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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Mar 01. 2023

푸른 안장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는 욕망

그 길을 지키는 길고양이에겐 낡고 낡은 푸른 안장이 있었어. 거기에서 볕을 쬐기도, 그늘이 드리워지면 낮잠을 자기도 했지. 고양이에게 푸른 안장은 안식처였던 거야. 사실 그 고양이가 언제부터 그곳에 살았는지는 아무도 몰라. 다만 어느 날 어느 때부터 고양이는 그곳을 지키고 있었어.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어느 날 신발에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말을 끌고 무거운 걸음을 내딛는 나그네가 그곳을 지나갔어. 그리고 길가에 놓인 푸른 안장을 발견했지. 나그네는 생각했어.     


'아니, 저렇게 멋진 안장이 왜 이런 길가에 버려져 있지? 저 안장을 내 말에 얹으면 정말 멋져 보이겠는걸. 모두 나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겠지? 길가에 놓인 안장이니 주인은 없겠군. 안목 없는 것들, 저런 보물을 이렇게 내어놓다니. 저 더러운 고양이만 치우면 되겠군.'     


나그네는 욕심으로 번들번들해진 눈으로 안장을 바라보았어. 머릿속으로 안장을 얹은 말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우쭐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지. 이미 생각으로 안장은 나그네의 것이었어. 나그네는 상냥한 목소리로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어.     


"길고양이야, 내게 이 낡고 초라한 안장을 주겠니? 마침 나에게 안장이 없구나."

"어떡하죠? 사정은 딱하지만 이건 제가 가진 전부예요."

"내가 지닌 이 음식을 네게 줄게. 이것과 그 편안해 보이는 안장을 바꾸자."

"전 이미 배가 불러요. 전 하루하루 먹을 음식이면 족해요. 그렇게 많은 음식은 필요 없어요."

"그럼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은화를 모두 네게 줄게. 그러니 그 귀한 안장을 내게 다오."

"저한테 돈은 더더욱 필요 없죠. 이 안장이면 충분해요. 아저씨가 가진 그 은화라면 이보다 더 좋은 안장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불행하게도 길고양이의 완곡한 말은 나그네에게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 이미 욕심에 눈이 먼 나그네는 안장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를 힘껏 걷어차고 냉큼 푸른 안장을 자신의 말에 얹었어. 그리고 바빠 걸음을 재촉했지. 어서 마을로 들어가 이 푸른 안장을 지닌 자신을 자랑하고 싶었거든.     


걷어 차인 길고양이는 한참 후에 정신을 차렸지. 그리고 흔적만 남은 보금자리를 망연히 바라보았어.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던 고양이는 상처 입은 몸으로 절뚝거리며 나그네가 떠난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어. 혹시나 다시 안장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이었을 수도, 더 이상 보금자리가 아닌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져서 일수도 있었을 거야. 여하튼 어스름한 빛 속으로 고양이는 사라졌어.     


한편 신이 나서 길을 걷던 나그네는 얼마 못 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어. 안장이 익숙지 않았던 말이 발버둥을 쳤거든. 고삐를 낚아채 말을 달래 보았지만 결국 말은 나그네를 뒷발로 힘껏 차고 안장을 벗어버리고 달아났어. 나그네는 울상이 된 얼굴로 안장을 바라보다 말을 쫓아갔지.    

 

푸른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길고양이는 길가에 떨어진 푸른 안장을 다시 만났어. 길고양이는 안장 안으로 들어가 한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았어. 

얼마 후부터 그 길, 그 언저리에서 볕을 쬐고 있는 고양이를 볼 수 있었대.     





한땐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열망하면서 살았다. 

수려한 외모를, 경제적인 넉넉함을, 위트와 유머를, 노력하지 않아도 배어있는 여유로움을, 내가 가지지 못한 많은 것들에 목말라했다. 그래서 내 삶은 항상 갈증에 시달렸다.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가지려고 욕심냈다. 항상 내 삶은 자갈길이었고 다른 이의 삶은 꽃길이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던 어느 날, 스스로 삶을 깎아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많이 공허했고,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나에게는 이미 말도, 음식도, 은화도 넉넉하게 있었는데 가지지 못한 낡은 안장이 가지고 싶어 욕심을 부리는 불행한 삶을 택했던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남들보다 특별하다는 잘못된 자기애였고, 오만이었고, 불손이었다. 많이 늦지 않게 알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물론 난 여전히 남이 가진 것에 혹한다.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타는 듯한 열망이 나를 사로잡을 때도 있다. 매일 비우고, 비우고, 비우는 중인데 사실 잘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배우는 삶을 살아가는 나그네이므로, 용감하게 오늘도 비우고 비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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