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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잇 Feb 16. 2024

누구에게나 기대 쉴 수 있는 나무가 필요하다

혼자 힘듦을 삼키는 당신에게


⠀ 짐을 얼추 챙기고 집을 나설 때는 그저 '어라?'싶은 아리송한 기분이었다. 마치 대학을 다닐 때 그저 잠시 기숙사에 가는 것처럼 언제든 다시 돌아와도 될 것 같은 기분. 하지만 결혼을 앞두고 지금의 남편과 살림을 합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그럴 일이 없어야겠지만 '이혼'이라는 큰 결심이 서야만 다시 돌아오게 될 친정집이 된 셈이다. 문을 나서면서 그제야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멈칫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차에 올라탔던 기억.


⠀ 차에서 신혼집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그저 멍했다. 시시콜콜한 대화가 오갈 법도 했지만, 왜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혼하고 나올 걸 그랬나' '부모님이 혹시 서운하시지는 않았을까' 사정이 있어 양가 부모님에게 결혼 전 동거 허락을 맡고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발걸음이 무거웠다. 앞으로 다시 못 볼 사이도 아닌데 부모님에게서 몇 걸음 멀어진 기분. '아, 결혼이란 이런 거구나.'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에게서 독립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것 같다.


⠀ 손에는 엄마가 주신 2개의 편지가 들려있었다. 하나는 나에게, 하나는 남편에게 써주신 편지. 아마도 울겠지, 하다가 어차피 울 거면, 싶어서 조심스럽게 꺼내 읽었다. 그리고 결국 울었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며 그것도 한참을.


⠀ 엄마와 아빠는 재혼이셨다. 엄마를 처음 만난 건 아마도 7살. 그 당시 엄마와 함께 했던 기억들이 어렴풋하게 남아있지만 이상하게도 첫 만남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랬는데 편지에서 그 순간을 만났다. 본 적 없고, 만난 적 없는 엄마를 '엄마'라고 불렀던 7살의 나. 그런 나를 보며 '엄마'가 되어주겠다고 결심하신 엄마. 누구에게도 결코 쉽지 않았을 그 찰나의 순간. 기억 속에 없는 그 순간이 오래도록 내 마음을 시리게 했다.


⠀ 내가 다시 그 편지를 떠올린 건 아이가 나를 보고 처음으로 '엄마'라고 불렀던 순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고 싶은 사람. 아이는 나를 '엄마'라 부르며 온 마음을 다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7살의 내가 '엄마'라고 불렀을 때 엄마가 느꼈을 무게감을. 그런 나를 비롯해 무려 4명의 아이를 오롯이 키워내신 엄마의 그 지난했을 시간들을.


⠀ 언젠가 읽었던 《회복탄력성》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워너 교수가 40년에 걸친 연구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회복탄력성의 핵심적인 요인은 결국 인간관계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제대로 성장해 나가는 힘을 발휘한 아이들이 예외 없이 지니고 있던 공통점이 하나 발견되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그 아이의 인생 중에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 나는 이 부분에 조금 더 덧붙여서 말하고 싶다. 믿고 의지할 어른 한 명의 존재는 아이에게 언제든 비를 피할 수 있는 나무와 같다고. 힘들 때마다 기대어 쉴 수 있고,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존재라고. 내가 지금 이렇게 단단한 마음을 가지게 된 건 결코 혼자 힘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뼈아픈 깨달음.


⠀ 그러니 기억해야 한다. 예외 없이 어린 시절을 겪는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존재가 한 명쯤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한 어른이 된 우리는 언제든 ‘나무’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내가 아이에게 삶에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믿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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