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파 Aug 27. 2023

테넷 TENET 해석

이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욕망하는가?

다들 영화의 메인 플롯은 이해했다고 가정하고 논의를 진행하겠다. 나도 1번 본 뒤 쓰는 글이라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은 감안해주시길.

이 작품의 외피가 워낙 충격적이고 현란해서 다들 속에 든 메시지에 대해선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한 번 더 본 뒤 멋드러지게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지금 떠오르는 생각을 빨리 쏟아내고 싶은 욕망이 조금 더 우세한지라 우선 떠오르는 대로 몇 가지만 써보고자 한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

?까을했현구 을행여간시 로으식방 는하전버인 왜 은독감 .1

간단히 말하자면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역행 시간선과 순행 시간선이 교차하면서 발생하는 독특한 액션 미학. 둘째, 자연스러운 시간여행 제약조건 설정으로 플롯의 개연성 강화. 셋째, 삶을 대하는 의미심장한 태도 혹은 양식에 대한 알레고리 구축.

메시지 해석의 관점에선 마지막 이유가 특히 중요하다.

어떤 "삶의 양식"를 말함인가? 한 인간이 운명을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맞서 자유롭게 결단하고 행동하는, 아이러니한 삶의 양식. 이게 무슨 소리냐고? 천천히 풀어보자.

인버전한 인물들은 과거(순행 방향 인물의 시점에선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이 양방향의 시선이 모두 중요하다. 순행 인물들이 역행 인물들과 조우할 때 그들은 미래의 자신을 보는 셈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이 그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당연하지만 중요한 진리를 이미지로 드러낸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순행 인물은 역행 인물을 그저 바라보는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해 순행 인물은 역행 인물이 현재의 자기 자신(역행 인물 시점에서는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바라본다. 이는 무엇을 상징하는 장면인가? 바로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볼 때 부끄러움과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이를 결코 바꿀 수도 없다. 그만큼 오늘의 선택에는 큰 무게가 있다.

우리는 또한 역행 인물이 말 그대로 역전된 시간선에 따라 (순행 인물의 시점에서는) 미래에서 과거로 달린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어떤 의미를 품고 있을까? 미래가 과거를 만든다, 따라서 비전이 중요하다 뭐 이런 얘기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과거(현재)가 곧 미래라는 역설이다. 내 운명은 미래에 결정되지 않는다. 이미 결정되어 있다. 훗날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니다. 지금 그리고 어제 위대하려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이 바로 미래의 나(역행하는 나)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설에 대한 통찰은 곧 "어떻게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인류의 오랜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흔히들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면 지금 내가 고민하고 노력해서 뭔가를 선택하는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한탄하지만, 사실 역방향도 마찬가지란 거다. 과거가 결정되어 있다면 미래의 전개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결정론적 세계 속 주체는 양방향으로 묶여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묶임 자체, 즉 특정한 상태로 연결된 사건들의 연쇄 자체가 우리 자신의 주체성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통찰할 때 주체는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를 상상하는 방식으로 미래를 현재 속으로 끌어들인다. 한편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나를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현재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는 완전히 대칭적이다. 모든 사태는 그저 일어나 있을 뿐. 다만 주체로서 우리 자신의 독특한 위상은 오직 "상상과 해석을 통한 의미 부여 능력"에 있다. 그 능력에 의해 고유하게 부여된 의미가 바로 우리의 "운명"이며 동시에 우리의 "현실"이고, 또한 우리 자신(의 행동과 선택)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요컨대 니체의 영원회귀 신화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영상으로 구현했달까. 멋지다.


​​​

?까을었없 에밖수 할구 을캣 서째어 은공인주 .2

물론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를 안 구하고 그냥 간다면 차라리 ㅇㅇ를 떼는 게 낫지!  음 쿨럭.. ㅋㅋㅋ

표면적으론 당연히 사랑이다. 허나 주인공이 훗날 테넷을 창설한다는 걸 감안하면 인류애의 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캣의 캐릭터를 고려한다면 그러한 해석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캣은 절망적 상황에 빠진 여자다. 아들과 자유 중 하나를 선택하길 강요받고 있다. 지속가능한 미래와 끝없는 욕망의 추구라는 두 선택지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인류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이건 개인 차원에서도 발생하는 딜레마다. 누구나 사랑과 평화와 안정을 원하지만 한편으론 경쟁과 발전과 욕망 성취를 꿈꾸기도 한다. 양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실 사토르의 마지막 논변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세상을 망가뜨린 놈들에게 죄를 묻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미래 세력은 생존의 활로를 확보하면서 동시에 죄인들을 응징하는 수단으로서 알고리즘에 의한 시간선 역전 공격을 택한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타임 패러독스 따위야 감당할 만한 리스크 아니겠는가? 적어도 세상을 개판으로 만든 "과거의" 우리들에겐 발언권이 없다. 세상을 망친 인류는 말소되어야 한다. 정보 자체가 말소되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애초에 그 방향으로 쌓아올려졌던 세계(=의미) 전체가 사라지는 거다. 그것만이 살 길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인류의 미래(=순행 방향으로의 의미)를 긍정하는 쪽을 선택한다. 다시 말해 인류의 죽음을 선택한다. 테넷을 창설하지 않았다면 역방향으로 인류의 삶은 지속될 수 "있었다". 하지만 테넷이 창설되었고, 미래 세력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으며, 결국 인류는 멸망의 운명을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도 의미심장한 결말이다. 한 인간에게 있어 운명의 수용은 곧 죽음의 수용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수용이 전제될 때 비로소 자유롭고 의미있는 삶이 가능하다.


​​​

?가는되 이힘 게떻어 는지무 .3

스틸크스 작전은 레드 팀과 블루팀 둘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레드 팀은 자신들이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임무에 투입된다. 사령부에서는 이미 블루팀의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보를 노출하지 않는다. 만약 레드 팀이 미래를 알았다면 사태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을 것이다. 요컨대 그들은 무지로 인해 실패했고, 그 실패를 통해 성공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너무 재고 계산하여 미래를 예측한 뒤 최적화된 경로를 따라 움직이려 하면 결국 망하게 된다. 인생은 동사다. 그것도 과거/현재/미래 시제가 모두 하나인 동사다. 내 선택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곧 그 선택이 성공적이었음을 방증한다. 의미는 사후적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그러니 용기 있게 움직여라. 어차피 미래는 "일어났고" 나의 선택도 이미 일어났다. 나 자신의 존재가 그 증거다.


​​

!를사감 번 한 시다 께님독감 란놀 퍼토스리크 신주져던 을밥떡 잼꿀 런이 ?지겠이보 이많 더 면보 시다 에중나

작가의 이전글 지금 우리 학교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