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단칸방에서 살던 기억이 난다.
대문을 지나 커다란 집 뒤쪽으로 들어가 좁을 길을 따라 들어가면 유리창이 붙어있는 작은 쪽문이 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 오면 바로 주방의 모습을 엇비슷하게 갖춘 작은 싱크대가 보이고 그 뒤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높은 턱으로 올라가는 화장실 하나 그리고 아무것도 없이 덩그러니 있는 방 하나가 있을 뿐, 어릴 때니까 그리 집이 가난한 건지 적당히 잘 살고 있는 건지 뭐 그런 계념이 없이 그 주인집 딸을 마냥 부러워했었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미미의 집이 갖고 싶다고 매일 밤 부모님을 졸랐다.
커다랗고 눈부신 보석을 품은 리본이 달린 빨간색 구두가 탐이나 그것도 며칠을 졸랐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 눈치도 없고 욕심은 많았다. 그냥 그렇게 살았다. 그래도 가끔씩 채워주는 부모님의 선물 보따리에 만족하며 살았다.
10대 때 공부를 열심히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국민학교 시절 집에서 가까운 중학교로 당연하게 입학을 했고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엄마가 학교로 상담을 오셨는데 교무실에서 나오시며 엄마가 덤덤히 "상고로 가자!"라고 말씀하셨다. 공부를 그럭저럭 못 했던 나는 무슨 자신감으로 인문계를 가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한마디가 참 야속했다. 집에 와 들어보니 선생님께서 상고를 진학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고 한다.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돼야 한다나 뭐라나, 상고에 가도 대학은 진학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엄마는 설득을 당해왔고 나는 힘들게 인문계 가는 점수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문계로 진학했으면 나의 인생은 과연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뭐 어찌 되었건 나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상고 입학을 했고 생각보다 학교 생활은 재미있었다. C/A 클럽 활동으로 하는 사진 촬영반이나 영화 감상반은 특히나 재미있었다. 학교 축제 날 내가 쓴 영화 감상평이 복도에 2편이 걸렸다. 담당 선생님은 나의 감상평 노트에 코멘트를 무척 많이 달아주시는 편이었는데 그때마다 '책을 많이 읽고 너의 생각을 넓혀가면 좋겠다'는 말씀을 꽤 많이 적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문득 아무 생각 없이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결국 그 꿈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너무 커서 쉽게 마음을 접어 버렸다. 나에게 꿈은 그냥 꿈일 뿐이었다.
대학도 가기 싫다며 진학을 꿈꾸는 친구들 틈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탈해 버렸다. 나에게는 공부도 대학을 가는 준비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엄마가 일 하시는 남대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는 의상디자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동대문과 남대문에서 디자이너라는 이름의 노동을 즐겼다. 꿈이라는 건 저 멀리 두고 나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현실만으로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세상을 너무 편하게만 살아왔다. 힘들게 무언가를 알아보려 노력하지 않고 그 일이 고민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때마다 그냥 내가 즐겁다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버릇처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이 너무 무심코 뱉어버린 거다.
무던하고 평범히 그렇게 살아온 지금 뒤를 돌아보면 나는 한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
힘들어야 성장한다는데 커가기만 하고 성장을 하지 못한 것이 결국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철이 아직 덜 들었나 싶기도 하다.
며칠 전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술학원을 개원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새벽 기상에 관심을 보이며 한 연락이었을 테지만 난 온통 '친구가 미술학원 원장님이 됐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친구가 미술을 전공하는 동안 나는 무얼 했을까? 이 친구는 아직 어린아이들을 키우며 학원을 개원하고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남들은 누군가의 힘듦은 보지 않고 성공한 결과만 본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었다.
나는 과연 무엇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부러움의 연속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을 곱씹어 보면 그 친구도 힘든 공부를 누구보다 열심히 했을 테고 그 전공 아까워 학원을 만들기까지의 수많은 고민과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지금의 자리를 이뤄냈을 텐데 난 어리석었다.
복직도 마음먹고 달려들었다면 다시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팔자 좋게 아이들은 운운하며 나는 백수 아줌마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에 집착하는 편도 아니지만 '일하면 좋겠다. 돈 벌고 싶다!' 이 모든 말들은 그저 현실에 대한 푸념일 뿐이었다.
그렇게 하고 싶다는 일들에 대한 노력을 결국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무턱대고 성공은 하고 싶은데 정해진 답은 없고 내가 좋아하는 거? 그런 건 너무 많지! 그렇다고 그중에 하고 싶은 거? 잘할 수 있는 거? 그것으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여러 질문들 속에서 딱히 이거다 라는 답을 나 스스로가 내릴 수 없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도 난 입을 꾹 다물고 만다. 성공이 뭘까? 뭐가 있어야 성공을 하지?
한때는 디자인샵을 만들고 싶기도 했고 구두나 가방 디자인이 해 보고 싶기도 했고 카페를 운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여전히 나에게는 그냥 꿈이었다.
내 인생도 시험처럼 답안이 있다면 좋겠지만 강의를 듣고 책을 보다 보면 한숨이 나온다. 결국 그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인데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나를 잘 달래지도 잘 키워내지도 잘 알지도 못했던 자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오늘도 나를 알아가는 연습을 한다. 아침에는 모닝 페이지, 저녁에는 일기 그리고 목요일 글쓰기 모임과 함께 sns에 아주 가끔 열 줄 일기라는 태그를 달고 짧은 글도 생각나면 써본다.
성공이라는 말은 나게서 아주 멀리 있다. 아직은 그렇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부터가 고난이다. 내 나이 마흔을 넘기고도 "난 지금을 가장 열심히 살고 있어!"라고 말하지만 성공이 아닌 성장을 위한 구름판일 뿐이다.
어떠한 성공을 꿈꾸는지도 모르는 나에게 계속해서 이야기를 던지고 만들고 답한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이 백수 아줌마도 성공은 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