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독립영화의 관람 포인트는 무엇보다도 재기 발랄함이다. 감독이 제작사, 투자사와 같은 외부 요인에 큰 제한을 받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마음껏 뽐낼 수 있다는 점은 독립영화의 존재성을 각인시킨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영화진흥위원회를 시작으로 영화 제작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과 수많은 영화제가 급격히 늘어났다. 1996년 시작된 한국 최대의 독립영화 축제인 인디포럼, 한국 독립영화의 진흥 발전과 독립영화인들 간의 친목 도모를 위한 영화 단체인 한국독립영화협회와 같은 시스템은 한국 독립영화의 시작을 함께하며 독립영화의 결속력을 단단히 맺었다. 시나리오 공모전, 영화 제작을 지원해주는 다양한 지원 제도는 독립영화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이들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3대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포함한 수많은 영화제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축제이자 그들의 목적성을 지닌다.
우리나라의 독립영화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델타 보이즈>(2016), <소공녀>(2017), <폭력의 씨앗>(2017)이다. 2019년 <기생충>(2019)의 파급력과 더불어 해외의 유수 영화제에서 성과를 올렸던 <벌새>(2019) 또한 담담하고 아름다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은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이다. 코미디 영화를 봐도 잘 웃지 않는 나를 정말 많이 웃게 해 준 영화였다.
영화는 영화 프로듀서 찬실이의 작은 성장과정을 그려낸다. 시집은 못가도 영화는 계속 찍을 줄 알았고, 천년만년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영화를 찍으며 살 줄 알았던 찬실이가 감독이 죽는 부득이한 상황으로 인해 영화를 찍지 못하게 된다. 10년 만에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는데도 그 남자는 찬실이는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정신이 헤까닥 했는지 (장국영과 닮았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귀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삶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빈곤, 그리고 그 빈곤을 통해 깨달음(wisdom)을 얻으며 한층 더 성장해 나가는 내러티브는 독립영화의 핵심적인 모티브로 사용되어 왔다. 최근에는 단순히 계급 불평등의 심화뿐만이 아니라, 일을 열심히 해도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부채로 인해 급작스럽게 경제적 파산에 이르는 등의 '신빈곤'의 형태를 보이며 신빈곤의 대상은 과거 경제적 하층민에서부터 중산층까지 그 외연이 확장된다. 찬실이의 경우 또한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해도 당장의 일거리가 없어 경제적 활동이 잠시 중단된 중산층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신빈곤의 한 축을 영화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프로듀서라는 일을 철두철미하게 하며 박대표에게 ‘한국영화의 보배’라는 소리를 들었던 찬실이의 해고(?)는 박대표의 한마디에 이루어진다. 대파를 사들고 온 찬실이는 대파가 작다는 박대표의 우아한 훈수를 시작으로 해고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자신이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 일했는지 모른다는 찬실이의 아우성은 카페에 울려 퍼지지만 그에 반응한 사람은 대파를 놓고 갔다며 가져다주는 착하지만 눈치 없는 영이뿐이다. 영이는 찬실이가 좋아하게 되는, 자기보다 나이 어린 동생이자 원망의 대상이다. 영이와의 첫 만남에서 정전기가 오르는 짜릿한 악수를 나누게 된 그들은 영화계에 종사한다는 교집합을 가지고 통하게 된다. 영화라는 소재는 그들을 이어주는 디딤돌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주관을 뚜렷하게 나눠주는 작은 걸림돌이기도 하다. 영이와 찬실이의 첫 술자리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영화 스타일은 양극으로 나뉜다. 찬실이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을 열렬히 찬양하지만 영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극하게 좋아한다. 비록 각자의 주관이 반대되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적지 않은 나이를 먹어도 영화에 꿈이 있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만큼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영이는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시나리오를 쓰지만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제 강사를 병행한다. 찬실이의 상황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녀는 삶에 중심이었던 영화와 멀어지게 되며 이PD에서 이찬실로 돌아오게 된다. 한 겨울, 가지만 앙상한 모과나무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모과를 바라보며 수많은 생각을 한다. ‘아, 뭐해 먹고살지’. 그리고 당장의 빈곤이라도 해결하기 위해 친한 배우이자 동생인 소피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된다. 천진난만한 소피는 찬실이의 케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며 모든 행동이 어수선한 소피는 찬실이의 잔소리가 일상이다. 그래도 소피는 배우라는 직업이 있으며 잣 막걸리를 짓고 기타도 배우며 영이에게 프랑스어를 배울 시간적인 여유와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인물이다. 이런 소피가, 시간적인 여유만 넘쳐흐르고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찬실이에게 잔소리를 듣는 모순적인 상황은 빈곤한 찬실이의 현 상황을 코미디로 승화시킨다.
하지만 찬실이의 빈곤한 삶은 숙박 집 할머니로 인해 잠시 방황했던 추억 중 하나로 미화된다. 할머니는 찬실이가 방황하던 시기에 영이나 소피보다 찬실이의 겉에 머무른 사람이었다. 찬실이가 자신의 직업이 PD라고 하자 PD가 뭐 하는 건지, PD가 하는 일은 이상한 일이라고 추측하며 찬실이의 가장 예민한 신경을 건들기도 했다. 찬실이는 할머니를 그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 하루를 애써서 사는 사람이었다. 글을 읽을 줄 몰라 문화센터에 가서 글을 배우고, 콩나물을 다듬고, 달을 바라보며 기도한다. 그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할머니에게 하루하루는 진심으로 소중하다. 찬실이는 시를 쓰려는 할머니에게 시는 아무 생각 없이 써야 한다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한다. 하지만 할머니가 쓴 시에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찬실이야말로 진심 어린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는 할머니의 시는 PD라는 사명감에 앞만 보며 살아온 일중독 찬실이 스스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밤하늘의 달을 보며, 어쩌면 영화감독이 꿈이었을지 모르는 그녀의 간절함을 되새기고 빈곤했던 삶을 떨쳐버린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영화시장의 침체가 극에 달하던 시기에 개봉했다. 규모는 작지만 누구보다 강하고 재기 발랄했던 이 영화는 빈곤했던 영화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고마운 영화이다. 이 영화를 찾아본 이유는 찬실이의 빈곤이 내 현상황을 많은 부분 대변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심리적 빈곤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에 이 영화는 나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었고 일정 부분 깨달음도 주었다. 그 깨달음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잠시나마 행복해진 기분은 분명했다. 누군가 독립영화의 존재성에 의구심을 품는다면 이 영화의 관람을 추천해주고 싶다. 상업영화와는 결이 다른 재기 발랄한 매력을 충분히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