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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한살롱 Oct 14. 2022

1.무기력 탈출을 위한 '그냥 한 숟갈'

수술과 이혼이 가져다준 무기력  






14년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두 번의 수술을 연이어 한 그즈음 어느 평범한 아침 날,

침대에서 눈을 떠 천정을 바라보는데 '더 이상 내 삶에 희망이 없는 걸까?' 란 생각이 들었다.

몸은 움직이고 싶지 않았고, 덮고 있는 얇은 차렵이불은 솜이불 열개를 겹쳐놓은 듯 무겁게 느껴졌다.


그 어두컴컴한 무기력과 우울의 주범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또는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간들,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닭과 달걀처럼 어디서부터 끊어내야 할지 쉽게 읽히지 않았다.  

휘몰아치는 여러 사건들에 매몰된 채 이미 너무 지쳐있어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힘 또한 바짝 말라 있었다.





그렇게 꽤 오래 지지부진한 시간을 보내다가 내가 겪고 있는 무기력과 우울감은  '일어난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걸 처리하고 감당할 수 없는 '체력'에서 싹튼 것임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 "네가 이루고 싶은 일이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드라마 미생에서 나온 대사가 떠올랐다.



네가 이루고 싶은 일이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야

네가 후반에 종종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귀가 더딘 이유
모두 체력의 한계때문이다.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 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 밖에 안돼

- <미생 중에서> -



2019년 갈색세포종 부신 제거 수술, 2021년 자궁 경부 원추 절제술, 2022년 자궁 적출 수술까지 2년 사이 3개의 수술과 이혼이라는 큰 사건을 연이어 겪은 후 나의 주관적인 나이는 생물학적 나이를 훨씬 넘어서 있었다.  

자고 일어나도 20% 정도 충전된 핸드폰과 비슷해서 40대의 몸으로 7~80대의 기분을 느끼는 날이 오래 지속되었다.

 

마음 그릇이 작아져서 여유와 인내가 깃들 자리가 턱없이 부족했고 (꾸준히 마음 수련을 해온 사람들은 가능한 일이지만! ) 나의 몸은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특히 수술 후에는 조금 움직이면 다시 한참 자야 할 만큼 모든 것이 힘에 부쳤고, 눈, 목, 머리 등이 자주 아팠으며 자고 일어나면 자꾸 치통과 손 저림이 아는 체를 했다.



타인과의 비교는 잘 안 하는 편이라 뒤늦게 인지했는데 나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습관적으로 비교하고 있었다.

'예전엔 다섯 시간도 쉬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는데...'  '예전엔 맥주 한 잔 마신다고 이렇게 머리 아프지 않았는데...' '예전엔 스쿼트 100개쯤은 금세 할 수 있었는데...' 결정적인 일들이 일어나기 전의 나, 그러니까 과거의 나의 체력과 비교하며 일상적으로, 반복적으로 절망하곤 했고, 그렇게 움튼 부정적인 감정들은 조용히 그러나 꽤 빠른 속도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사실 실마리를 찾기 전까지가 제일 갑갑하고 어두운 시간이 아닐까.

탈출에 도움이 될 만한 단서를 알아차리자마자 컴컴했던 동굴 너머 가늘지만 선연한 빛줄기가 보였다.

' 이제 이 불량 배터리 개선을 위해서 뭘 해야 할까?'

곰곰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단순한 원칙을 세웠다.

우선 무기력을 탈출하겠다고 원대하고 대단한 목표는 만들지 않기, 자기 전 양치질엔 소금 양치를 추가하는 정도의 조금은 사소해 보이고 쉬운 것으로 정하기.

그러니까 '밥 한 그릇을 한 번에 다 잘 먹어야지'가 아니라 '밥 한 숟갈을 일단 떠야지'하는 마음 

모자란 마음 근력, 체력으로도 할 수 있는 한 숟갈의 시도, 그냥 한 숟갈, 그렇게 빛줄기처럼 떠오른 키워드가 '그냥 한 숟갈'이었다.

무기력을 벗어나기 위해 나를 다시 돌보고 일으켜 세우는 데 필요한 한 숟갈부터 그렇게 시작하기로 했다.

우선 제일 시급한 체력,  하루 단 10분이라도 운동 한 숟갈을 매일 뜨기로 마음 먹었다.

한 숟갈씩 채우다 보면 조금 작은 그릇도, 그보다 조금 더 큰 그릇도 채워지는 날이 있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2022년 7월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누군가가 보기엔 일상의 움직임을, 스스로가 보기엔 운동을!

정량적으로 보면 하찮을 수 있어도 의미적으로 보면 가치 있는!

나의 삶에 운동을 초대하는 한 숟갈을 그렇게 떴다.

그리고 그것은 예상대로 무기력을 탈출하는 첫 번째 발판이 되어 주었다.  




삶의 흉터가 늘어날 수록

자신만의 삶의 무늬가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져있다가

탈출하는 과정을 연재합니다.


유튜브 : 유리한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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