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신혼여행을 울릉도로 갔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울릉도의 꼭대기, 성인봉을 등산하고 내려와서 산 중턱에 위치한 나리분지에서 먹었던 20가지의 산나물 정식과 감자전이 가끔 생각났다. 등산 후 먹는 밥이란 원래 꿀 맛일뿐더러지역특색이담긴 음식은 정말 환상적이다.
광학렌즈로만 담을 수 있는 20가지 울릉도 산채나물들
천상 먹보인 나는 자기 전 누워서 남편에게 음식 얘기를 하곤 한다. '아 울릉도 산나물정식 2번 먹었어야 했는데... 천안 병천순대 먹고 싶다... 그때 통영 일식집은 한국 가면 꼭 다시 갈 거야' 이렇게 한국에서의 음식기행을 떠올린다.
며칠 후, 한국 마트에 장 보러 가니 농협에서 수출한 말린 산나물들이 몇 가지가 진열되어 있는 걸 발견하고, 울릉도 산채정식을 떠올리며, 가장 저렴한 취나물 ($5.99)을 골라왔다. 산나물의 씁쓸함은 이나저나 다 비슷할 테니 말이다. 집에 와서 취나물밥 레시피를 찾아보니 하루 물에 불려서 압력솥에 쪄야 부드러워진단다. 하루 불리고, 인스턴 팟에 15분 찌고 압력을 빼니 한국의 산내음이 퍼지는 듯하다. (참고로 나의 고향 부산과 달리 지금 살고 있는 앤 아버, 미시간은 산을 찾아볼 수 없는 평지이다.)
취나물을 한번 헹궈서 쓴 맛을 최소화하고, 참기름에 미리 잘라둔 코스트코 유기농 버섯들과 함께 볶다가 씻어둔 쌀도 같이 볶아서 고소한 향을 극대화시켜주고 물을 맞춰 쿠쿠밥솥에 넣는다. 밥이 되는 동안 된장찌개를 끓이려고 다시물에 된장을 푸는데 남편이 옆에서 말하길, "된장찌개에 그... 차돌박이 넣으면 맛있는데!"
지금 고기가 먹고 싶다는 뜻이구나? 차돌박이는 없지만 냉동실에 있던 국거리용 소고기를 된장 푼 물에 풍덩 집어넣고 두부랑 버섯, 파, 매운 고추도 넣는다. 내 마음속 메뉴는 풍요롭고, 완전한 채식 식단이었지만, 고기 먹고 싶은 남편의 요구사항에 타협해주는 것이 슬기로운 부부생활이다. 냉장고에 남아 있던 조그마한 유기농 감자 3개로 강판은 없지만, 백종원 감자전 만드는 법에서 본 것처럼 감자를 블렌더에 물이랑 같이 갈아서 물은 빼주고, 감자전도 만든다.
갓 담은 김치와 간장소스, 버섯 취나물밥, 소고기 된장찌개, 감자전으로 토요일 아침 한 상 완성! 가족 카톡방에 사진을 올렸더니 엄마가 한국에서 보다 더 잘해먹네라며 대답을 하신다. 이렇게 한국 식재료를 써서 만들어도 한국의 맛이 부족한 것 같다고 아쉬워하니 엄마가 물이 달라서 그런 게 아닐까라며 웃으신다. 오 물 맛이 중요한 것 같아! 사실 다양한 요소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엄마의 말에 바로 수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