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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현 May 23. 2023

사계절 겨울

 거실에는 소파 말고 빈백이 하나 있었다. 앉으면 앉는 대로 푹신하게 푸욱 파여버리는 거대쿠션.

 1월에 어떤 날에 나는 샤워를 마치고 두꺼운 로브를 입고 거실로 나왔다. 

 보일러를 끈 것도 아닌데 몸이 으슬으슬했다. 머리만 겨우 수건으로 두르고 빈백에 아무렇게 몸을 구겨 앉았다. 몸이 빈백 위에 축 늘어져 내렸다.  그리고 이내 잠에 빠졌다. 천천히 기절하는 기분이었다.


 어떤 날에는 밤 중에 잠을 자다가 내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기도 했다. 양 팔뚝에 오한이 들며 목이 뻣뻣해져서 한밤중에 깨기도 했다. 발은 늘 차갑고 두통은 아침에 희미하게 눈을 뜨기 전부터 느껴졌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을 때도 두통은 한창이었다. 


 해가 들지 않는 우리 집에서 늘 블라인드를 열지 않고 지냈다. 밖에서 집 안이 훤히 다 보이는 구조가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 


 두통이 매일 미세하게 깔려있을 때 삶의 질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단히 아픈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해도 예민하고 어쩌면 좀 더 증상이 심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예민해진다. 웬만한 진통제로는 차도가 크게 없었다. 두통을 방치해 두다 보면 혼자 먹는 밥이 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 삶은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잘 돌아갔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안을 정리하고 장을 보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이웃을 만나기도 했다. 아이가 돌아오면 기분 좋을만한 간식을 준비해 두고 친구와 플레이데이트를 잡아주기도 하고 학원에 보내기도 하며 일상을 살았다. 


 그렇게 며칠은 괜찮고 며칠은 몸이 안 좋게 몇 년을 지냈다. 남편에게는 아프다는 말을 하는 것도 민망해졌다. 매일 왜 아프냐는 질문이 자동으로 나왔다. 나도 아프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라고 말했지만 점점 증상을 말하기는 어려워졌다. 덕분에 운동을 다시 다니기도 하고 몸이 너무 처지는 것 같으면 수액도 가서 맞았다. 


 그 시간들은 참 겨울 같았다. 사계절이 모두 겨울 같은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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