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넘은 노모는 딸 얼굴에 내려앉은 기미가 걱정이다
그곳에 가면 불 밝히고 기다리는 노부모가 있다.
고속도로가 한가한 평일, 하루 이틀 휴가를 내어 시골집에 내려간단 소식을 전하면 그때부터 나이 든 부모님의 걱정은 시작된다. 때도 아닌데 갑자기 무슨 일로 내려오는지, 일하기 바빠야 할 평일에 내려온다니 하는 일이 잘 안 되는 것은 아닌지, 지긋지긋하게 뒷머리채를 붙잡고 있는 일 때문은 아닌지,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사고 없이 잘 내려와야 할 텐데, 오면 뭘 먹여야 하나, 올라갈 때 싸 보낼 건 뭐가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걱정으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다 딸이 거의 도착할 즈음 아무렇지 않은 척 전화를 한다.
‘차가 막히냐? 언제쯤 도착하냐?’ 무심한 듯 묻지만 걱정 어린 마음을 알기에 ‘코 앞이에요, 이제 들어가요.’하고, 읍내에 들러 고기 두어 근을 끊어 부모님의 집으로 들어선다.
삐걱대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직은 누런 잔디와 마당을 제집 삼아 배를 깔고 누워있는 길고양이 서너 마리가 눈을 마주쳐온다. 처음에는 도망치는 척이라도 하더니 이제는 슬쩍 쳐다보는 모양이 ‘또 왔냐? 이번엔 먹을거리로 뭘 싸왔니?’라는 표정이다. 얄밉지만 그래도 정이 든 고양이들을 흘기며 댓돌에 올라서면, 이미 문이 열리고 지난번보다 조금 더 나이 든 부모님이 반겨주신다. ‘차는 안 막혔니,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아픈데 없이 잘 있었니?’ 쏟아지는 질문에서 혼자 지내는 딸내미 걱정이 소복하게 묻어 나온다. 그 소복함에 마음이 놓인다. 잘 왔구나, 안도한다.
저녁 한 상을 거하게 받아먹고 따뜻한 바닥에 뒹굴거리다 느지막이 잠이 들고 일찍 깨야 한다는 강박 없이 늦잠을 자고, 혹여 일찍 눈이 떠지는 어떤 날은 괜히 거실에 나가 볕이 드는 마당을 바라보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차려주신 아침을 먹는다. 평소 하루 두 끼를 겨우 먹지만 시골집만 내려가면 아침, 점심, 저녁 세끼에 간식까지 푸짐하게 받아먹는다. ‘집에만 오면 배가 꺼질 겨를이 없어. 나 아침은 안 먹으니까 늦잠 자면 그냥 엄마랑 아빠만 드셔.’ 이렇게 이야기를 해봤자 부스스 눈곱 떼고 나오는 것을 봐야 상을 보기 시작하는 부모님이기에 소화제를 먹고 잠자리에 들지언정 세끼를 꼬박 받아먹곤 한다.
늦은 아침 식사 후, 아빠가 내려주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홀짝 거리고 있노라면 노모는 딸의 얼굴에 내려앉은 기미가 마음에 걸린다.
“얘, 요즘은 피부과 한 번 가면 그거 다 깨끗해진다더라. 많이 안 가도 되고 일 년에 한 번만 가면 된대. 돈은 엄마가 줄 테니까 한 번 다녀와. 젊은 애 얼굴이 그게 뭐냐. 꼭 눈물 흘리는 것 마냥. 어째 기미가 저렇게 내렸다냐. 시간 한 번 내봐라.”
“괜찮아, 시간 좀 나면 그때 내가 알아서 갈게.”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바닥으로 내린 눈길에 엄마의 발목을 싸고 있는 발목 보호대가 보인다. 한 번 삐끗하더니 고질병처럼 벌써 몇 개월을 저렇게 발목을 싸고 있으면서 화장하면 가려지는 딸의 기미가 못내 걱정인 모양이다.
괜히 찡해지는 코 끝에 관심 없는 동네 어르신 안부를 묻고, 얼마 전 동네잔치 후에 코로나가 돌았는데 홀로 사는 어르신 한 분이 연락이 안 되어 이장이 사람 불러 문을 부수고 들어갔단다, 한 동네 사는 어르신이 엄마랑 아빠를 그렇게 챙기는데 이번에 병원에 두 번이나 입원했다던데 뭐라도 만들어 가야겠다, 동네 뒷산에 골프장이 들어온다더라, 묻지 않아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그럼 햇빛이 눈부시게 들어오는 마루에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사실은 나도 이런 일이 있었다며 미주알고주알 고자질을 시작한다. 서러운 이야기는 분노를 섞어 이야기해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좋은 일은 곧이곧대로 이야기한다. 이미 두 노인네는 눈치채고 쓰린 속을 손으로 쓸어내리는데, 바보같이 모르겠지 안심하고 말이다.
무릎 베고 누운 딸내미의 흘러내린 머리칼을 넘겨주며 노모는 말을 이어간다.
“에구, 너도 이제 흰머리가 나는구나. 내 눈에 복숭아나무 밟고 서서 사진 찍던 눈 땡그랗던 대여섯 살 꼬맹인데,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 그나저나 이 기미는 좀 어떻게 하자.”
그곳에 가면 딸 얼굴에 내려앉은 기미를 걱정하는 노모가 계신다. 칠순을 넘은 노모는 딸 얼굴에 내려앉은 기미가 못내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