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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Oct 10. 2024

에어컨을 켜면 될 일을!

  - 둘째 언니 간병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폰을 쳐다보니 둘째 언니다. 통화를 눌렀다. 

“119입니다. 전화 주인과는 어떤 관계세요?” 

헉! 


언니를 병원으로 옮긴다고 했다. 의식이 없는 상태이고 가족이 병원으로 와야 한다고 한다. 큰 언니께 연락해놓고 셋째 언니와도 통화했다. 셋째 언니는 의식이 없다는 말에 울기부터 한다. 


“에구 착한 우리 언니, 릿따 언니가 죽으면 어떻게 해. 가슴에 대못이 박힐 거야. 그동안 고생만 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둘째 언니가 아파서 안 왔다는 00케어센터(노치원)의 문자를 보고 걱정하던 참이었다. 전화를 계속 돌리다가 첫째 언니가 가본다는 말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119라니!     


둘째 언니의 병명은 열사병. 

혼자 사는 둘째(릿따) 언니는 쓰러지기 얼마 전부터 전화할 때마다 덥다고 말했었다. 셋째 언니가 에어컨을 켜라 했더니, 먼지 청소가 안 돼서 켤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리모컨을 찾아서 에어컨을 켜라고 했을 때는 리모컨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릿따 언니, 리모컨은 방 안에 있어. 그니까 지금 찾아서 켜.” 


이게 마지막 통화였다. 언니는 리모컨을 옆에 두고도 열사병으로 쓰러졌다. 쓰러져 죽을 정도로 더웠으면, 보통 사람이라면 먼지를 무릅쓰고라도 에어컨을 켰을 것이다. 그러나 언니는 덥다고 문을 열지도, 찬물을 마시지도, 에어컨을 켜지도 않고 그냥 있다가 쓰러져버렸다. 그런 문제해결을 못 할 만큼 언니는 인지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다행히 119가 둘째 언니를 재빨리 대학병원으로 이송했고 바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41.2℃까지 올라간 체온을 식히느라 얼음주머니를 양 겨드랑이에 차고 삽관해서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두 다리와 두 팔을 침대에 묶고 주렁주렁 주사약을 매단 채 보내길 5일! 드디어 일반 병동으로 옮긴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급히 비행기를 예약하고 평소보다 세 배나 되는 요금을 내고 내려갔다. 밤 8시, 대학병원의 출입구는 닫혀있었고 어둠 속에 한두 군데만 불빛이 보인다. 응급실을 통해 어찌어찌 들어갔다. 둘째 언니는 생각보다 의식이 또렷하고 발음이 흐리지만, 말도 했다. 안심이다. 셋째 언니와 한쪽 구석에 가서 간병인 문제를 의논하려 했는데, 빨리 가야 한다던 셋째 언니가 화를 내듯 내게 말했다.


“아니, 큰언니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내빼더니, 중환자실에 코빼기도 안 보이더라. 게다가 간호사한테 말해서 보호자를 나로 바꿔놨어!”


그러니까, 서울로 왔다 갔다 하며 사는 셋째 언니한테 핸드폰과 수첩까지 맡기고서 첫째 언니는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셋째 언니가 둘째 언니를 내게 맡기는 기분이 드는 건 뭘까? 나도 3일 이상 병원에서 버티기는 힘드는데...... 내가 오기 전에 간병인을 구하면 좋을 것을, 셋째 언니는 병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언니 하소연을 들으면서도 속은 편치 않았다.


젊었을 때, 둘째 언니는 자기만 가게를 본다고, 셋째 언니를 못살게 굴었었다. 배려심 많은 셋째 언니는 잘하다가도 그때를 떠올리며 번번이 내게 하소연한다.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화난 것을 이해하지만 그걸 왜 나한테 푸나? 나는 누구에게 하소연하지? 왜 나만 당해야 돼? 둘째 언니를 동정하고 돌보려고 나섰더니 이렇게 당해도 되나? 이런 생각들로 셋째 언니의 말은 내 귀에서 윙윙거리기만 했다.  

   

밤 9시가 다 되어 셋째 언니를 보내고 여행 가방은 침대 밑에 밀어 넣고 보조 침대에 앉았다. 병실 안의 공동 전등이 꺼졌다. 여기서 어떻게 자야 하나? 앉아도 구부정한 게 불편하다. 잠시 언니를 바라다보았다. 언니가 눈을 떴다. 


“언니, 기저귀 갈아야 해? 좀 볼까?”


언니의 기저귀로 손을 가져간 순간 끈적하고 만져지는 게 있었다. 불을 켜고 기저귀를 벗겼다. 설사다! 설사를 너무 많이 해서 변이 위까지 올라온 거다. 이걸 어쩐다? 환자의 변 무게를 재어야 하는데,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기저귀째 재더라도, 휴지가 많이 들어가면 오차가 심하다. 어떡하지? 할 수 없이 얇은 수건을 빨아서 닦아내기 시작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어설프다. 옆의 세면대를 왔다 갔다 하니 앞쪽 간병인이 와서 신경질적으로 커튼을 확 잡아당긴다. 


‘아, 냄새가 나는구나. 미리 챙겼어야 하는 건데......’

“저기 화장실에 들어가서 하세요! 물소리 내지 말고!”

“네에~ 죄송합니다.”     


무거운 언니의 엉덩이를 힘겹게 요리조리 움직이며 겨우 변을 다 치웠다. 기저귀 무게를 재고 수건을 빨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둘째 언니가 또 웅얼거렸다.


“어떵허코...... 또 쌌져게......”     

속이 부글거린다. 


‘글쎄 왜 열사병을 앓아야 하느냐구! 덥다고 느끼면, 에어컨을 켜면 될 일을!’ 

나도 모르게 샐쭉한 눈으로 언니를 바라보았다. 언니가 움츠러드는 것 같다. 


아, 우리를 위해 젊은 시절을 가게에서 다 보낸 릿따 언니...... 언니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어버린 걸까?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자식이 없으니, 우리가 맡아야 하는데 뭘 어떻게,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좁은 간이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려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두운 병실 안 만큼이나 답답해지는 가슴을 뒤척일 뿐 잠은 오지 않았다. 그나마 언니가 코를 골며 깊이 잠든 게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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