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소롭게 May 13. 2021

절대로는 절대로 없다

기피 단어사전 수록 단어




난 절대로 가족과 틀어지지 않을 줄 알았다.  난 절대로 연인과 싸우지 않을 줄 알았다. 난 절대로 그 친구가 날 배신할 줄 몰랐다. 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살다 보면 절대로란 단어의 불완전한 모습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날이 온다. 절대는 절대 없다는 것만 맞을 뿐, 절대를 함부로 쓴 문장은 결국 틀리게 되는 걸 보게 된다. 






사계절을 함께 하고 법적으로 부부가 된 남편과 나는 연애할 때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이게 내 무의식 중에 연속적인 기록으로 자리 잡은 것일까. 깨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깨지 않는 것을 좋은 것이라 여겼다. 첫 갈등은 결혼을 준비할 때 터졌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스몰웨딩 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던 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준비해나갔다. 문제는 하객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주류에서 발생했다. 


주류의 종류는 와인으로 합의를 봤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었다. 남편은 '당연히' 레스토랑 한편에 있는 바 테이블 위에 와인을 일일이 잔에 따라놓고 하객들이 가져가는 줄 알았다. 반면 나는 '당연히' 각 하객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 와인과 빈 와인잔을 명수에 맞게 놓아두는 줄 알았다. 첫 문화 차이가 드러났던 순간이었다. 결국 내 뜻대로 각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걸로 합의를 봤지만 엄청 싸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난 '절대로'라는 단어에 얽매여있었다. 우린 절대 이런 식으로 다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남편은 절대 이렇게 날 대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절대, 절대, 절대... 그때 그 단어를 품고 사는 게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부질없는 것인지 알았더라면, 남편을 더 많이 보듬어주고 사랑해줄 수 있었을 텐데. 무엇보다 나 자신이 얼마나 미성숙하고 불완전했는지(지금도 그렇지만) 더 빨리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그때부터였다. 누군가 우리 뒤에서 '준비, 땅!' 외친 것처럼 여기저기서 사소한 갈등이 생겼고 엉망진창으로 풀어나갔다. 그냥 대충 '넘긴 것'이지 풀었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 얼버무렸는데 시간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게 감정이었다. 오히려 시간이 쌓여갈수록 풀리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더 깊은 갈등의 골을 파내고 있었다.







쨍그랑!




난 순간 정지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던 것이다. 누군가 내 앞에서 분노를 터트리며 물건을 집어던지는 걸 본 적이 있던가? 그것도 나 때문에? 낯설고 불안하고 두려웠다. 이 광경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뇌에 입력된 게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남편과 내가 전혀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갈등을 다루고 있고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건 직감했다.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좋을 땐 세상에 우리 둘 밖에 없는 것처럼 달달하다가도 언쟁이 생기면 서로를 찢어 죽일 듯한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이게 지금 괜찮은 걸까? 주변인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지쳐갔다. '대화로 풀어야지', '신혼 땐 다 그래', '다 그러고 살아'... 대화로 푼다고 풀어도 찌꺼기는 남았고, 좀 더 노력하는 신혼기를 거치고 싶었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우리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우리, 뭔가 잘못됐어



매거진의 이전글 잠자리 에티켓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