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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현 May 29. 2023

엄마가 이사 갔다.

 신혼 첫 집의 선택기준은 친정과 얼마나 가까운 가였다. 

 나는 막무가내로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였고 일을 하고 있을 때라 어느 정도 동의가 되어 친정집과 걸어서 10분 거리에 집을 얻었다. 

 나의 결혼 후 임신, 출산, 산후조리, 그리고 복직 후 육아, 6살이 되던 그 1월까지 엄마는 내 곁에 있었다. 


 내 집 살림에 나보다 엄마가 아는 게 더 많았고 내 냉장고에 뭐가 채워져 있는지도 엄마가 다 알았다. 남편과 나와 아이는 구색은 맞추고 살았지만 주말에 밥 해 먹으려면 산더미 같은 장을 봤고 평일에 재료를 썩혀 주말에 다시 그걸 버리며 싸웠다. 


 아이도 하원 후 할머니네서 지내다가 퇴근 후 내가 데리러 가면 의례 저녁을 함께 엄마집에서 때우고 집에 오곤 했다. 내 첫 번째 집은 내가 그 집에서 나오던 그 순간까지도 내 집 같은 적이 없었다. 

 많은 친구들이 집들이를 와서 손님이야 수도 없이 치렀다. 또래 중 일찍 결혼한 탓에 우리 집은 나름 아지트가 되어 친구 그룹이 잘 드나들었다. 좋은 공간이었지만 우리 가정의 공간이라기보다 우리조차 빌려서 지내고 있는 거주지 같았다. 


 그 집을 나와 조금 더 엄마집에 가까운(이번엔 5분 거리,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여러 상황 맞추다 보니) 두 번째 집에서 일 년쯤 살았을까? 엄마는 차로 30분 이상 가야 하는 곳으로 이사를 가겠다고 하셨다. 좋은 매매거래가 이루어진 터라 나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내 직장생활에는 지장 없이 해주겠노라 새벽같이 우리 집에 와서 내가 퇴근하면 집으로 가셨다. 가끔은 회사 끝나고 동료들과 식사라도 하고 오곤 했는데 엄마 집이 멀어진 이후부터는 저녁에 집에 돌아갈 엄마 걱정에 그런 시간이 부담스러워졌다. 그리고는 마침내 나도 일을 그만두었다. 


 엄마가 우리 집에 올 필요가 없었다. 처음으로 아이와 나, 남편이 오롯이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냉장고에 음식이 정신없이 쌓여가지 않았다. 철마다 이불을 사야 한다던가, 아이 옷을 계절에 앞서 준비해둬야 한다던가, 겨울옷을 세탁에 맡긴다던가, 신발을 정리한다던가 하는 일들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집에 놀러 오신 엄마, 아빠는 신발장에서부터 허리를 굽혀 신발을 정리하며 우리 집에 입장하셨다. 여전히 당신들 손때가 묻어있는 우리 집이라 여기는 청소했는지 저 물건은 왜 저기 뒀는지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많았다. 엄마가 우리 집에 오기 보단 내가 엄마집으로 가는 횟수를 늘리면서 우리 집은 자유해졌다. 

 이케아에 가서 내 멋대로 가구도 사서 넣어놓고 엄마가 있으면 못 버리게 했을 작은 가구들을 버렸다. 싸구려 동그란 카펫도 사서 아이 책장 근처에 깔아보기도 하고 화장실 발매트도 알록달록 한걸로 놔보기도 했다. 정리는 좀 덜 됐지만 스타일은 좀 더 내 스타일로, 또는 우리 가족의 스타일로 변해갔다.  


 그리고 코로나로 주말에 집에서 밖에 못 지내게 되면서 우리는 어쩌면 우리의 루틴이 생겼던 것 같다. 


 모든 부부는 부정적 속박은 물론이고 긍정적 도움으로부터도 독립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유익함이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배은망덕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한 가정은 독립되었을 때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엄마나 시어머니 지분이 큰 냉장고가 있다면 그건 독립하지 못함의 신호라고 보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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