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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호 Feb 15. 2021

에로티시즘 공포영화에
나타난 여성의 해방

영화 <며느리의 한>(1972)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72년, 박정희 정부는 국가 안보와 사회 질서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다.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안정된 정부가 필요하다고 외친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위해 유신 체제를 선포한다. 유신 체제는 강력한 통치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권위주의적인 통치 체제이다. 명분은 국가 행정 능률을 극대화하고 국력을 한 곳으로 모아 사회를 조직화한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정치 활동을 제약한 독재 체제였다.

이러한 유신 체제 하에서 영화 검열은 그 당시 영화인들의 창작을 억압시켰다. 가령 범죄와 같은 법에 위반이 되는 행동이 영화에 나와서는 안 되었고 가난의 메시지를 내포한 영화가 만들어져서도 안 되었다. 때문에 사회, 정치 내용을 다루는 장르는 영화인들이 감히 다루지 못하는 장르가 되었고 검열에 크게 구애받지 않던 공포와 액션 장르, 호스티스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특히나 공포 장르는 유명한 배우의 출현보다는 귀신의 출현을 어떻게 공포스럽게 연출할 수 있을까가 중점이었고 어떤 장르의 영화보다 저예산으로 제작할 수 있었기에 비교적 쉽게 시도해볼 만한 장르가 되었다.


1972년 10월 유신에 관한 내용을 발표하는 장면(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1970년대 공포영화는 여성이 주체가 되어 성(性)적인 에로티시즘을 장착하게 된다. 호스티스 영화가 아닌 공포 영화에서 여성이 주체가 된다는 점은 당시 사회상의 분위기에서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화 <며느리의 한>(1972)은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와 두 번째 에피소드 모두 여성이 이승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닌 죽음의 자아를 가지고 있을 때 주체가 된다. 또한 사회에서 억압받던 여성이 죽은 후 복수를 하는 일종의 복수극의 형태이다. 이러한 내러티브 속에서 에로티시즘의 재현은 사회적인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타자에 의해 성(性)적 쾌락을 요구당하는 여성이 행할 수 있는 복수는 영적 존재여야만 가능한 여성의 제한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며느리의 한> 포스터 (출처 : KMDb)


첫 번째 에피소드는 산을 타던 신혼부부가 산적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산적은 신랑에게 둘이 같이 죽을 것이냐 아니면 색시를 자신한테 넘길 것이냐라며 선택의 여지를 준다. 색시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할 줄 알았던 이상적인 신랑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신랑은 산적에게 색시를 넘긴다.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색시의 비애로 이어진다. 산적이 색시를 강간하려 하자 색시는 그 앞에서 혀를 깨물고 자살한다. 그날 밤, 신랑은 깊은 산속을 내려가다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 머물게 되는데 그 집주인은 다름 아닌 자신이 버린 색시였다. 색시와 똑같이 생긴 집주인 여성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괴기스러운 사운드는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보여준다. 또한 집주인 여성의 할머니가 칼을 들고 신랑을 위협하는 장면, 집주인 여성과 신랑이 마주하고 대화를 하는 도중 푸른 불빛의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할머니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칼을 가는 모습은 공포스러움을 넘어 괴기스러움을 연출한다.

(색시의 모습을 한) 집주인 여성과 신랑은 생간을 부탁하는 할머니를 위해 산속으로 생간을 구하러 가고, 그 과정에서 (색시의 모습을 한) 집주인 여성의 본격적인 복수는 시작된다. 신랑이 생간을 구하기 위해 산길에 놓여있는 시체를 들춰보니 시체는 다름 아닌 자신의 죽은 색시였다. 그 과정에서 디졸브 되어 형형색색으로 보이는 (색시의 모습을 한) 집주인 여성과 할머니의 미학적인 미장센 그리고 여성의 웃음소리는 첫 번째 에피소드의 공포를 절정에 다다르게 한다. 죽은 색시의 계략은 자신을 버린 신랑의 죽음으로 복수를 완성시킨다.


영화 <며느리의 한> 스틸 (출처 : 다음 영화)


두 번째 에피소드 또한 파격적인 이야기이다. 가정보다는 공부와 독서가 우선인 선비 김판서는 공녀를 만나 잠자리에 들고 공녀는 애기를 갖는다. 이를 시기한 김판서의 아내는 공녀가 아이를 낳는 순간 아이를 가로채고 주인 할멈, 옥녀, 돌쇠와 계략을 꾸며 공녀를 죽인다. 공녀를 죽인 후 몰아치는 천둥은 변괴의 시작을 알린다. 대문에 걸려있던 고추에서 핏방울이 떨어지고, 김판서의 아내는 계략을 꾸민 주인 할멈과 옥녀를 귀신으로 착각하고 죽인다. 결국 공녀의 복수는 김판서의 아내가 우물에 빠져 자살을 하는 결말로 완성된다.


영화 <며느리의 한> 스틸 (출처 : 다음 영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두 에피소드 모두 여성이 주체가 된다. 처음에는 타자에 의해 성(性)적 폭력을 당하는 수동적 존재였지만 폭력 이후 여성은 타자를 위협하는 능동적 존재가 된다. 이승에서 누릴 수 없었던 자유를 저승에서야 누릴 수 있는 여성이라는 존재는 당시 공포 영화에서만 허락되었던 일종의 탈(脫) 압박인 것이다. 영화에서 울려 퍼지던 여성의 울음소리는 어쩌면 웃음소리가 섞여있는 애환이며 이는 복수의 끝에 누릴 수 있는 여성의 제한성을 탈피하는 해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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