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는 받기, 대학원은 주기
공대 대학원 입학을 꿈꾼다면, 우선 학부와 대학원이 어떻게 다른지부터 알아야 한다.
학부는 고등학생이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들어가면 밟게 되는 과정이다. 2 ~ 4년 정도의 정규과정을 마치면 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면 석사 혹은 박사 과정을 밟게 된다. 영어로는 학부 과정을 undergraduate program, 대학원 과정을 graduate program 이라 부른다.
학부는 대학교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 (education) 을 제공해주는 것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학부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학사 커리큘럼 안내를 잘 살펴보면 새로 입학하는 우리 학부 신입생들에게 전공 교육을 어디 하나 모자라지 않게 잘 시켜주려면 어떤 과목들을 개설해주어야 할까, 하는 선배 교수님들의 깊은 고민이 녹아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학교마다 교육의 색채는 조금씩 다르다. 독일과 스위스의 경우, 필자가 일 년 간 체류했을 때 관찰한 바, 각 학교의 오랜 철학과 전통이 학사 커리큘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덕분에 회사들은 이 학생이 어느 학교 어느 학과의 졸업장을 받았는지 하나만 보고도 이 아이가 어떤 교육을 받고 졸업한 아이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독일과 스위스는 학교마다 교육 체계가 매우 잘 갖춰져 있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경우는 어떠할까? 미국은 학부 등록금이 어마어마하다. 몇 천만 원의 등록금을 내고 다녀서 그런지 아이들은 매 학기 최대한의 교육을 받기 위해 발버둥 친다.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탑 스쿨 들을 보면 우리 학부 과정이 얼마나 인텐스 하고 무시무시한지를 마치 자랑거리로 삼는다. 우리 학교에 오면 매우 힘들겠지만 정말 멋진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서 보란 듯이 엄청난 난이도의 과제를 내주어 신입생들을 밤을 새우게 하기 일쑤다. 내가 미국에서 학부 아이들 수업에 조교로 참여했을 때에도 눈에 불을 켜고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교수도 조교도 수업 준비에 고생을 많이 한다.
그렇다면 대학원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학부가 학생들에게 교육 (education) 을 시키는 곳이라면, 대학원은 학생들에게 연구 (research) 를 시키는 곳이다. 연구라는 것은 말 그대로 탐구를 뜻한다. 즉 탐구가로서의 정신을 발휘해 인류 지식의 폭을 한 단계 넓혀나가는 작업이다. 이 세상이 당면한 문제를 발견해내고, 왜 아직 인류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지를 설명해내고, 적절한 솔루션을 개발해 널리 알리는 일을 말한다.
연구는 단순한 호기심에 의해 시작될 때도 있다. 예컨대 우리 은하수의 모습은 어떠할까? 라는 순수한 과학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 탐구가 시작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연구는 굉장히 뚜렷한 목적성을 지닌 채 시작된다. 우리에게 닥쳐온 문제, 하지만 아직 아무도 그렇다 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문제, 혹은 제시를 했어도 그 해결책에 한계가 많은 문제를 포착했을 경우, 연구가 시작되곤 한다.
즉 교육이 지식을 받는 것이라면, 연구는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 나눠주는 일이다.
돈의 흐름을 생각하면 이 둘의 차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보통 학부의 경우 내 돈을 등록금으로 낸 후 교육을 받는 식이고, 대학원의 경우 돈을 받으며 학교에서 일 (연구 활동) 을 한다. 학부의 포커스가 내부 학생들을 향해 있다면, 공대 대학원의 포커스는 바깥세상을 향해 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창조의 공간이다.
이런 관점에서 학부의 인재상과 대학원의 인재상은 꽤나 다를 수 있겠다. 학부의 경우 제공받는 교육을 잘 소화하는 사람이 될 테고, 대학원의 경우 특정 문제에 대해 깊이 잘 알고 그것에 공감하며 그 문제를 한 번 풀어보겠다는 뚜렷하고 강한 열정을 지닌 사람이 되겠다.
이렇기에 대학원에 오면 학부 때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트레이닝이 시작된다. 시장을 조사하는 능력, 일반 대중에게 이 문제가 왜 중요한지를 설득해내는 능력, 문제를 풀기 위한 기본 세팅을 하는 능력, 결과를 분석하는 능력, 그리고 간결 명료하게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을 하는 능력까지 모두 습득하게 된다.
이로서 학부 때 공부를 잘해야만 대학원에 갈 수 있다, 는 말에는 고개를 조금 (아니 매우) 갸우뚱해볼 수 있다. 지식 습득을 잘한다고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창조하는 일을 잘하는 것일까? 받는 것을 잘한다고 해서 주는 것을 잘하는 것일까? 물론 둘 간의 상관관계는 있겠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절대 되지 못한다.
공부는 반쪽짜리 언어이다. 세상에는 문제들이 가득하니 여기서는 배움의 자세뿐 아니라 창조의 자세가 필요하다. 고로 스스로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중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도 충분히 공대 대학원을 꿈꿔보고 연구를 해볼 수 있다. 집에서 하든, 대학원 연구실에 나와서 하든, 해볼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더욱 혁신적인 성과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