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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26. 2021
이까짓 거!
그림책 읽고 삶을 쓴다
노량진에 첫발을 디뎠을 때 이런 마음이었다.
이까짓 거!
고시원이라는 곳이 몸만 누일 수 있는 곳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시골 사람이 서울에 왔으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서울의 공기를 편안하게 마시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임용고시를 위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노량진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마을버스를 타고 고시원으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어둠이 내렸지만, 노량진 곳곳에서는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걸어 다녔다. 운동복 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사람,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 멍하게 허공을 쳐다보는 사람들, 다들 얼굴이 밝아 보이지 않았다. 노량진에는 고민이라는 감정이 집중된 곳 같았다. 버스 창문에 비친 내 모습도 예뻐 보이지 않았다.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던 순간 들어온 내 모습에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힘들었다. 나이를 제법 먹고 시작한 공부였지만 집을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종일 책과 싸움하는 시간이 참 힘겨웠다. 다 포기하고 집으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뒤집고 올라왔기에 패배자가 되어서 내려갈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거 같다. 이까짓 거 해보는 거다. 하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 계산하지 않았다. 합격과 불합격이 주는 상황을 미리 그리지 않았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충실하기로 했다. 이까짓 거 못 할 것도 없다는 마음으로.
그림책 속 주인공이 나와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 같다.
비가 온다.
우산이 없다.
마중 올 엄마도 없다.
빗속을 향해 친구와 뛰었다.
함께 할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을 테다.
친구와 헤어진 아이는 빗속을 향해 혼자 뛰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