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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콜라 Mar 31. 2023

어른에게도 방학이 필요해

김신지 에세이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를 읽고

학교 다니던 시절, 방학이 찾아오면 부자가 된 듯 마음이 충만해지곤 했다. 그때는 정말 부자였는지도 모른다. 귀하디귀한 시간을 소유한 부자. 학교에서 잠시 벗어나 온전히 내가 원하는 시간들로 하루를 채울 수 있는 때였으니까. 한 일주일쯤은 아무것도 안 하고 마음껏 놀고, 여기저기 놀러도 가고, 보고 싶었던 티비도 보고. 물론 책도 열 권쯤 읽어주고 숙제와 공부도 약간 곁들이자고 마음속으로 꽉 찬 시간표를 그린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나니 방학은커녕 짧은 주말만 바라보며 살게 되었다. 내 삶인데 다른 사람이 또는 회사가 내 시간의 주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평일도 인생이니까》라는 책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작가가 이번에는 ‘시간’을 되찾은 이후 찾아온 선물 같은 일들을 책으로 엮었다. 제목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되뇌어보았을 말이다. 작가는 우리가 열심히 살면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되돌아보기도 하고, 내가 다시 내 시간의 주인이 되었을 때 무엇을 되찾을 수 있는지 즐겁게 이야기한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안으로 깊어진 뒤에 밖으로 열리는 마음이 있었다.
삶의 여백에 앉아서만 볼 수 있는 풍경도 있었다.”



이처럼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우선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 그저 열심히 바쁘게 살다 보면 내가 뭘 위해 사는지 잊어버리게 된다. 작가는 회사를 나와 글 쓰는 일을 택했다. 물론 어떤 부분은 적당히 포기해야 했지만,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일에 시간을 들여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 알람을 맞출 때, 일요일 저녁이 다가올 때 마음이 우울해지는 건 내일이 내 것이 아니어서일지도 모른다. 방학이면 내가 하고 싶은 일로 계획표를 그리고 다음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것처럼 내일이 내 것이라면 두렵지 않을 테니까.


“시간이 생기면? 하루를 어떻게 쓰고 싶어? 혼자가 된 밤이면 일기장 여백에 틈틈이 ‘진짜 가지고 싶은 시간’에 대해 적어보곤 했다. 괴로운 것을 피해 뒷걸음치는 인생 말고, 좋은 것을 향해 한 걸음이라도 내딛는 삶을 살고 싶어서. 그런 물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덜 쓴 희망을 발견한 사람처럼 조용히 기뻐졌다.”
- <오늘 하루가 다 내 것이었으면> 중에서


이렇게 좋은 것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다 보면 마침내 주변을 볼 여유도 생긴다. 회사 생활을 하며 기나긴 출퇴근에 시달리던 시절에는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들을 나도 모르게 저주하곤 했다. 그들도 그저 같은 처지일 뿐이었는데. 본래 나는 화가 많은 사람인가 보다 했는데, 사실은 다른 사람을 헤아릴 여유가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글을 읽었을 때 몹시 부끄러우면서도 마치 고양이를 안은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졌다.


“미워할 이유가 너무 충분해서 그런 순간엔 미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저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 후로 누군가 미워지려고 할 때마다 속으로 마법의 문자, “그런 게 사람이죠”를 중얼거려 보았다.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일제히 뛰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런 게 사람이죠. 오늘 얼마나 피곤했으면 앉아 가고 싶을까. 라면 사리도, 공짜 귤도,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불쑥 욕심이 났으면. 그런데 그런 게 사람이죠.”
- <그런 게 사람이죠> 중에서


나도 이제 “그런 게 사람이죠” 하고 중얼거려 봐야지. 작가의 말처럼 쉬운 미움 대신 어려운 사랑을 배워봐야지. 뭉클한 마음으로 그런 다짐을 했다. 그러면 나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씩 나아지다 보면 훨씬 좋은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다. 어른에게는 방학도, 숙제 검사를 해주는 선생님도 없으니까. 하지만 하루하루 내 삶에 충실하고 동시에 결코 자신의 행복에 소홀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삶에 조금 더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우리도 매일매일이 방학인 것처럼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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