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ㅅ씨-목포에서 한 달 살기 13
파스타는 참 적당하다.
냉장고에 재료가 얼마 없는 게으른 점심에도.
불쑥 친구가 찾아왔을 때도.
새로 산 와인에 곁들일 안주를 고민할 때도.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의 식탁에는 금방 만든 따뜻한 반찬이 올라왔다. 엄마는 매일 서너 가지 반찬을 새로 만들어 밥상에 올려줬고, 그 때문인지 냉장고에 두고두고 넣어 먹는 밑반찬들은 좀처럼 줄지를 않았다. 시큼 달큼한 초간장에 절여진 마늘장아찌 같은 것들은 더더욱. 그냥 먹기에는 짜고 시고, 밥이랑 먹기에는 진한 감칠맛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런 마늘장아찌의 천재적인 활용법을 알게 되었다. 집ㅅ씨의 메뉴에는 매번 다르게, 즉흥적으로 만들어주는 오일 파스타가 있다. 어느 날 누군가가 파스타를 주문했는데, 딱히 사용할 만한 재료가 없던 그때 세영은 담가둔 마늘장아찌를 꺼내와 편으로 썰고 올리브 오일에 볶기 시작했다. 간장물도 약간 넣어주고 삶은 파스타 면과 고명으로 고추장 제피 장아찌. 마늘장아찌 알리오 올리오는 마늘에 배어 있는 짭조름한 간에 간장과 식초의 감칠맛이 기름에 졸여져 혀에 착착 감긴다. 자유롭게 변형하기도 쉽다. 마늘이 아니어도 마늘종이나 고추지를 넣으면 또 어떤 맛이 날지 상상력을 자극하는 조합.
마지막에 바질이나 올리브 페스토를 슬쩍 섞은 뒤 신선한 바질 잎을 뿌려도 좋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풍성하게 넣은 파스타도 좋다.
우리 가족들이 목포에 놀러 왔을 때, 세영이 내어준 파스타는 한눈에 봐도 사랑이 넘쳤다. 듬뿍 넣은 각종 채소며 소시지만큼.
순창의 장터에서 산 살시차 소시지를 기름에 볶고, 그 기름을 가지가 흠뻑 머금는다. 짠맛이 적은 수제 바질 페스토를 넉넉히 넣고, 후추를 갈아 올려 같이 비벼주면 온갖 재료의 맛이 밀려오는 화려한 파스타가 된다.
아무리 봐도 팔기에는 단가가 안 맞는 사랑의 파스타.
냉장고에 당장 먹어야 할 토마토가 넘쳐날 때는 토마토소스를 만들자. 양파 조금에 향신료 약간, 그리고 토마토만 있다면 고기 없이도 진한 토마토소스를 만들 수 있다. 중간중간 굵은 토마토 덩어리가 있는 빨간 소스에 파스타 면을 비비고 갈아놓은 에멘탈 치즈를 얹는다. 포크를 들 즈음에는 이미 녹은 치즈가 스르륵 내려앉아 있다.
포르투갈산 와인인 포트 와인을 몇 종 가게에 두었다. 와인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화이트 포트와인을 토닉으로 마시는 레시피를 발견했다. 화이트 포트와인에 탄산수 혹은 토닉 워터, 그리고 레몬즙 약간. 달콤하고 진한 향기를 가진 레드 포트 와인보다 산뜻하고 가벼운 맛이었다. 모스카토 같은 느낌.
살라미와 파르메지아노 치즈를 넣은 까르보나라에 잘 어울렸다.
파스타를 상상하는 방법은 참 많다. 그래서
‘오늘의’ 무언가를 만들 때 참 적당하다.
오늘의 파스타만큼 오늘을 잘 보여주는 것도 드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