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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 Mar 05. 2021

일주일간 읽은 2권의 책

제인 에어 1, 2 , 여자의 일생

글쓰기가 능동적인 활동이라면 책 읽기는 수동적인 활동이다.


친구와 대화 중 스탕달의 '적과 흑' 책이 언급됐는데

적과 흑이라... 4개월 전에 읽었지만, 머릿속이 하얗다.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뿐, 책의 인물 묘사도 내용도 떠오르지 않는다. 몇 달 전 완독 하고도 떠오르는 장면이 없다는 것 자서 부끄러웠다. 책을 읽는 행위 그 자체가 그 당시의 유희였을 뿐,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영감도 내용도 다 사라져 버리는 걸까? 책을 읽고 감상평을 짧게라도 꼭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 읽기와 글쓰기는 함께 행해져 한다는 사실은 무라카미 하루키, 스티븐 킹과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들 글쓰기에 관한 에세이에서 누누이 강조된다. 어린 시절, 가장 자주 해야 하는 숙제도 일기 다음으로 독서감상문였다. 그렇지만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는 것보다 생각할 필요 없이 책을 읽는 것이 더 편하니깐 쉽고 편한 쪽으로 기운다. 책을 읽고 정리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사실 크게 못 느꼈다. 근데 4개월 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도 기억이 안나는 이 사태에서 글쓰기의 깨달음이 직통으로 나의 머릿속에 꽂힌 것이다.


난 보통  소을 고를 때, 재밌는 책이었다면 같은 작가의 다른 소설을 연달아 읽는 경우가 많다. 한 작가의 여러 소설에서 어떻게 그의 생각을 다른 소재의 이야기로 담아내는지, 문체가 비슷한지 다른지 보는 게 재밌달까. 그렇지만 현재 미국에서는 한국어로 쓰인 민음사 세계문학을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좁아졌기 때문에, 들고 온 책 중에 골라야 한다.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읽고 연이어 기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읽었는데 신기하게도 둘 다 여성의 일대기였고, 심지어 주인공의 이름이 Jane으로 동일했다. 이런 우연이! 제인 에어는 영국을 배경으로 쓰였기에 영어 발음 그대로 '제인' (친근하게 부를 때, 자네트라고 불림)이고, 여자의 일생은 프랑스를 배경이기에 프랑스어로 Jane을 발음 한 '잔느' 혹은 '자네트'로 쓰였다. 두 Jane은 귀족과 하인으로 신분이 나뉘었던 동시대 배경을 가지고 있고, 신분에 상관없이 두 주인공의 삶은 순탄치 않았고, 둘 다 수녀원에서 절제된 생활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인 에어는 부모를 여의고 외숙모 밑에서 미움을 받으며 크다가, 수녀원 (책에는 고아를 위한 자선학교라고 나와있다)으로 보내진다. 6년간 학생으로, 2년간 선생님으로 지내다가 새로운 환경을 갈망하며 손필드 저택의 개인교사로 가게 된다. 그곳의 주인인 로체스터를 좋아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감정에 이끌려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일은 없다. 제인의 모든 행동과 말에는 절제가 있고, 당당하고 거침없는 자신의 곧은 신념을 가진 모습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결혼하려는 과정 중 신분 차이, 관습적 사고, 선입견을 뛰어넘어야 하는 여러 가지 난제들이 나오지만  제인은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똑 부러지게 힘든 역경을 이겨내고 솔직하고 순수한 사랑을 향해 나아간다.  


제인은 권력자에게 자신의 부당함을 요목조목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여자이다. 그러나 신분상승의 기회가 있을 때도, 사치스러운 물건을 탐하는 법이 없고, 자신의 주제에 맞게 사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기독교의 결혼, 남편과 아내라는 관념에 붙잡혀서 유연하게 사고하지 못하는 답답한 부분도 있다. 스스로 극적이고, 힘든 상황에 빠져놓고, 신에게 기대어 신이 주신 어려움이고 신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거라는 종교적인 부분이 마지막에 많이 나와서 비기독교인으로서 막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 있긴 하다.


제인 에어는 중간중간 미스터리 한 사건들과 흥미진진한 반전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통상 지루한 첫 부분만 넘기고 나면 술술 읽힌다.



여자의 일생의 잔느는 힘이 없는 귀족의 딸이었는데, 남작인 아버지의 제안에 따라 수녀원 생활을 하다가 18살에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고, 가족의 소유지가 있는 노르망디 이포르 푀플성으로 놀러 가게 된다. 잔느는 자신이 어떤 남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게 될지 환상을 가졌지만, 그 지역의 잘 알지 못하는 자작 쥘리엥과 얼떨결에 약혼을 하고 얼마 후 결혼하게 된다. 코르시카 신혼여행 후, 남편의 야박함, 무관심과 무정함 그리고 잦은 외도로 잔느의 삶은 불행해지고 남편을 증오하게 된다. 그러다 폴이라는 남자아이를 낳게 되는데 남편으로부터의 결핍이 아이에게 관심과 애착으로 변한다. 그러한 잘못된 애착이 아이의 인성과 삶도 망쳐놓았으니 평생 잔느는 사랑에 궁핍한 여자로 남는다.


 이 남자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도 모른 체 결혼을 결정하는 것이 잔느가 수녀원에 있으면서 세상 물정을 모르고 자랐기 때문인지, 그 시대의 귀족들의 결혼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건지 알 수 없다. 나름대로 행복하고 평탄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잔느의 삶에 쥘리엥이 끼어드는 바람에 모든 게 망쳤다고 책을 읽으며 함께 분개했다.


뚱뚱해서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이포교구의 신부는 이 지역 사람들은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끓어오르는 동물적인 본성에 충만하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뚱뚱하다고 묘사되는 신부 그 사람 자체도 사람의 동물적인 본성, 식욕에 충만한 감정적인 사람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뚱뚱한 신부가 그 지역을 떠나고 빠짝 마르고 핏기 없는 신부가 등장하는데 그 사람은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고, 지역 사람들의 동물적인 본성을 증오하는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마른 신부가 6마리 새끼 개를 출산하고 있는 어미개를 발로 짋밟아 죽이는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성교 후 임신과, 새끼를 출산하는 과정을 완전히 동물적이기에 하찮고, 가치 없게 여기는 것 같았다. 정신적인 것과 이성을 추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또한 얼마나 편협적이게 사고하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인 것 같다.

   

  두 소설 다 연대기적 서사 방식이기 때문에 앞 서론의 주요 인물 설명만 지나고 나면, 속도가 붙으면 줄줄 읽히는 재밌는 책이었다. 긴장되고, 안타깝고, 화나는 부분도 있지만 말이다.


고전문학이 좋은 이유는 디테일한 묘사에 있다. 샬롯 브론테 작가는 영국 손필드의 사계절의 모습을 눈앞에 생생하게 묘사해줬고, 기드 모파상 작가는 자신의 고향 노르망디 지역의 바다와 잔잔한 파도, 짭짤한 바람 냄새를 상세하게 묘사해서 상상 속의 푀플성에서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는 잔느 옆에 날 앉혀놓은 기분이었다.



20대 초반에 영국과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봤던 전경들과 느낌들, 작가들의 묘사가 합쳐져서 실제보다 더 생생한 아름다운 상상의 배경을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여행한 기분이랄까.




프랑스 파리 근교 여행 중 코끼리 절벽으로 잘 알려진 노르망디 에트르타 절벽, 여인의 일생의 배경 근처로 잔느가 이 곳으로 가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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