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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한살롱 Oct 18. 2022

2.운동 한 숟갈,스물아홉 숟갈

매일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무기력탈출


스스로의 체력을 레벨 0이라고 생각하고 수준에 맞는 운동 한 숟갈을 찾기 위해 유튜브의 많은 운동 영상들을 기웃거렸다.

유명한 <땅끄부부> <힙으뜸> 채널도 해봤고 우연한 발견을 기대할 땐 매일 다른 키워드로 검색하여 마음이 끌리는 대로도 해봤다.

단기간에 살을 얼마간 빼야 된다는 목표가 없었고, 오로지 하루 한 숟갈의 운동이면 되니 어떤 운동이든 사실 괜찮았다.

산책하고 싶은 날은 오전 산책을 잠깐 했고, 요가, 타바타, 스쿼트 50개, 자전거 타기 등 이것저것 경계 없이 해보았다.


'재미있을 것, 하고 싶을 것' 기준이 단순하니 자유로웠다.

정말 5분 남짓으로 끝나는 날도 있었지만 스스로 가혹하게 굴지 않았다.

운동복을 입은 나를, 운동화를 신은 나를, 잠깐이라도 문 밖을 나선 나를 인정해 주었다.

어두운 동굴에서 움츠려 있던 나를 애틋하게 사랑해주고 격려해주기!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하는 첫 번째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니까



운동화를 신은 것만으로도 나를 격려하기      photo by_ bruno-nascimento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참석했던 <오코치의 비전코칭 특강>에서도 아래 문장이 마음으로 흘러왔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결과로 피드백하지 말고
 '과정'으로 피드백하는 것이 중요해요.


무기력으로 넘어진 나를 관대하게 대하고 '시도' 자체에, '과정' 자체에 가치를 두었던 건 잘한 일이었구나 끄덕이게 되었다.


처음 유튜브의 운동 영상을 따라 할 땐 3분만 지나도 어지러웠는데 이전처럼 절망하고 그만두지 않았다.

'3분이라도 할 수 있잖아. 일주일 지나면 4분 또는 5분은 할 수 있을 거야. '

현재의 내 체력 수준을 가늠할 수도 있었고, 5분은 운동효과가 없지 않아?라고 묻는데도 그 5분을 매일 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한 숟갈을 잘 먹을 수 있어야 두 숟갈, 세 숟갈이 될 거니까.

그런데 정말 타인이 보기엔 아무 체계 없는 그 시도들도 차곡차곡 쌓이니까 어느새 10분~15분 정도는 운동을 할 수 있는 몸이 되어 있었다. 분명 5분만 해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15분!

운동처럼 보이지 않는 움직임, '운동 한 숟갈'을 시작한 지 34일 뒤의 일이었다.


홈트로 몇 가지를 따라 해 보며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지은 다이어트> 였는데

초보자도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인지할 수 있는 코칭의 목소리가 영상 내내 차분하게 흐른다.

좋은 공간에서 함께하는 기분을 느끼며 지속하면 몸이 전반적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문제는 생각보다 내 체력이 그 운동을 매일 즐겁게 소화시키기에 여전히 미달이었던 것이다.

운동을 한 날은 분명히 좋았고 뿌듯했는데 다음 날 하려면 마음의 저항감이 심했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기분 대신 조금 더 스스로 하고 싶은 운동이 나을 거 같아 다시 찾아 헤매었고

어느 날 알고리즘의 축복으로 <모멘트 핏의 뱃살 엔딩 50일>을 만났다.






운동 한 숟갈, 스물아홉 숟갈


'어, 이거 할 만한데?  뭔가 쉬운 듯하면서 은근 운동이 잘 되는데?'

'언제 끝나지? 으으.. 고통스럽다'대신 '으으, 조금만 버티면 될 거 같은데?'

어려운 쉽게 느끼게 해주는 록코치의 경상도 사투리가 심지어 응원 노래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현재는 29일 차인데 처음 시작할 때와 운동 자세도 리듬도 많이 달라졌다.

한 숟갈이 쌓여 스물아홉 숟갈이 되니  버팀성이 달라지며 그 사이 자신감이 많이 올라갔고,

이 체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조하며 무기력하던 마음 역시 부쩍 줄어들었다.


'제법 운동이 재밌어졌잖아?'

운동할 수 있는 몸이 되니 수영, 요가, 필라테스, 달리기 뭔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아침 수영을 다녀볼까?'란 생각이 빠르게 스쳤다.

수영은 어릴 때 배워 주로 여행갔을 때 했지만 물에 들어가 있을 때의 자유한 느낌이 떠올랐다.

'그래, 우선 수영부터 해보자'

운 좋게도 지역 내에 괜찮은 스포츠센터가 있고 마침 차로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처음 새벽 수영을 간 날


다음날

새벽 5시 45분에 일어나서 전날 꾸려놓은 수영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는 낯선 모습

'이 시간에 내가 운동을 하겠다고 집에서 나간다니..' 피식 웃으며 스포츠센터를 간 첫날의 느낌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새벽 시장을 갔을 때와 비슷한, 살아있는 에너지의 파동.

강습을 받는 30~40대도 꽤 있었지만 운동을 하러 나오신 고령의 할머니들이 많아서 우선 놀랐고

수영 장안에 존재하는 무언의 질서와 끈끈한 에너지에 그 다음으로 놀랐다.

제일 놀라웠던 건 50M 레인을 쉬지 않고 3,4번은 거뜬히 그리고 유유히 헤엄치는 5,60대였다.

나는 30M만 가도 허덕거리는데!


 unsplash.com/@rbwilson


집을 나설 때 수영 역시도 우선은 한 숟갈만, 힘들면 레인 한 두 번만 오가다 돌아와도 좋다고

스스로에게 관대하게 말해주었다.

'첫날인데 뭐 어때?' '샤워만 하고 와도 충분해'

오다가다 쉬며 50M 레인을 6번 왕복한 것, 첫 숟갈을 뜬 날, 수영 한 숟갈의 기록이다.

어쩌면 무기력함과 우울감은 그렇다고 느꼈던 주관적인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바닥이라고 생각되었던 그 무거운 에너지는 생각보다 작고 소소한 일상으로 조금씩 흩어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운동이 아닌 다른 것도, 또 한 숟갈을 뜰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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