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는 소파 말고 빈백이 하나 있었다. 앉으면 앉는 대로 푹신하게 푸욱 파여버리는 거대쿠션.
1월에 어떤 날에 나는 샤워를 마치고 두꺼운 로브를 입고 거실로 나왔다.
보일러를 끈 것도 아닌데 몸이 으슬으슬했다. 머리만 겨우 수건으로 두르고 빈백에 아무렇게 몸을 구겨 앉았다. 몸이 빈백 위에 축 늘어져 내렸다. 그리고 이내 잠에 빠졌다. 천천히 기절하는 기분이었다.
어떤 날에는 밤 중에 잠을 자다가 내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기도 했다. 양 팔뚝에 오한이 들며 목이 뻣뻣해져서 한밤중에 깨기도 했다. 발은 늘 차갑고 두통은 아침에 희미하게 눈을 뜨기 전부터 느껴졌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을 때도 두통은 한창이었다.
해가 들지 않는 우리 집에서 늘 블라인드를 열지 않고 지냈다. 밖에서 집 안이 훤히 다 보이는 구조가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
두통이 매일 미세하게 깔려있을 때 삶의 질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단히 아픈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해도 예민하고 어쩌면 좀 더 증상이 심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예민해진다. 웬만한 진통제로는 차도가 크게 없었다. 두통을 방치해 두다 보면 혼자 먹는 밥이 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 삶은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잘 돌아갔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안을 정리하고 장을 보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이웃을 만나기도 했다. 아이가 돌아오면 기분 좋을만한 간식을 준비해 두고 친구와 플레이데이트를 잡아주기도 하고 학원에 보내기도 하며 일상을 살았다.
그렇게 며칠은 괜찮고 며칠은 몸이 안 좋게 몇 년을 지냈다. 남편에게는 아프다는 말을 하는 것도 민망해졌다. 매일 왜 아프냐는 질문이 자동으로 나왔다. 나도 아프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라고 말했지만 점점 증상을 말하기는 어려워졌다. 덕분에 운동을 다시 다니기도 하고 몸이 너무 처지는 것 같으면 수액도 가서 맞았다.
그 시간들은 참 겨울 같았다. 사계절이 모두 겨울 같은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