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6살 아이는 유독 궁금한 것이 많다.
하늘은 왜 저렇게 생겼는지, 태양은 어디에서 왔는지, 하늘나라는 어떻게 생겼는지.
실은 아이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나도 하늘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태양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가 없기에.
그래서인지 6살 아이와의 대화는 즐겁다.
상상력이 땅콩만큼 줄어들어버린 어른의 한계치를, 6살 아이의 통통 튀는 재치와 엉뚱함으로 아주 조금, 호두만 한 크기로 키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하원하며 11월의 초에 접어든 가을길을 걸었다.
가을 낙엽이 바닥을 다채롭고 덮고, 그 위를 걸어가면 사박사박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낙엽 속에서도 바다를 느낄 수 있다는 건 신비로운 일이다.
아이는 유독 이 놀이를 좋아하는데, 못하게 되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12월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한다.
바로 어디 멀리 선가 루돌프를 이끌고 산타할아버지가 오시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와 양치를 하며 12월의 설렘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트리는 어떻게 꾸밀 것인지, 눈은 올 것인지에 대해.
그러다 문득 6살 아이에게 호기심이 똑똑 노크했나 보다.
예상치 못한 질문은 언제나 정문이 아닌 쪽문에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엄마. 산타할아버지는 왜 죽지 않아요?"
나의 어릴 적 산타할아버지는 신비함에 싸인 인물이었다.
어쩜 내 마음을 그리 찰떡같이 아시고, 다마고치를 머리맡에 선물해 주고 가시다니!
산타할아버지는 모두 다 아실 거라면서 입을 꾹 다물고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을 때
엄마는 혹시 할아버지가 모르실 수도 있으니 편지를 써놓으라는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엄마의 그 애타고 초조했던 마음을.
나는 그때의 엄마의 마음과 조금은 다르다.
신비함에 쌓인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아이와 함께 귤껍질을 까듯 천천히 들여다보기로 결정했다.
산타할아버지가 죽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아이는 언제나 신비로운 질문을 하고, 그건 내 세상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주고 있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꼬마 철학자와 함께 토론할 주제를 탁자 위로 올려둔다.
"너의 생각은 어때?"
우리의 정답이 없는, 탱탱볼 같은 토론이 시작되었다.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통통 튀어 오르는.
"모르겠어요. 산타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는 거예요?"
"그러게. 엄마도 조금 어렵다. 우리 생각해보자. 산타할아버지는 뭐하는 사람이지?"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세요."
"그건 어떤 일인 것 같아?"
"대단한 일이에요. 그건 특별한 일이에요!"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혹시 거기에 의미가 있을까?"
"엄마. 대단하고 특별한 일을 하면 오래 사는 걸까요?"
"준이가 생각하는 대단하고 특별한 일은 뭐야?"
"음... 도와주는 거? 어렵지만 해내는 일?"
"그러게! 산타할아버지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어려운 일을 하고 있고, 그걸로 어린이들에게 행복을 주는구나!"
"준아, 거기엔 힘이 있나 봐."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대단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말과 마음에는 힘이 생겨서 산타할아버지에게 가나 봐!"
"아! 엄마. 그래서구나. 그래서 죽지 않는군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유산을 남긴다.
물질적인 유산을 떠나, 자신이 긴 여생을 걸어온 하나의 자취를 남기고 간다.
향기로운 유산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감동을 주고, 고마움을 주어서 아주 오래오래동안 이야기가 되어 전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죽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산타할아버지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우리 곁에 남을 수 있는 힘은 비단 선물을 주기 때문은 아닐 테다.
그 선물이 어떤 어린이에게는 1년을 기다려온 선물일 수도,
견딜 수 없는 추위 속에서도 온기를 전해주는 하나의 따뜻함일 수도 있을 테니.
잠들기 전 아이는 내게 말한다.
"엄마. 엄마도 대단한 일을 하면 안 될까요? 산타할아버지처럼 오래 살면 안 돼요?
"아빠도 대단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가 죽으면 나는 혼자 남는 거예요? 그건 정말 싫어요."
"준아. 엄마는 너도 대단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엄마 아빠 옆에 오래오래 함께 남아 주어."
"엄마도 아주 특별한 일을 하겠다고 약속할게."
실은, 아이가 말하는 대단하고 특별한 일이 무엇인진 아직 모른다.
하지만 내가 전하는 따스한 마음과 말에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일이 되었던, 따스함을 전하는 쪽으로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우리 아이의 곁에 아주 오랫동안 남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