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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Apr 29. 2023

뜬 돌

나는 다만 위로가 필요했을 뿐

뜬 돌은 언제든 낙하할 수 있다. 보통 불안정하게 자리 잡고 있다가 '쿵!'하고 약한 곳에 떨어진다. 그래서 미리 제거하는 것이 안전하지만 어느 돌이 떨어질지, 어느 돌이 나를 아프게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재미있고 그래서 아프다.  

   

얼마 전부터 크고 작은 돌멩이가 머리에, 어깨에, 가슴에 내려앉았다. 끊었던 수면제를 다시 복용하기 시작했고 지루한 긴 밤이 다시 시작되었다. 사람마다 지닌 뜬 돌이 다르고, 견딜 수 있는 무게가 다르다. 사는 동안 그까짓 거 몇 개 안 들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제각각 버틸만하니 지니고 살겠지. 사는 게 아무렇지 않길래 무던해지고 익숙해졌구나, 난 괜찮은 거구나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이 무거웠다. 뜨는 눈이 더디고 뒤척이는 몸이 굼뜨다. 햇볕 한 줌에 반짝 눈을 뜨고 오늘은 어떤 하루일까 기대로 몸을 일으킨 게 도대체 언제냔 말인가. 바람을 찾기엔 매일 아침은 나에게 괴로움이었다.     


괴로움이 더할 수 없이 그득해지면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부모님의 시골집으로 향한다. 시골집은 동네 어귀부터 따뜻하다. 수령이 오래된 가로수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이름과 달리 붉은 줄기를 가진 흰말채나무가 반긴다. 허리 굽은 어르신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뉘 집을 찾아왔노?” 물으시면 머쓱하게 인사를 하고 ‘얼마 전 이사 온 청기와집 큰딸이에요.’한다. 인적 드물고 차도 드문드문한, 가끔은 부담스러운 시선이 그득한 그곳은 정답다.      


늘 그렇듯 이른 저녁 고기를 굽고 아빠와 술 한잔을 하며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못 하고 빙빙 돌려 근황을 나누고, TV 이야기, (웬만하면 하면 안 되는) 정치 이야기들을 나누고 뜨끈한 장판에 몸을 지지다 부모님의 방에 불이 꺼지고 난 후에야 작은 방에 몸을 뉜다. 뒤척임이 긴 날도, 눕자마자 기절을 한 날도 있었다. 뒤척임이 길어지는 날이면 건넌방의 인기척이 유난히 신경 쓰인다.    

 

이불 한 채와 여행 가방이 놓이면 그득 차는 그 작은 방에는 빛이 들지 않는 작은 창이 하나 있다. 평소보다 늦게 눈을 뜨면 뒤꼍으로 난 창은 여전히 어둡다. 아침이 더디 오는 작은 방과 달리 거실에서는 이미 일어나신 부모님이 소리 낮춰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가끔은 투닥거리기도 가끔은 웃음기가 가득하기도 하다. 그렇게 낮은 웅얼거림은 ‘괜찮다. 다 내려놓고 푹 쉬어도 된다.’며 누운 내 어깨를 다독인다.

그런 분위기에 한껏 위로받고 일어나면 거실에 가득한 마당에서 들어온 빛이 반긴다. ‘이래도 안 나올 거야? 어서 나와서 아침 공기를 느껴봐.’ 유혹이라도 하는 듯하다.

산발한 머리에 눈곱도 떼지 않고 마당으로 나서면 봄의 따듯하고 나른한 공기도, 여름의 뜨거운 열기도, 가을의 선선한 기분 좋은 공기도, 겨울의 매서운 한기도 모두 내 곁으로 와 팔짱을 끼고 건넌 마을 산으로 향한다. 아담한 마을을 감싸듯 나를 감싼다.     


이제 괜찮구나, 나는 정말 괜찮구나, 다시 도시로 가 이리저리 부딪혀도 얼마간 씩씩하겠구나. 따듯한 위로가 나를 감싼다. 나는 다만 힘들었을 뿐이다. 아무 말 없이 어깨를 다독이는 서툰 손길이 필요했던 거다. 너는 충분히 잘 버티고 있다는 그 말 한마디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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