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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엥 May 07. 2022

부다페스트에서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여행, 첫째 날

연휴 전날, 퇴근 시간 직전까지 구글맵, 플릭스 버스, 호스텔 월드를 뒤적거리다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회사를 뛰쳐나갔다. 먼저 결제해 둔 몇 개의 계획들과 아직 결제하지 않은 계획들 때문에 아무리 해도 우리가 짠 일정에 맞추려면 당장 오늘 크로아티아로 뛰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렇게 하면 이런 멍청비용이, 그럼 이렇게 하면 저런 멍청비용이 발생했다. 그날은 딱히 처리해야 할 업무도 없어서 한가 했는데 되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일단 버스에 타기만 하면 돼, 일단 타. 가서 생각해. 

답도 없고 시간도 없는 우리의 여행 계획에 괜찮아, 괜찮아를 열심히 외치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1시간 반 안에 여행 짐을 싸서 부다페스트 외곽에 있는 Kelenfold역으로 가야 했다. 와중에 집으로 돌아가는 트램을 잘못 타서 조금 돌아갔다. 가는 동안 짐가방에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 메모장으로 쓰고 지우면서 2주일째 빨래를 못한 내게 남아있는 덜 더러운 옷이 뭐가 있더라 고민했다. 퇴근길의 부다페스트는 따스한 봄이어서 얇은 옷만 챙겼다. 혹시 모르니 히트텍과 기모 양말 정도는 넣어두자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다음 며칠 동안 어마어마하게 후회했다. 


우리 집은 부다페스트의 동쪽 역인 Keleti역에서 말 그대로 1분 거리에 있다. 켈레티는 예상치 못한 더블 역세권이어서(!)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이 모두 지나고, 켈렌푈드역은 4호선의 종점이었으니 플릭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은 수월했다. 여유 있게 집에서 나와 지하철에 앉아 있는데 제렁이에게 연락이 왔다.

원래 우리가 출발하기로 한 것은 다음날인 금요일이었는데 일정상 급하게 목요일로 바꾼 것이라 변경 수수료 10유로를 내고 각각 티켓을 변경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렁이의 현지 카드로 수수료 결제가 계속 거절당했고 설상가상으로 비자카드 결제는 해외 결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데 이 번호가 미치도록 기억이 안 나는 것이었다. 

침착해. 괜찮아. 일단 와. 


지하철 승강장에서 지렁이의 티겟을 대신 결제하며 지렁이를 기다렸다. 같이 출구로 올라가는 길에 무사히 두 명분의 자그레브행 티켓을 얻을 수 있었다. 한밤중에 도착하는 버스 시간이 마음에 걸린 제렁이가 크고 묵직한 헝가리식 크로와상을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섞여 있다가 드디어, 드디어 버스에 올랐다. 

5시간만 버티면 나는 크로아티아에 있다. 

앞자리에는 어디서부터 왔는지 모를 장거리 일본인 여행객이 앉아 있었다. 1.5리터짜리 물병이 비워져 있고 묘하게 안락해 보이는 것이 꽤 오랫동안 버스에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좌석 너머로 보이는 그 사람의 휴대폰 속에 일본어 자막이 비치는 걸 보고 '아 일본인이구나.' 했다. 

유럽에서 동아시아인을 만나면 이유 없이 흠칫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크로아티아 여행을 준비하면서 수도 없이 괜찮아를 외치는 건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괜찮음과 괜찮지 않음을 구분하는 능력이 거세당한 느낌이랄까..... 

괜찮지 않아서 화가 나거나 짜증을 내는 대신, 그 괜찮지 않음을 재빨리 휙 치워 버리고 다른 대안을 찾는 게 덜 괴로운 일이어서 일까. 싸우기 싫어서 일까. 모르겠다. 사실 괜찮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다.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건물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동실동실한 언덕이나 풀밭만 보일 만큼 버스가 달렸다. 

지나가는 나무들은 유럽 동화책에서 나올 법한 귀여운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유럽 작가들이 그런 그림을 그려내는 건 이런 풍경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저런 '감성스런' 표현에 서투른 것이 당연하다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은) 불평을 하며 잠깐씩 졸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순간 버스가 멈추고 권총을 찬 아저씨가 탔을 때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국경에 도착한 것을 알았다. 

괜스레 긴장해 긴장하지 않은 척하며 여권을 건네주었는데 이 아저씨가 도통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여권을 돌려주지 않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 마침내 한 명씩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국가명을 부르기도 했다. 꼬레아!라고 외치자 손을 들고 여권을 받았고, 야판!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못 알아듣고 어리둥절 해 있는 앞자리 일본 남자를 지켜보았다. 


자그레브 터미널에 내린 것은 또 한 시간 반을 달려 새벽 1시쯤 되었을 때였다. 

물론 외국에 살고 있지만 또 외국에 여행 온 것이 설레고 좋아서 터미널을 나서 호스텔로 가는데 버스에서 앞 앞 앞쯤에 앉아 있던 여자애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아빠가 마중 온다고 했는데 버스가 연착되어 엇갈렸고 지금 핸드폰도 방전되었다면서 전화 한 통만 쓸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도 꽤 자주 여행지에서 핸드폰이 꺼져 친구에게 혼나거나 호스텔을 못 찾아갔던 일이 많아서 (너무 많아서 이제 해탈할 지경이다) 선뜻 전화를 걸어주려 했는데 잘 안되었다. 몇 번 시도하다가 결국 전화가 되지 않자 그 애는 그냥 알겠다고, 고맙다고 하며 사라졌다. 

나중에 데이터 로밍을 안 켜놓아서 그랬다는 것을 알고 좀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지. 




사실은 그 친구를 도와준 카르마가 또 언젠가 어딘가를 여행하다가 핸드폰이 방전되어 길을 잃었을 나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지만. 지금까지 그랬듯 그때는 또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라거나 불쌍한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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