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문

기도

by 나르는꿈

병상을 마주하고

기도한다

성모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맞은편에서 화답한다

관세음보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두 기도는

서로가 하느님이 되고

부처님이 되고

하나의 원이 된다


십 년도 전에 목디스크 수술을 하고 병실에 있을 때였다.

정형외과 병동에다 내가 있던 병실에는 복대를 한 거동이 불편한 허리수술 환자가 많았던 6인실이었다.

마주 보는 침상에서 아주머니가 묵주기도를 하셨다.

편안한 얼굴로 묵주알을 꾹꾹 눌러 한 알 한 알에 기도문을 외우시는 걸 보면 나는 속으로 관세음보살하고 기도했다.

억지를 부리자는 게 아니고 그분의 기도에 나도 덩달아 기도하는 마음이 되어 관세음보살 한 거다.

어느새 나도 불자가 되었나 보았다.

나는 삼대 종교를 두루 거쳤다.

뽑기로 들어간 중학교가 기독교 재단이라 3년을 성경시험도 보면서 자연스레 학습세례도 받았다.

고등학교는 가톨릭 재단이었다. 이 역시 나의 의지가 아니고 그렇게 배정이 되었던 거다. 교장선생님이 수녀님이셨고 종교시간에는 목사님 대신 수녀선생님이셨다.

나는 교회에서 성당으로 다니는 곳이 바뀌었다. 크게 종교가 바뀌었다는 생각을 안 했다.

다소 산만하게 개방적인 교회보다 (이건 내 개인적인 느낌이다.) 하얀 미사보를 쓰고 기도하는 성당의 분위기와 환상적인 성모마리아상이 좋았다.

종교에 성실한 편이 아니라 영세명은 받지 못했다.

필요한 때만 하느님과 성모마리아를 찾았는데 결혼을 하니 시어머님이 극구 반대하셨다.

집안 망치려 하냐고 한 집안에 두 종교는 없다 하셨다.

그렇다고 시어머님이 절에 정기적으로 다니시는 분은 아니시다. 한 번도 스스로 절을 찾아가신 적도 없으신 민족신앙적인 것이었다.

살짝 당황했지만 나 자신이 종교에 매달리는 열렬 신자가 아니었기에 무신론자처럼 지냈는데 첫아이의 출산으로 나는 갈 곳을 잃고 헤매어야 했다.

뱃속에서 양수가 터져 나쁜 물을 마신 아기가 인큐베이터에서 보름을 넘게 있을 때 나의 기도는 길을 잃고 방황했었다. 어디다 기도를 해야 할지 나는 정말 무서웠다.

내가 알던 하느님이나 성모마리아를 찾으면 집안에 해가 될까 봐 그 순간에 그런 겁에 질려 울기만 했었다.

나란히 면회를 하던 옆의 산모가 사도신경을 읊조리며 기도하는 게 부러우면서 나는 시어머니의 말이 생각나 어디에도 기도를 못하고 울기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절에 다니기로 했다.

기도하고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다. 혼자 곁눈질로 절을 하는 자세를 따라 했고 불당에 있는 천수경 책을 읽었다. 조용하고 한적하고 혼자 기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렇게 나는 불교인이 되었다. 정기적으로 절기마다 찾아다니지도 아니하는 불성실한 신앙인이지만 나는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기도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의지가 된다.


하느님과 성모마리아님과 부처님

모두가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던 나의 의지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