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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카 Braka Mar 21. 2023

걸어서 샌프란시스코 속으로

미국 유학생의 샌프란시스코 여행

샌프란시스코를 생각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안갯속에서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금문교

경사진 오르막을 열심히 오르는 케이블카

알록달록 촘촘히 줄지어있는 집들


이외에도 샌프란시스코에는 영화는 물론 엽서나 그림에 등장했던 예쁘고 유명한 장소가 많이 있다. 나 역시 이번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준비하며 그곳의 명소를 방문할 것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내 머릿속 샌프란시스코는 맑은 하늘과 빨간 금문교, 그리고 아기자기한 집들이 줄지어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샌프란시스코의 새로운 매력에 빠지게 될 줄은.





머릿속의 평화롭고 화창했던 샌프란시스코는 불과 여행 첫날을 지나기도 전에 깨졌다.


비가 분무기처럼 뿌렸다. 우산을 쓰기도, 그렇다고 쓰지 않기도 애매한 날씨. 하늘은 뿌옇고, 첫날이라고 정성 들여 드라이한 머리는 풀린 지 오래였다.


다른 것보다도 날씨에 대한 배신감이 무척 컸다. 내가 학교를 다니고 있는 위스콘신주의 매디슨은 겨울이 매우 길고 춥다. 연말 연초는 물론 봄학기가 시작하고 끝나는 직전까지 눈이 오는 곳이다. 그렇기에 나는 추위와 강한 바람, 무엇보다 흐린 하늘에 질릴 대로 질려 있었다. 봄방학 여행지로 샌프란시스코를 선택한 것도 매디슨의 추위와 다르게 따뜻하고 맑은 날씨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런 내 맘도 모르고 눈치 없이 뿌려대는 비가 원망스러울 차였다. 비가 온다고 해서, 하늘이 흐리다고 해서 밥을 굶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 그리고 이번 여행을 함께 하게 된 같은 학교 동기 친구는 썩 기분 나쁘게 뿌리는 비를 뚫고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유명하다는 브런치집으로 향했다.


비 오는 샌프란시스코


브런치 가게로 걸어가는 길에 우리는 우연히 한 터널을 마주했다. 최근에 샌프란시스코 마약과 노숙자의 심각성에 대한 뉴스를 많이 접해서 이 어두컴컴한 터널을 여자 대학생 둘이(심지어 아시안) 지나가도 되나 순간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 버스를 타기엔 멀리 와버렸고, 브런치 가게로 가는 길도 이 터널이 유일했기에 긴장된 마음으로 터널 속을 걸었다.


긴장되었던 마음과는 달리, 낮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도 드문드문 옆을 지나가고 웬일로 노숙자가 없었다. 긴장이 풀리고 나니 그제야 옆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분명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데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은 빨간 바탕의 잉어, 용 그림과 한자였다. 알고 보니 그곳은 샌프란시스코에서도 크고 유명하다는 차이나 타운(Chinatown)이었다.


아침 시장으로 왁자지껄한 분위기, 아침을 사기 위해 딤섬 가게 앞에 길게 줄 선 사람들, 여러 방향에서 들려오는 중국어. 내가 중국으로 봄방학 여행을 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만큼 그 풍경이 너무나 생생했다.


시카고에서 여러 번 차이나 타운을 방문했지만 확실히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 타운의 규모가 훨씬 크게 느껴졌다. 이곳은 관광객의 관광과 맛집 탐방만을 위한 타운이 아닌 중국인들이 그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복작복작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작은 중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이나 타운 (Chinatown)


어학연수로 짧게나마 중국에서 머물렀던 추억을 회상하고 있을 때쯤 내 눈앞에 또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젤라토, 피자 그리고 유럽풍 성당. 나는 샌프란시스코 안의 또 다른 나라 리틀 이태리(Little Italy)에 도착했다.


그곳의 풍경은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차이나 타운과 사뭇 달랐다. 유럽여행을 해본 경험은 없지만 사진과 영상으로 접했던 유럽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피자를 만들고 있는 셰프의 모습이 앞서 지나온 차이나 타운의 모습과 완전히 대조되었다.


한 블록, 아니 한 걸음 차이로 아시아와 유럽을 넘나들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면서도 특이한 이 풍경이 모두 샌프란시스코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틀 이태리 (Little Italy)


분위기 있는 곳에서 맛있는 브런치를 먹고 나니 처음의 꿀꿀했던 기분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게 개었다.  두둑한 배와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페리빌딩(Ferry Building)이었다.


페리 빌딩은 오래전부터 샌프란시스코로 들어오는 배의 입국을 관리했던 곳으로 현재는 마켓플레이스로서 많은 관광객에게 사랑받고 있는 장소이다. 빌딩 안에는 로컬 제품을 취급하는 다양한 상점들이 입점되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곳을 방문했던 가장 큰 이유는 블루 보틀 1호점을 방문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 블루 보틀을 꽤나 자주 방문했었지만, '1호점'이라는 타이틀은 그곳을 방문하기 위한 명분으로 충분했다.


역시 블루보틀의 라테는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평소에는 아메리카노만 취급하는 나도 블루보틀에서는 꼭 라테를 주문하게 된다. 맛있는 커피와 홀밀크가 만나 고소하고 달달한 끝맛을 잊을 수 없어서 매번 블루보틀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여전히 비는 분무기처럼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지만 페리 빌딩 안을 구경하며 한 손에는 따뜻한 블루보틀 라테를 들고 있자니 흐린 날씨가 나름 분위기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페리빌딩(Ferry Building) 블루 보틀 1호점


걸어서 페리빌딩과 쇼핑몰을 둘러보며 불렀던 배가 점점 꺼져갈 때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하면 빠질 수 없는 장소로 마지막 발걸음을 옮겼다. 여행 첫날의 마지막 종착지는 피어 39(Pier 39)이다.


피어 39에서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색적인 관경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바로 부둣가에 널려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는 바다사자들이다. 그곳의 상징이 바다사자라고 할 만큼 유명하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방문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처음 보는 풍경에 헛웃음만 나왔다.


'바다사자들은 왜, 어쩌다가 여기에 있을까?' 하는 질문이 자동으로 들었다. 앞에 놓인 안내판을 보니 전문가들이 추측하건대 바다사자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비교적 먹이가 풍족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물원 안이 아닌 밖에서 여유롭게 낮잠을 즐기는 바다사자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동시에 자유로워 보였다. 날씨 좋고 먹을 것이 풍부한 곳을 찾아서 잘 정착한 바다사자들이 내심 기특한 마음도 들었다.


피어 39 (Pier 39)




샌프란시스코 여행의 첫날을 마무리하며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열심히 달려온 반학기 동안의 노력, 그 노력을 따뜻한 날씨로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과 달리 우중충했던 첫째 날의 하늘, 하지만 날씨의 아쉬움을 잊게 할 만큼 새롭고 신선했던 여행지의 기억들.


솔직히 이 여행이 나에게 '성공적인 여행'으로 남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떠나오기 직전까지 시험 준비로 인하여 여행 계획을 하나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전날 짐가방만 겨우 챙겨 떠나왔다.


날씨가 좋지 않았기에, 계획했던 샌프란시스코의 명소를 다 돌아보지 못했기에 이 여행은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날씨가 좋지 않았기에 고즈넉한 샌프란시스코의 풍경을 만날 수 있고, 잠깐 비가 그쳤을 때 구름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더욱 감사했다. 촉촉이 비 오는 거리를 걸으며 눈앞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도시의 풍경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샌프란시스코의 다양한 얼굴을 만나면서 나는 이 도시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아시아, 유럽, 그리고 미국을 동시에 여행할 수 있는 도시 샌프란시스코.

나는 이곳의 기억을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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