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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카 Braka Sep 23. 2024

대학 졸업 후, 다시 돌아간 고등학교

대안학교 조교가 되다.

"카톡!"


어느 날, 내가 고등학생일 때 국제계열을 담당하셨던 선생님께로부터 메시지 하나가 왔다.


"한국에 왔니"


예상치 못했던 연락에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졸업식 이후 한국에서 마지막 학기를 마무리 중이라는 근황을 전화 통화로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내 이야기를 쭉 들으시더니 문득, 여름방학에 고3 국제반 보충 TA (Teaching Assistant, 교육 조교)로 오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하고 있던 계절학기가 생각보다 꽤 바빴기에 나는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주저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학교에서 애들 도와주면서 계절학기도 하면 되지 않겠냐며 밀어붙이셨고, 나는 그 자리에서 얼떨결에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고3 국제반 TA가 되었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기에 선생님과의 통화 이후 여러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당시 대학 졸업 전 마지막 계절학기를 듣고 있었고, 혹여나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 또한, 내가 과연 고3 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여러 가지로 걱정되는 마음 반, 오랜만에 학교에 간다는 설레는 마음 반을 가지고 학교에 갔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고3 아이들과 함께 했던 여름 보충의 2주는 생각보다 잔잔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우리 학교의 고3 과정은 국내 대학을 위해 수능을 준비하는 국내반과 해외 대학 진학 준비를 하는 국제반, 예술계열 학생들을 위한 예과반, DCC (Dream School College Course)로 나뉜다. 내가 맡은 반은 고3 중에서도 국제반으로, 말 그대로 해외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반이다.


국제반 학생들이 희망하는 대학은 매우 다양하다. 나와 같이 미국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도 있지만 일본, 싱가포르, 유럽 등 자신의 꿈과 진로를 따라 선택하여 준비하고 있다.


해외 대학을 준비하며 아이들은 여느 다른 고3 처럼 여러 장벽을 마주하게 된다. 그 중 한가지가 공인 영어 시험이다. 여름 방학 동안 수능을 준비하는 국내반과는 달리 국제반 학생들은 공인영어 시험(토플, 아이엘츠)이나 SAT를 준비한다. 나 역시 고3 때 국제반에서 토플 준비를 했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학교에 국제반 학생들의 입시를 위한 수업이 제대로 개설되어있지 않아 방학 동안 개별적으로 학원을 다녀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방학 동안 국제반 학생들도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수업이 개설되었다.


영어를 어느정도 하는 학생이라면 기본 점수를 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 자신이 원하는 점수를 내기 위해서는 여러번의 시도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영어가 힘든 학생의 경우에는 시험을 치루는 횟수와 준비 기간이 더 늘어난다. 어떤 아이들은 오를 듯 오르지 않는 자신의 점수와 목표 점수를 비교하며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한다.


국제반 학생들이 힘들어 하는 또 다른 한가지는 자소서 준비이다. 해외 대학을 준비할 때 '좋은 자소서'는 필수적이다. 눈에 보이는 점수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좋은 자소서가 있다면 대학에 합격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자소서를 쓰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경험을 하였고 어떤 진로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스스로 되돌아보고 그 기억을 글로 표현해 내야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거나 꿈이 불분명한 친구들은 공부를 하고 점수를 내는 것보다 이 과정을 더 어렵게 느낀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며 발견한 사실은 누구나 해외 대학 진학에 대한 '막연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성격이 밝던 얌전하던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해외 생활에 대한 설렘도 있지만 자신이 익숙한 곳과 사람들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시작할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 한명 한명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내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고민을 들으며 어쩔 때는 고등학생의 나를 보는 듯하여 공감도 되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러나 내 대학 시절을 떠올리며 조언과 위로도 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나는 내가 후배들에게 학문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과 지내면서 깨달은 내 진짜 역할은 내가 지나온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공감하고, 그들이 가는 길을 진심을 다해 응원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잊었던 사실이지만 내가 고3 때에도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주시던 선생님들이 계셨다. 내가 툴툴거릴 때마다 귀담아 듣고 가볍게 어깨를 치며 응원해주시던 선생님들이 계셨기 때문에 나도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믿고 지지 해준다는 느낌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큰 벽을 만나 머뭇거리고 있을 때에도 그 장벽을 넘어갈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을 준다. 내가 선생님들에게 받았던 그 힘이 나를 통해 다시 우리 국제반 아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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