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나는 서점을 참 좋아했다. 책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서점을 좋아했다. 가끔 서점에 들러 어울리지 않는 책을 사 들고 나오기도 했다. 지금이야 다 버려졌지만 기분에 따라 책을 샀다. 그러니 결국은 다 읽어 낸 책이 별로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니 지금도 영향이 없지는 않다. 마뜩잖게 여전히 나는 제목과 표지에 휘둘려 책을 고른다.
남대문에서 일을 하셨던 부모님은 쉬는 날이며 나와 동생들을 데리고 서울 나들이를 가곤 했는데 가끔씩 광화문에 있는 서점을 들르곤 했다. 태어나 그렇게 큰 서점은 처음 보았던 기억도 난다. 그때마다 각자 골라 온 책 한 권씩을 아무렇지 않게 사주시곤 했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한 건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불쑥 '삼국지’ 상권과 하권을 들고 와 계산대에 내밀었다. 지금 생각해도 역사에는 무지하고 한자는 더더욱 모를 내가 알아먹을 수 없는 책이 었을 텐데 엄마는 계산을 해주었고 그 책을 산 이유는 묻지 않으셨다. 삼국지가 아니더라도 엄마는 늘 그랬다. 우리 가족 누군가가 선택한 일들에 대해 왜 그랬냐고 묻지 않고 그냥 덤덤히 이해하거나 믿어주었다.
집에 와서 삼국지 상권을 읽으며 무슨 내용인 줄도 모르고 소파에 앉아 책상에 앉아 몇 날 며칠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느낌이라는 게 있지 하권을 펼쳐 들었을 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중권은 사오지도 않고 상, 하만 덜렁 사들고 온 것이다. 다음에도 그 서점을 들렀지만 결국 중권은 사지도 않았고 하권은 읽지도 않은 채 어딘가 버려졌을 것이다. 여전히 그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이후 찾은 그 대형서점에서 나는 책 보다 문구류에 관심이 더 많았다. 충분한 펜들 충분한 노트들 충분한 스티커들을 열심히 사 모았다. 지금의 내 딸을 보니 미니멀한답시고 그만 사라고 잔소리하고 있는 나 역시 그랬던 기억에 고개를 저어 버린다. 그 엄마에 그 딸이네!
학창 시절 집 앞에 작은 서점을 좋아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책들을 펼쳐 보며 서점에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허름한 건물과 건물 사이에 판자를 끼워 넣어 창고처럼 만들어 놓은 듯 한 그 좁다란 서점안을 가득 채워 놓은 책들이 있던 그곳이 그냥 좋았다. 새 책 냄새도 좋았다. 전과, 잡지 그 외에도 그 시절 많은 책들을 그곳에서 구입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지금도 그 시절 나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은 곳이다. 그때의 기억은 그저 흐뭇한 미소를 안겨 준다. 읽었던 책이야 기억조차 없지만 말이다.
얼마 전 아들의 가방에서 ‘데미안’을 발견했다. 아들에게 “데미안이네! 왜 이 책을 들고 갔어?”라고 묻자 그냥 읽어보고 싶어서 라는 대답과 함께 귀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에게는 역시나 어울리지 않는 책이라 생각하며 나의 과거를 떠올렸다. 나는 여전히 그 엄마에 그 아들이네! 어울리지 않는 책에 관심을 보이는 아들이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결혼하고 신혼살림을 장만할 때 물푸레나무로 된 책장 하나를 산 적 있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담아 나무 선반에 가지고 있던 책을 하나씩 꽂아 두었고 사이사이 작은 화분이나 액자를 장식해 두었다. 한 번은 현주언니가 집에 와서는 내 책장을 보며 말했다. “이거 장식용이네!”
마음이 콕 찔려와 나도 모르게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실 읽었던 책은 몇 권 안된다. 그리고 출장을 다니며 일본에서 산 책이라던지 표지가 예쁜 책, 닮고 싶은 사람들의 책이 보통이었다. 정확히 장식용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장식용 책장도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며 내용물을 하나씩 비워냈고 결국 책장마저 비웠다.
내가 책을 정말 열심히 읽었던 건 그쯤부터 였던 것 같다.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을 갖고 관련 서적을 미친 듯이 읽어 냈다. 관심이 있으니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 얘기가 그 얘기 같고 그 삶이 그 삶 같은 내용들을 읽어 내며 마음도 짐들도 차차 비워내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은 에세이를 즐겨 읽었다. 예전에는 여행이 가고 싶을 때마다 여행 에세이를 즐겨 읽었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도 사진들도 나에게 “나 이런 데 갔다 왔어!”라며 자랑하는 것 같아 함께 즐기며 재미있게 읽었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은 것은 내가 이곳 양주에 이사 오면서 부터다. 남편은 생전 다니지 않던 도서관을 왜 이리 자주 가냐고 물었지만 도서관을 코앞에 두고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책 읽는 습관이 부족했던 나는 읽을 때는 또 열심히 네다섯 권을 읽어 내고 나면 권태가 찾아왔다. 비록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는 책들도 늘어났지만 다시 빌리러 도서관을 찾고 또 읽어보려 노력했다.
예전 같으면 그냥 또 멈춰버렸을 나의 독서는 아무튼 읽고 있었다. 멈춰도 다시 읽고 지쳐도 쉬었다 다시 읽고 나의 습관을 고치려 노력했다. 처음에는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 에세이만 검색해서 그중 꽂히는 제목들을 찾아보곤 하였다. 누구나 그런 경험 한 번쯤은 있을 테지만 제목에 이끌려 보다가 생각과 다른 무게감에 놀라 또 다시 뒷걸음질 치기도 했지만 결국 난 그 자리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만난 친구 영은이 덕분에 힘을 내기도 했다. 참 고맙게도 늘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친구다. 소설을 즐겨 읽는 친구 덕분에 나도 소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읽은 소설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었다.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할 친구가 있어 책 읽는 재미가 더 진해졌다. 그 후로 친구의 추천으로 읽은 책도 늘어갔다. 혼자라면 절대 읽지 않았을 소설에 관심이 생겼다.
글쓰기 모임을 시작으로 글쓰기 관련 도서도 관심이 있었으나 다들 비슷한 내용에 금세 지쳐 버렸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에세이를 좋아한다. 나에게 수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느낌의 에세이의 매력에서참아 나는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하는 멤버들과 독서모임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읽지 않은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해 보는 이 모임을 통해 정말 새로운 책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제목만으로도 내 낯빛은 충분히 어두워졌다. 한 장 한 장 읽어 나가는 동안 어려운 책이라는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런 것이 철학책은 내 기억에서 처음이었다. 잘 모르는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읽어가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처럼 다가왔지만 읽다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내가 과연 이 모임을 꾸준히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왔던 시간들이 있었다. 이렇게 책에 무지한 내가 이 모임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나의 이런 이야기를 누가 이해나 해 줄까라는 걱정도 한가득 있었다. 내가 책을 추천해야 한다는 생각마저도 스트레스 되어 몇 달을 고민했다. 그러나 그 고민을 하는 동안 나는 이 모임이 좋아졌다. 혼자라면 절대 열어 보지 않았을 책 몇 권을 함께 읽은지도 반년이 되어가는 듯하다. 한 권의 책을 놓고 공감하며 즐기는 순간도 너무 재미있다. 비록 수다가 될 지라도 함께 할 수 있음에 즐거운 모임이 되었다.
그 덕에 올해 목표 중 하나는 글쓰기 모임과 독서모임을 꾸준히 하자는 의지도 생겼다. 그리고 나는 새벽 기상과 함께 30분 책 읽기를 함께 하는 소소한 모임도 하고 있다. 가끔은 책 읽기 귀찮은 날, 30분이라도 꼭 읽어보자 라는 나의 의지를 담아 만든 모임이다. 등교를 시작으로 바빠진 일상에 꼭 30분이라도! 라는 마음 하나로 타이머를 켜고 읽어 간다. 가끔은 그 알람도 끄고 더 읽어 갈 때도 있고 오전에 할 일이 많을 때는 정말 딱 30분만 읽기도 하지만 하루도 건너뛰지 않고 매일 할 수 있는 루틴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마음으로 모인 사람 몇몇이 함께 하고 있다.
그 덕에 뿌듯한 독서 달력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 요즘 부쩍 책 읽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 참 좋다. 아는 작가도 몇 없고 지식도 많지 않지만 이런저런 계기로 끌어올린 재미들이 오늘도 아무튼 독서를 하고 있게 만들어 준다. 이 습관으로 내가 죽는 날까지 돋보기를 보며 책을 읽는 할머니가 되었으면 하는 큰 소망을 갖게 되었다. 책을 읽고 있는 요즘이 무척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