이했다. 방학이 되니 지난 내 모습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내가 되돌아본 한 학기 동안의 내 모습은 마치 좀비 같았다.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건강도 관계도 모두 포기하고 그저 수업 스케줄에 주관 없이 끌려가는 좀비였다.
그제야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학생인 나에게 중요한 것은 성적이 맞지만, 내가 그것만을 바라보고 미국에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미국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하며 배우기 위함이었다. 그동안의 나는 내 안의 소심이를 탓하며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미국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학기를 시작하며 나는 조금 달라졌다.
여러 가지 변한 것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나는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였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상황을 피하지 않기
이야기의 맥락을 놓치더라도 끝까지 듣기를 포기하지 않기
나 자신이 서툴게 느껴지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기
정말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나니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들이 점점 편해지고 나도 그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내 안에 소심이는 여전하다.
그렇기에 새로운 무언가를 만날 때에 낯을 가리고 경계하는 것도 여전하다.
성격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니기에, 낯가리는 성격을 마음먹는다고 뚝딱 바꿔버릴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되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나는 지금의 과정을 '내 안의 소심이 사회화 과정'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낯을 가리더라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어울릴 줄 알고, 관계로 인하여 받는 스트레스를 스스로 다루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이다.
이 과정을 무사히 보내고 나면, 한층 발전된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