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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잘 Mar 09. 2024

42. 기억은 세상을 살아가는 연료같은 겁니다

안동여행을 추억하며

나는 10년 일기를 쓴다. 6년 후 내 일기장을 봤는데 2024년 수요일과 금요일에 매트 필라테스와 숙지산 이라는 흔적만 남아 있다면, 50여 년 전 일기와 다르지 않겠다. 그 당시 방학이 끝나갈 무렵이면 어떤 방법을 찾아서든지 날씨를 찾아서 밀린 일기를 썼다. ‘아침 먹고 놀고 점심 먹고 놀고 저녁 먹고 숙제 하고 꿈나라’ 가끔은 ‘비가 와서 친구랑 집에서 놀았다’ 개학을 앞두고 친구 일기장을 베끼느라 깍두기 공책에 불이 났다. 식물 채집 숙제는 재미있었다.     



‘대한민국 행복지수 1% up!’이 꿈너머 꿈이니까, 나의 행복과 사회의 변화에도 관심을 기록해야겠다. 나의 관점으로 내 생각을 나의 언어로 계속 쓰자. 죽을 때까지.    

 

 어제는 신문을 보다가 두 분의 부고를 봤다. 한 분은 지난해 6월 10일 안동 여행 가서 직접 만난 어른으로 퇴계 이황 선생의 16대 종손이신 이근필 선생님이다. 다른 한 분은 갱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편이 ‘맹순이’라 부르던 고)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내 손명순 여사다.     


 

우리 부모님 고향은 경상북도 영주다. 내가 세 살쯤 고향은 떠나왔지만 초등학교 방학 때마다 외할머니댁에 기차 타고 놀러가곤 했다. 엄마가 그러시는데 경상도 중에서도 안동이 풍습을 많이 따진다고 했다. 제사 지낼 때 이것저것 따지는 아버지가 못마땅할 때 몇 번 말씀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 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시면 화투장으로 그날의 운세를 점치곤 했다. 연초가 되면 토정비결 책을 꺼내서 운세를 보시기도 했다.      

할아버지 제삿날을 따져서 칼을 쓰면 안되는 날이 있으면 제사 음식을 할 때 칼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무나 대파 등 썰어야 하는 음식 재료를 미리 썰어놓곤 했다. ‘으이그~ 별나긴’ 하시면서도 경상도에서도 안동은 풍습이 더 완고하다는 말씀으로 아버지를 옹호하신 것 같다.      


엄마는 제사 음식을 만들 때 미리 먹으면 안 된다고 그 맛있는 음식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오징어 튀김은 둘째치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두부 부침도 먹지 못했다. 어쩌다 두부가 부서지기라도 하면 접시에 꺼내주시고 먹으라고 했다. 내가 부침을 도울 때는 손을 거칠게 다루었다. 동그랑땡과 오징어 튀김은 어지간해서 부서지지 않았지만 동태전과 두부는 조금만 거칠게 하면 부서졌다. 그건 내 몫이었다. 내 생일이 할아버지 제사 바로 다음날이어서 엄마가 나에게는 인심을 크게 쓰셨다. 아버지 몰래 부서지지 않은 오징어 튀김도 주셨다.      


내가 시집갈 때 엄마는 무조건 좋으셨는지 아무 당부를 하지 않았다. 스물 여섯에 처음으로 남자를 사귀어서 집에 소개했을 때 아버지도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다. 첫날부터 ‘송서방’이라고 불러서 부담스러웠다고 남편이 나중에 말했다. 아버지나 엄마는 훤칠하고 잘생긴 남편이 성실해 보인다고 예뻐했다. 결혼을 얼마 남겨두고 어쩌다가 아버지의 당부를 들었다. 세 가지 당부 중에 제사 풍습은 지역마다 다르니까 결혼하면 아무 말 말고 그 집안 풍습을 따르라는 말씀도 하셨다.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아무도 살고있지않은 나의 시댁은 지금도 하루에 버스가 세 번 운행하는 산속 깊은 시골이다. 혼 후 첫 제사 때, 음식은 두부 두 모랑 오징어 두 마리 정도 하는 우리 집과 다르게 텔레비전에서 본 잔치집과 같은 분위기였다. 옆집 화정이 아빠가 섬진강 옥정호에서 잡았다고 빙어를 박 바가지 가득 가져왔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은 안방에서 인절미에 콩고물을 묻히면서 시끌벅적했고, 나는 작은 방에서 천 마리쯤 되어 보이는 빙어를 튀기라고 했다. 싱싱하고 예쁜 빙어를 혼자 튀기고 나서 한밤중에 논두렁에서 울었다.     

 

우리 시댁 동네는 제사를 지낸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마을 이장이 방송을 한다. 누구네 집으로 아침을 먹으러 오라고 하면 마을 어른들이 아침을 드시러 오신다. 내가 본 제사 풍경이랑 달랐다. 어머니 생신에도 방송을 한다. 부침이나 튀긴 음식은 채반 몇 개에 담을 만큼이다. 풍습이 다르고 손이 크신 시어머니는 언제나 음식을 많이 하셨다. 다만 한 가지 좋았던 것은 ‘제사 음식도 다 사람이 먹자고 하는 거’라면서 제사 음식을 만들기 전에 일하는 사람과 마을회관에 나눠 줄 부침개를 넉넉히 따로 한다. 심지어 간이 맞는지 보라면서 동태전과 게맛살 꼬지도 먹어보라고 한다. 금방 구운 부침개랑 튀김은 얼마나 맛있는지, 고소한 인절미는 눈물이 쏙 들어가게 너무 맛있었다.      


평소 맨정신에는 조용하신 우리 아버지는 제사 음식에 먼저 손대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듯이 호통을 치고 자정이 ‘땡’ 되어야 제사를 시작했는데, 어렵고 무서운 시어머니는 제사에 전통을 따지지는 않으셨다.      


며칠 전에 시아버지 제사였다. 나는 큰며느리라서 우리 집에서 제사를 한다. 서방님네 가족이 와서 두 형제 가족이 함께 했다. 남편이 제사를 모시고 싶어해서 손이 작은 나는 시장에서 몇 가지 음식을 사고 정성을 다해 쇠고기뭇국과 산적 등 몇 가지 음식을 한다. 서방님이 형님이 돌아가시면 큰 조카인 우리 아들이 제사를 모시면 모를까 본인이 가져가는 건 아니라고 했다. 아들이 조금 당황하는 눈치고 나는 제사를 물려줄 생각이 없다. 물론 풍습이 가족문화이고 전통이라 할 수 있지만 시대에 맞게 본질은 가지되 형식은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퇴계 16대 종손이신 이근필 선생은 종가 개혁과 선비 문화 전파에 앞장선 분이다.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설립자로 퇴계 선생님의 ‘배우면서 삶을 마친다’는 학이종신(學而終身) 정신을 전파하고 여성의 사당 출입을 430여 년 만에 가능하게 하신 분이다. 도산서원은 선비 문화 체험을 통해 사회 윤리 함양에 앞장선다. 지난 6월에 1박 2일 묵으면서 자원봉사하시는 어르신들의 환대를 직접 체험한 나는 이근필 선생의 사망 소식이 안타까웠다.      


‘복 많이 받으세요’ 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짓는 거라는 뜻의 ‘조복’ 글씨를 한지에 직접 써서 넉넉히 나누어주셨다. 아흔이 넘도록 하루도 빼놓지 않고 조복 글씨를 쓰셨다니 얼마나 많은 복을 지으셨을까. ‘제사가 간소화되지 않으면 종가의 미래는 없다’는 신념으로 2014년 제사를 현대 사회에 맞춰 초저녁에 지내도록 했다.    



지난 구정에 차례상을 차렸다. 주위에는 차례 전통을 생략했다는 분이 여럿이다. 우리 큰시누님네가 차례와 제사를 없앴고 우리 엄마도 아버지 제사만 남겨두고 명절 차례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형식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큰며느리이기 때문에 남편이 하고 싶은대로 따를 것이다. 남의 집에 큰며느리로 들어갔으니 내 의지로 이러쿵저러쿵 하고 싶지는 않다. 시장 반찬가게를 적절하게 이용하기에 음식준비에 크게 수고하진 않는다. 우리 시어머니 말씀대로 ‘사람 먹자고 하는’ 거다. 명절 전에는 우리 가족 문화가 된 ‘육전 파티’를 하고 설 차례상 떡국은 하얀 곰탕으로 올리고 나서 우리가족이 먹을 때 딸아이가 좋아하는 매생이를 듬뿍 넣어서 완성한다.      


마음이 없는 형식은 허무하고 헛헛하고 헛수고라 생각된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제사 음식할 때마다 어머니 이야기로 며칠을 보낸다. ‘잊을 때 잘했더라면’ 싶다가고 어머니 매서운 눈매가 생각나면 ‘그정도면 됐어’ 싶다. 그러다가 보드라운 은색 커트 머리를 말려드리던 때가 생각나면 예쁜 우리 어머니 얼굴이 생각난다. 이근필 선생님께서 마스크를 쓰고 한 명씩 주먹 악수를 해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고택의 고즈넉함이 그리워진다. 우리 외할머니댁도 꽤나 크고 마당에는 황소가 음매 하고 울었었다.      


‘기억은 세상을 살아가는 연료 같은 겁니다.’      


어제 우연히 본 ‘3일의 휴가’에서 엄마(복자 역 김해숙)와의 추억으로 아파하는 딸(진주 역 신민아)에게 정신과 의사가 건네는 말이 내 눈에 닿았다. 화면을 몇 번 돌려 사진을 찍었다.      



‘내가 만약 죽은 후에 3일 간의 휴가를 받는다면 나는 누구를 만나고 싶을까?’      


잠깐 생각했을 때, 친정아버지와 시어머니 생각이 스쳤다.      


내가 세상을 떠난다면...     


하루하루 잘살아야겠다.


‘오늘도 잘했어요

‘오랫동안 잘할거에요’

'오 잘살았구나'


오잘정신이 진짜 좋다.         

오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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