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린이집 엄마들을 만났다. 우리 집 막내들의 어린이집 졸업 이후 처음으로 밥을 먹는 자리였다.
가끔 하원 후 놀이터에서 만나 짧은 만남은 갖기는 하지만 날 잡고 만나 점심을 함께 하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도서관에 들렀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 자리에서 책을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엄마들 셋이 함께 등장했다. 책을 보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시작으로 한 엄마가 최근에 사서 본 책 이야기를 꺼냈는데 꽤 유쾌한 분위기가 되었다. 책 제목을 기억 못 해 더듬거리고 책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니 어깨를 한껏 접고 당황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장난스럽게 나무라며 놀리기 시작했다. 이리 배꼽이 빠지도록 크게 웃는 것도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별것도 아닌데 아이들 없이 만나 풀어내는 수다와 맛있는 점심으로 마냥 유쾌하게 느껴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 끝에 놀림을 받던 엄마가 물었다, “언니, e에요? i에요?” 나는 당당히 말했다. “나 i야!”
다들 한 목소리로 의아해했다 “네???????” 물음표가 백 개도 모자란 리액션에 당황해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나는 mbti를 믿는 편은 아니지만 할 때마다 i로 나온다. 내 생각에도 나는 무척이나 내향형의 인간인 나로서는 주변의 반응에 늘 당황스럽다.
질문을 던진 엄마는 책 이야기에 어깨를 한껏 접고 있던 어깨를 날개처럼 펼쳐대며 다시 나에게 말한다. "언니... mbti는요 언니가 하고 싶은 성향을 고르는 게 아니라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 잘 체크해 보는 거예요!" 함께 모여있던 엄마들이 한 자리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당당한 말투가 재미있었다.
웃으며 다들 언니가 체크하는 목록을 다시 확인해야겠다며 입을 모아 말했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인데...'라고 선택의 결론은 결국은 i가 나온다. 재미 삼아해 본 테스트들 마다(사실 한 3번 해봤나?) 결국 난 내향형의 인간이라고 답해준다. 그 결과에 나는 한 번도 부정해 본 적이 없다. 결국 그 답을 부정하는 건 주변 사람들의 몫이다.
"나는 i이지만 좀 유쾌한 i라고 해두자... 나 보기보다 낯을 많이 가려!"라는 말에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언니 낯을 가린다는 말의 뜻을 모르고 있는 건 아니죠?"
대답하는 내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i라는데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다시 말했다.
"나는 i야 남편이 e 지....."
결국 모두 "네???????"라며 같은 리액션을 붙어 주었다. "언니 i가 내향형 e가 외향형이에요.... 반대로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 결국 대답은 더 이상 하지도 못하고 한참을 웃다가 끝났다.
엄마들은 이야기가 오늘 나눈 이야기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다고 했다.
누가 봐도 무뚝뚝한 남편은 e이고 누가 봐도 활발해 보이는 내가 i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주기란 그 무엇보다도 힘든 일이었을까?
나는 진심인데, 정말 낯을 많이 가린다. 낯선 자리에 갈 때는 잔뜩 긴장을 한다. 평소와는 다른 무뚝뚝한 얼굴로 자리를 채우고 있는 편이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다. 누군가가 먼저 말을 걸어 주지 않는다면 나는 묵묵히 아무 말 없이 기다린다. 내성적이라 쉽사리 손을 들어 나의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한다. 무언가를 꺼낼 때면 머릿속으로 한참을 생각한다. 이렇게 말할까? 저렇게 말할까? 그래서 나는 관종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무척이나 큰 사람이다. 그렇다고 너나없이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주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냥 적당한 관계, 적당한 만남, 적당한 시선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작은 관심에도 나는 무척 고마워한다. 그리고 유지할 수 있는 만큼만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나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외에는 사실 관심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쉽게 잊어버리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해 내는 일이 극히 드물다. 그것까지 관심 가질 정도로 나의 성향적 여유가 넉넉지 않다. 그래서 나는 충분히 ‘i’의 성향이라고 외쳐도 그 아무리 믿어 주질 않는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만큼은 따뜻한 마음으로 관심 갖고 유쾌하게 대하려 한다. 뭐 꼭 그러려고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내 마음이 그러려고 한다. 딱 거기까지다.
내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외로움도 많다 그래서 사람들을 좋아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펼쳐 놓지도 못한다. 그런 나이지만 내 사람들을 만나면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나는 그게 무척 좋을 뿐이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좋아하면 결국은 e란다. “언니는 e 예요!”라는 답만 남겨줬다. 제 아무리 “나 i라니까…”라는 말은 그저 핑계만 될 뿐이었다. 아니면 웃기려고 하는 말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i여도 사람을 좋아할 수 있지… e라고 해도 집에 혼자 있고 싶어 할 수도 있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혈액형으로 보는 성격만큼이나 이 수많은 사람들을 어찌 e와 i로만 성향을 구분할 수 있냐는 말이다. 물론 비슷한 부분도 없지 않을 수도 없겠지만 mbti가 뭔데?
결국은 내가 행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선택하는 일, 만날 수 있는 만큼 누군가를 선택해 만나는 일, 내가 채워야 할 휴식만큼 채워가는 일 혹은 그냥 해야 하는 일에 나를 얼마나 소비할 수 있느냐 하는 것들의 기준은 내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내가 너와 같을 수 없으니 말이다.
결국 내 마음속의 이야기는 꺼내 보지도 못하고 결국 웃음으로 때우고 우리의 만남은 끝이 났다. 그리고 모두 돌아가는 길에서 난 인사를 했다.
“언니 집에 안 가요? 어디 가요?”라는 질문에 “아! 나 영은이 만나기로 했어.”라고 답하자 리듬이 엄마가 마지막 엔딩을 장식해 줬다. “언니! i는 하루에 두 탕 못 뛰어요!” 거기에 다 같이 웃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그냥 난 그런 사람이다. i도 e도 아니다. 내 사람들에게만큼은 유난히 외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내향형의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해 주는 그럼 사람이다. 사람들을 허투루 만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데 피곤해질 수가 없지! 나에게는 힐링이 되고 성장이 되는 즐거운 시간들인데 그런 시간을 나의 에너지를 뺏기는 시간이라 여길 수가 없지, 그냥 이러고 있는 시간들이 다 나에게는 특별하고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