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ㅅ씨-목포에서 한 달 살기 에필로그
어디 있는지 꼭꼭 숨어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 다정한 내 친구 쪼는 아침이 빠른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일찍 자고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서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새벽빛을 받으며 108배를 올렸다. 왜 108배를 올리게 되었냐고 묻자 누군가와 아침마다 108배를 올리기로 약속했다고, 그래서 그 사람도 지금 절을 올리고 있을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쪼가 일했었고, 몇 년 전부터 종종 친구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게스트 하우스에 들리기로 했다. 마침 한 친구가 작년에 나에게 보온 도시락통을 빌려갔다가 그곳에 두고 왔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목포항을 나서서 제주도로 향하는 배에 오르면 다섯 시간 후 제주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한다. 정신없이 부는 바람을 맞으면서 배꼬리에 부서지는 하얀 바다 거품을 보고 있다 보면 금방이다.
게스트 하우스를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예약하는 사이트나 연락처가 나오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그냥 들이닥치기로 했다. 그새 닫았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만약 누군가가 있다면 찾아간 정성이 기특해서 재워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마음으로.
지독하게 걷고,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서 도착한 그곳에서 우연히 반가운 사람을 또 만나고.
그곳이 곧 정리된다는 소식도 들었다. 요가실이며 펍, 멋진 카페들이 북적거리던 시절에 나는 왜 한 번도 이곳을 오지 못했을까 아쉽고 참 쓸쓸했다.
스텝들이 사용하던 주방은 더 이상 많은 사람이 이용하지 않지만 여전히 재료들로 가득했다. 그냥 썩게 버려두기에는 아까운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감자며 토마토, 양파, 짜이를 끓이는 각종 향신료, 밀가루, 피클들.
이틀을 주방에서 뚝딱거리며 한 달 동안 세영의 어깨너머로 배운 요리들을 만들었다. 냉장고 틈에서 찾아낸 코코넛 밀크와 토마토로는 토마토 커리를, 상자에 절반쯤 남아있던 감자로는 감자 사부지를 만들어 사모사를, 요거트와 바질로 소스를.
요즘 입맛이 없다던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 빔은 아침을 이미 먹었다더니 같이 둘러앉아 스튜를 맛있게 먹어주었다. 먹으면서 오늘 만든 음식 전부 레시피를 적어 놓고 가라면서.
한 달이나 세영이 직접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었더니 내가 만든 음식에서도 어쩐지 세영의 맛이 느껴지는 듯해서 마음이 든든해졌다.
부엌이 여행하는 방식은 이렇게 손에서 손으로, 어깨너머에서 어깨너머로 이어지고 또 전해지는 것일지도. 그것은 우리가 여행하며 먹고 보았던 기억들을 이 자리에서 다시 조립해내는 것으로, 이미 아주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던 일일지도.
게스트하우스를 떠나기 직전, 카페 벽에 붙은 빔의 하루 시간표를 보았다. 새벽 6시 반에 일어나서 ‘알아차림’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되어있었는데, 그 자리에 ‘108배 올리기’도 적혀 있었다.
돌고 돌아 쪼와 약속을 나눴다던 ‘108배 메이트’도 만나고야 말았다. 그 사실이 재미있어서 혼자 시간표를 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