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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롭게 May 06. 2021

잠자리 에티켓

지극히 주관적인 썰

지금의 남편은 잠자리에서 이전 연애 상대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바로 잠자리를 둘이 함께 즐기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진심으로. 꽤나 신선하고 반갑게 다가왔다. 과거 나의 성관계 경험을 돌이켜보면 주로 잠자리 상대를 만족시켜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2인 1조 달리기라는 느낌보다 마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들쳐 안고 결승점을 신속하게 통과해야 하는 경기 같았다.    


사실 내 진짜 속내는 2인 1조 달리기를 원했다. 함께 사랑을 나누고 확인하는 행위인데 당연히 내가 그 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화를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겉만 맴돌 뿐 근본적인 핵심을 건들진 못했다. 아마 상대방이 내 마음과 같지 않았거나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지 못해서 그럴 수 있다.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굉장히 어색하게 받아들이는 상대도 있었으니 말 다한 것이겠지.




내가 가장 흥분을 느끼는 부위는 말이야...



남편과 첫 잠자리를 가질 때 나눴던 대화다. 난 신이 났고 심지어 감사하기까지 했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고, 전혀 어색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 우린 서로의 말에 경청했고 서로의 몸을 탐색했다. 이 사람이 잠자리에 대해 나와 비슷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던 때가 있다. 둘 중 한 사람이 피곤하거나 분위기에 젖어들지 않았을 때(대부분 내쪽이었지만)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주냐는 것이다.


나는 한껏 달아올랐을 때 아무리 상대방이 우회적으로 거절한다고 해도 마음이 상하기 마련이다. 남편이 날 거절하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꼭 안아준다. 남편 또한 자기가 원할 때 무조건 잠자리를 가져야 하는 건 아니지 않냐며 괜찮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서운한 감정도 반드시 상대방에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서로의 타이밍이 어긋나 사랑을 나누진 못했지만 아쉽다고 - 다음엔 서로의 타이밍이 맞아 꼭 함께 즐겼으면 한다고 말이다.






잠자리에서 누가 적극적이고 누가 수동적인지는 중요치 않다. 섹스를 몸의 대화라고 한다면 당연히 서로의 몸이 보여주는 무언(無言)에 귀 기울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탐닉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잠자리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진부한 소리로 들리는가. 하지만 내 주변만 둘러봐도 본인의 몸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아니, 자신의 몸에 대한 탐구를 적극적으로 할 생각 자체를 못한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그보다는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흥분시켜줬으면 좋겠는지, 섹시한 속옷이나 야릇한 분위기 조성 같은 것들에 더 신경을 쓴다.


위에 나열한 것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먼저다. 나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 있지 않다면 계속 상대방이나 외적인 것들만 탓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섹스할 때 나도 마음껏 즐기고 싶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한쪽 사람에게만 쾌락이 선사되는 성행위는 건강한 성관계에 위배된다. 굳이 결승점에 쾌락이 자리하고 있지 않아도, 함께 다다르고자 노력했다면 쾌락 그 이상의 끈끈한 감정이 자리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잠자리 에티켓을 장착한 채 즐거운 성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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