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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SU Oct 01. 2021

시선이 머무는 곳

그림책을 읽다 보면 나와는 다른 시선을 가진 작가들에게 마음을 뺏길 때가 있다. 아무리 어두워도 한 줄기의 빛을 내어주고, 일상에서 짜증 날 일도 재미있게 승화시키는 그들의 생각은 또 다른 위로가 된다. 그림책 <꽁꽁꽁 좀비>의 작가 윤정주, 그의 유쾌한 시선에도 눈길이 간다. 여행을 떠난 가족을 기다리던 냉장고 속 음식들이 좀비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낸 이 그림책을 읽으며 재미있는 그의 시선을 빌려오고 싶었다. 내가 가진 시선에는 따뜻함과 즐거움보다 불안함과 불편함이 더 많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른 이유를 아무리 떠올려 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인가 싶을 정도로 이유를 빼고는 모든 게 선명하다. 아이들은 네 개의 분단으로 나누어진 네모난 교실에 책상을 다다닥 붙이고 앉아 있었다. 교실을 들어서던 담임이었던 남자 선생님은 소리 지르는 나를 발견하곤 일어서라고 했다. 한 번만 소리를 더 지르면 가만히 두지 않을 거라고 몽둥이를 들고 으름장을 놓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꾹 참고 자리에 앉았지만, 가끔 사진처럼 그 장면이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된다. 눈을 찔끔 감았지만 많은 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담임의 불편한 시선과 친구들의 여러 시선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며 학년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있어야 하는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 이후 성격이 변화거나, 상처를 받아 학교생활이 힘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불편한 시선을 거둬들이지는 못했다. 내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나무라던 담임을 미워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술을 많이 마셔 시커멓게 변한 얼굴로 친절한 미소를 몇 명의 아이들에게만 띄어주었던 그분(?)의 얼굴은 조상님 얼굴보다 더 또렷이 남아 있다.  

   

수많은 눈동자가 나를 훑어보고 있던 경험과 감정적인 기질이 더해져 내가 머무는 시선도 비슷한 결을 보였다. 눈에 가시 하나 박고 삐딱하게 세상을 쳐다보고 사는 삶. 오랫동안 그런 시선을 가진 사람이라고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았다. 겹겹이 쌓인 삐딱한 시선은 마음의 균형감도 잃어버리게 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는 일이 많았고, 나를 공격하는 이들이라고 생각하면 방어막부터 세우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라고 결정되고 나면 프리패스권을 발급했지만, 그조차도 여유분이 많지 않았다.    

 

기울어진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의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기는 힘들다. 주변의 웬만한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건조기에 넣은 빨래처럼 마음에 남아 있는 물기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지금도 여전히 일상에서 만나는 일에 의심과 삐딱한 마음이 먼저 들어서며, 나를 시험대에 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덜어내는 것에도 제법 익숙해지고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기울어지는 마음의 균형을 잡아보려고 애를 쓰고 오래전부터 시선에 박혀 있던 가시가 삭아 사라지길 바라기도 한다. 살아온 세월만큼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세상을 품어 보려는 내 눈과 마음에 작은 진동이 느껴지는 중이다. 시선이 머무는 곳에 담겨질 따뜻한 이야기를 상상하며 그곳을 향해 오늘도 한 걸음 내디뎠다.


사진출처 © jinhokim, 출처 Pixabay                                              





















                                                                                                                                                                                                                                                                                                                                                                                                                                                                                                                          

© jinhokim,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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