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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콜라 Jan 11. 2022

오타가 나오면 돈을 내야 한다고요?

전직 편집자의 악몽

편집자 시절 마감이란 무진장 힘들면서도 속이 시원한 일이었다. 

눈이 빠져라 교정지를 들여다보고, 손가락에 빨간 잉크를 여기저기 묻히고, 가끔 날카로운 종이에 손을 베여가며 마감해서 인쇄소에 원고를 보내고 나면 큰일 하나가 일단 끝나는 셈이었다.


그리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몸보신으로 치킨을 뜯고 샤워를 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로 끝나면 좋겠지만 가끔 잠이 들려다 벌떡 일어난다. 갑자기 인쇄소에 넘어간 원고가 떠오르는 것이다.


‘가만, 내가 그걸 확인했던가?’




남자들은 가끔 군대 꿈을 꾼다던데, 나는 마감한 책에 오타나 실수가 나오는 꿈을 꾸고 벌떡 일어났다.


나뿐 아니라 많은 편집자가 겪는 현상이다. 출판편집은 일의 특성상 꼼꼼한 이들이 많이 모이는 직업이지만, 일을 하다 보면 더 꼼꼼하고 집요해진다. 편집자가 ‘편집증’에 걸린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때로는 오탈자 하나하나가 돈으로 혹은 시말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부터 꼼꼼하고 유독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편집자는 나와 잘 맞으면서도 괴로운, 애증의 직업이었다.


책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갖가지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책의 주민번호라 할 수 있는 ISBN은 마감하기까지 수십 번은 더 확인하고, 본문은 물론 표지에 오타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판권에는 저자를 비롯해 일러스트 작가,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 등 이 책에 힘쓴 사람들의 이름이 제대로 들어갔는지도 빠짐없이 체크해야 한다.


한 번은 막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을 살피다가 디자이너와 함께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왜, 왜 이래 이거. 바코드가 안 찍혀요!”


책 뒤표지 밑에 달린 바코드에 문제가 생겨 바코드 리더기에 읽히지 않게 된 것이다. 분명 마감 전에 핸드폰으로 확인했건만, 바코드 리더기로는 또 다른 모양이었다. 결국 바코드 스티커를 하나하나 다시 붙였다. 

아주 그냥, 모골이 송연해지는 일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약과다. 표지에 큰 오타라도 생기면 문제가 아주 복잡해진다.

아직 배본 전이라면 대부분 표지만 전부 다시 인쇄해서 갈기도 한다. 한때 어떤 사건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번역서 표지 영문에 오자가 나와서 회사가 편집자에게 몇천 만원짜리 손해배상 소송을 건 것이다. 매우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어쨌든 남 일 같지 않은 사건이었다.


‘흑흑, 저걸 어찌할꼬….’




편집자는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휘하는 총감독 같은 존재다. 제목부터 디자인, 표지 카피, 목차, 본문의 내용과 맞춤법, 인쇄물의 색감까지.

프로라면 모두 감내해야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변명하고 싶어진다.


“모두들 열심히 보살피고 내 자식처럼 키운 책이니 아무쪼록 예쁘게 봐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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