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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잘 Mar 07. 2024

41. 가려워서요

마음이 가려워 수다를 발랐다, 마음연고

어제는 볼 일이 있어서 분당선 지하철을 갈아타고 오전 9시에 영통에 갔다. 일을 마치고 헉킴이랑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불확실한 미래 걱정에 우울하다는 그녀를 달래며 나도 다독였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두피 가려움증이 심해져서 크리닉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 몇 번은 효과가 있는 것 같더니 10회에 백오십 만원인 마지막 크리닉을 마친 지금은 별 효과가 없단다.      


햇살 좋은 창가에서 제주 한라봉 조각케익을 먹으면서 그녀는 수시로 머리카락을 뒤적이며 안약 같은 연고를 바른다. 나도 10년 전쯤 가려움증으로 삶의 질이 뚝 떨어지는 날들을 1~2년 지냈기에 내 몸도 가려운 기분이다.      


‘아~분홍 연고’     


오래 전 시아버지 기일에 큰시누님께 내 귀를 보여드리자 마치 뱀이라도 본 듯이 놀라며 말했다.     


"큰올케 귀가 떨어져 나갈 거 같아"     


특히 귀바퀴 위아래 부분이 짓물러 진물이 흐르는 상태였다. 그 진물 냄새가 내 코에 전해질 때면 의기소침해졌다. 피부과 산부인과 비뇨기과를 다녀도 별 효과가 없었다.    

  

머리속이야 머리카락을 헤치고 보여줄 수 있지만, 팬티를 내리고 은밀한 그곳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나만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귀가 찢어질 듯 아프고 진물이 나고 비듬이 수북한 건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생리 기간에는 쓰리고 퉁퉁 붓고 생활이 어려웠다.      


찢어질 듯 징그러운 내 귀를 본 큰 시누님이 어쩌다가 시댁 식구들에게 요란하게 알리게 되었다. 제사 음식 준비를 다 하고 쉬고 있을 때 시어머니께서 이평에 가서 약을 타 보라고 하셨다.     

 

“네”      


0.1초 만에 대답을 했던 것 같다. 막내 시누이도 아이를 낳고 피부가 짓물러 오래 고생할 때였다. 셋이서 기대감을 갖고 약국을 찾아갔다.      


“분홍 뚜껑 드려요? 하얀 뚜껑 드려요?”      

한적한 시골길 작은 로터리에 새블란서 약국의 약사님은 칠순쯤 되어보이는 어르신이었다. 약국이라지만 일반 약은 보이지 않고 몇 가지의 연고통이 쌓여있었다.      


내 기억에 트러블이 오래되었으면 ‘분홍색’ 오래 되지 않았으면 ‘하얀 뚜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분홍뚜껑을 다섯 개 정도 사 왔다.


오마이갓! 지금 생각해도 이것은 우리 엄니의 사랑의 마음효과라 생각한다.      


연고를 바르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내 귀떼기는 새살 솔솔 깨끗해졌고, 나의 음부의 가려움증도 기적처럼 사라졌다. 삶의 질이 높아졌다. 질 좋은 아내로 돌아온 나를 남편이 엄청 반겼다.     

 

어느 워크샵을 진행하러 간 곳에서 수강생으로 앉아있던 김소장의 귀구멍을 우연히 봤다. 부풀어서 귀구멍을 반쯤 막고 하얗게 버짐처럼 번져있는 모습이 커트 머리 사이로 보였다. 강의를 마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연고 이야기를 하고 조금 덜어다 줘도 되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했다. 다음날 쓰고 있던 마지막 연고의 안쪽 부분을 반 덜어 나누어줬다. 한참 후 효과가 있냐고 했는데 ‘조금 그렇다’고 했다.      


그 이후로 그 약국을 한번 더 찾아갔다. 분홍 뚜껑 연고 열 통을 사 와서 내 주위에 피부 가려움으로 고생하는 지인에게 선물로 나누어줬다. 막내 시누이는 임신하면서 발 복숭아뼈 주위부터 무릅까지 짓물렀는데 크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우리 엄마도 피부로 엄청 고생했고 가끔 가렵다해서 한 통 드렸다. 나의 무른 피부와 귀여움은 엄마의 유전이었다.      


내 메모장을 뒤지고 나만의 아이디어 밴드를 뒤져도 약국 정보가 없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이상한 방법으로 별 걸 다 메모해두는 남편이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주었다.      

새블란서 약국이라는 이름을 보고 헉킴이 웃는다. 5~6년 전에는 택배로 보내줄 수 없다고 했는데 다행히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분홍 뚜껑과 하얀 뚜껑 중에 어떤 거를 보내주실 거냐고 물어보라고 했다. 분홍 뚜껑은 무좀에 잘 듣고 하얀 뚜껑은 건선에 효과가 있다고 두피 사진을 다섯 장 쯤 찍어서 보내라고 했다.      


한라봉 조각케익을 먹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울적한 이야기를 하다가 수시로 긁적긁적 긁는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헤쳐서 피부 가려움이 심해보이는 곳을 찾아서 대여섯 장 사진을 찍어주었다. 가려움증이 나으면 그녀가 나를 업고 다니겠다고 한다.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도 아니고, 분홍 뚜껑인가 하얀 뚜껑인가로 내 피부에 바를 연고를 선택한다는 것이 어이없게 들릴 것이다. 그런데 강의하다 말고 화장실로 달려가 두 손을 사타구니 사이에 넣고 벅벅 긁어보지 않았으면 말도 마시라. 피가 나고 미칠 듯이 쓰라려 ‘주여! 제발’을 외쳐도 멈출 수 없는 손맛을 내 몸이 기억한다. 그래서 오지랖이라 해도 아픈 사람을 보면 나는 조용히 다가간다.     

 

“쌤, 도를 아십니까? 같아요”      


청명역에서 헤어지며 열렬히 그녀를 응원하는 내 모습에 갑자기 ‘도를 아십니까’ 하면서 다가온 언니같다고 해서 둘이 손을 잡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하마터면 오줌 쌀 뻔 했다.      


울적함이 좀 나아졌다는 그녀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나를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해주었다. 덕분에 나도 좀 나아졌다. 수다 크리닉 효과인 것 같다. 봄이다. 화사하게 입고 밖으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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