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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May 04. 2024

둘째 언니의 운동화 고르기

둘째 언니가 셋째 언니네 집으로 온 지 3일째 되던 날, 셋째 언니는 내게 전화해서 너무 힘들다고 했다. 막 퇴직한 형부에게도 신경을 쏟아야 하는데 언니까지 있으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도 힘들었어. 가족을 팽개치고 제주도에 내려가서 뒤치닥거리 하는 것도 힘들었고, 남편을 추운 방에 몰아넣고 언니랑 잠자며 돌보는 것도 쉽지 않았어.”

 오랫동안 묵혀 둔 감정과 함께 가시 돋힌 말이 내게서 새어 나왔다.


그 후로 셋째 언니는 내게 힘들다는 얘기는 않는 대신 둘째 언니를 모시고 응급실을 가야한다는 둥, 빨리 대학 병원으로 가지 않으면 발목을 자를지 모른다고 동네 병원에서 얘기한다는 둥 여러 가지로 내 속을 태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셋째 언니 집으로 쫓아가서는 상태를 봐야 했고 둘째 언니를 모시고 셋째 언니와 함께 또 다른 병원을 찾아야 했다. 당번이 아닌데도 도와야 하니 계속 짐을 지고 있는 것 같아 속이 부글거렸다. 


둘째 언니가 안정될 수 있게 한 달씩만 돌아가며 돌보자고 한 건 나였다. 의지하며 살던 남동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제 발목이 전기장판에 화상을 입어도 어쩌지 못할 만큼 둘째 언니는 온전치 않았다. 그런 언니를 혼자 두기엔 무리였다고 다들 생각했기에 모두 동의했다. 처음엔 내가 그다음엔 넷째 언니가 그리고 나서 셋째 언니가 맡았다.


“처음부터 둘째 언니를 모시고 나오는 게 아니었어. 그냥 가게에 있으면서 돌봤어야 했는데......”


‘어쩌라고? 3개월이 넘도록 누가 돌보라고? 24시간 잠자며 같이 돌볼 사람이 있나? 있다 해도 돈이 얼만가?’ 

셋째 언니의 타박을 들으며 내 속에서는 그렇게 셋째 언니에게 불만이 생겨났어도 말 한마디 못했었다.     


병원 진료를 마치니,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둘째 언니 신발을 사러 가기로 했다. 둘째 언니가 발이 부어서 운동화가 너무 꽉 끼기 때문이었다. 


둘째 언니가 지팡이를 집고 병원을 나선다. 조금만 걸어도 둘째 언니는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로 내려간다. 그나마 노약자석에 앉았던 사람이 자리를 양보해줬다. 두 정거장을 지나 우리는 범계역 지하 통로를 통해 뉴코아 쇼핑몰로 향했다. 양쪽 길거리엔 옷들이 즐비하다. 나는 기웃거리며 둘째 언니 옆에서 지팡이가 움직이는 속도에 맞추어 발을 옮긴다. 허리를 구부린 둘째 언니는 거푸 숨을 몰아쉰다. 


지하 2층, 커다란 운동화매장에 들어섰다. 둘째 언니가 의자에 주저앉았다. 우리는 돌아다니며 언니의 운동화를 골랐다. 언니의 발은 240, 그러나 250은 되어야 한다. 그것 중에 일단 볼이 넓어야 한다. 색깔은 까만색, 복잡하지 않고 무난해야 한다. 깔끔하고 이쁘면 더 좋다. 눈썰미가 빠른 셋째 언니가 이것저것 골라오고 나도 한두 켤레 갖고 왔어도 딱 떨어지는 게 없었다. 겨우 까만 나이키 하나가 가볍고도 볼이 맞았다. 그런데 고르는 동안 매장 점원인 젊은 남자는 물건을 달라는 데도 썩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마지 못해 갖다 주었다. 운동화 끈을 풀고 볼을 넓히는 역할을 하는 것도 나였다. 매장 직원의 불친절에 나도 셋째 언니도 불만족스러웠다.


“언니, 저 위에도 한번 가볼까?”


셋째 언니가 운을 띄웠다. 일단 한 개를 골랐기에 안심을 하고, 좀 더 좋은 것을 찾아 나섰다. 1층 매장에 들어섰다. 신발이 뾰족뾰족하고 예쁘다. 그러나 언니가 신기에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매장 주인에게 말했다.


“사장님, 볼이 넓은 것으로 하나 골라주세요.”


 사장은 잘 늘어나서 신기에 편해 보이는 스니커즈 비슷한 운동화를 꺼내주었다. 예뻐 보였다. 둘째 언니도 맘에 든 것 같았다. 언니가 발을 갖다 대었다. 그러나 끼워 맞도록 스스로 발을 비비적거릴 힘이 모자랐다. 상체를 움직여 신발을 꿸 힘도 모자랐다. 우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장은 저 앞쪽에 큰 신발가게가 있으니 그쪽으로 가보라고 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다시 매장을 옮겼다. 친절하게 웃으며 젊은 사장이 다가왔다. 편하게 신을 신발을 찾는다고 했더니 예쁘고도 뒤가 트인 신발을 꺼내 보여주었다. 아까처럼 부드러웠다. 걱정이 되긴 했지만, 뒤가 트였으니 어쩌면 신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250을 불렀다. 젊은 사장은 신발을 찾으러 나갔다. 창고를 뒤졌는데도 없단다. ‘휴’하고 한숨이 나왔다. 할 수 없다. 다시 지하 매장으로 갈 밖에. 우리는 지하 매장으로 돌아가 먼저 합격했던 신발을 꺼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확인하려고 둘째 언니에게 신겼다. 


“언니, 편안한지, 걸어 봐!”

셋째 언니가 말했다.


지팡이를 놓고 둘째 언니가 몇 발자국 걸었을까? 화상을 입은 복사뼈 부근이 아프다고 했다. 에구 허탕이다. 급히 발목까지 올라오지 않을 신발을 찾았다. 마땅한 게 없어서 난처할 즈음 크록스가 눈에 들어왔다. 크기도 맞았고 높지도 않다. 할 수 없이 크록스를 사서 나왔다. 


“배고프지? 뭐 먹엉 가게. 나가 사마”


둘째 언니의 말에 우리는 걸음을 옮겨 식당 코너로 갔다. 쌀국수집에 앉아서 둘째 언니가 좋아하는 쌀국수를 시켰다. 나는 내심 다정다감한 셋째 언니가 옛날얘기라도 해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셋째 언니는 별말 없이 국수만 천천히 먹는다. 셋째 언니가 많이 답답한가 보다. 아마 힘들 것이다. 매번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도, 매일 아침 깨워서 일으키는 것도, 양치질을 하고 상처에 소독하는 것도, 일주일에 두 번 목욕을 시키는 것도...... 그러나 어쩌랴, 셋째 언니가 견뎌야 할 문제다. 말없이 둘째 언니에게 고개를 돌렸다. 국수를 다 비운 둘째 언니가 두꺼비처럼 두 눈을 껌벅거리며 나를 본다.

어느새 오후 6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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