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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결혼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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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Jan 19. 2021

직장인 보단 당신아내

결혼을 고민 중인 후배들에게 연락 올 때가 있다. 결혼을 할지 말지 생각이 많다고.
“하겠다면 말리진 않을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결혼 후 만족의 기준은 무엇인지, 어떤 감정을 느껴야 이 결혼 잘했다 싶은지. 애석하게도 물어볼 사람이 나같이 사는 사람뿐이라 객관성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지만 물어보았고, 나는 한결같이 대답한다.

결혼은 잘한 거 같아.
직장생활은 할때마다 후회되는데,
결혼은 직장만큼 후회한 적이 없어
직장인보다 네 와이프가 나은거같아


결혼과 직장을 비교한 것은 극단적인 예가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겪어본 일 중에 비교할만한 게 마땅치 않고 실제 직장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비교해봐도 나름 현명한 비교라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것중에 가장 후회하지 않는 것이 바로 결혼임은 진실이니까. 직장 선택은 타고난 똥손이지만, 배우자 선택만큼은 Not Bad 였다. 남편은 내 대답을 듣고 한참 웃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백가지 이유를 대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한다.

‘저 사람은 내가 좋은 걸까, 직장에 다니는 내가 좋은 걸까, 결혼생활이 나쁘다는 말이 결코 아닌데.’
결혼 후 그의 진심을 확인하고 싶은게 있었다. 진심을 듣고 상처가 될 거라도 예측되어 자신있게 물어보지 못했다.

동반자가 필요하니? 동업자가 필요하니?

나와 남편에게 직장생활의 의미는 달랐다. 결혼생활이 매일 달진 않지만 그래도 삼킬 수는 있는 맛이라면, 집 밖의 생활은 삼키는 것 자체가 고역인 병맛들이 훨씬 많았다. 인내심 지수가 평균 이하인 ‘나에게 결혼은 그래도 해 볼만한 일'로 분류되었다.

내가 유독 남편의 '직장생활 예찬'에 열을 올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일하고 싶은 사람이지, 직장생활에는 흥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 와이프는 직장생활을 참 열심히 해. 책임감도 있고"  남편이 자신의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할 때는 더 오래오래 다니라고 마치 협박받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나는 직장이란 단어만 나오면 유독 까칠해졌다.  좀 더 솔직해지자. 직장생활만큼은 네가 잘하는 거 나도 안다고.

직장은 짠내나고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으러 오는 곳이 아니라 일하러 온 곳이다. 근데 왜 내가 왜 네가 직급이 높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네 취향을 알아야 하며, 시간 외 수당은 주지도 않으면서 주말 없이 답장을 해야 하는지. 아직도 그런 회사에 다니는 게 아니라, 대부분이 아직도 그런 회사이다. 이직을 몇 번 해본 나로서는 직장에서의 성공, 그 뒷받침에는 일이 전부가 아니라 그 이상을 감수해야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것도 내가 제일 못 하는 것들 투성이 (빈 말 못 하는 것, 이해 안 되면 벙어리 되는 것, 표정을 숨길 수 없는 것, 그리고 행인2 수준의 연기력)


정말 부당하고 억울한 상황이 생기면 받아들이기보단, 자꾸 곱씹어 생각하고, 결국은 그냥 넘어가기가 힘들다. 그런데 하루가 멀다 하고 기 죽이고 의욕을 감퇴시키는 말을 들으면 그날은 퇴근시간까지 버티고 앉아있는 내가 대견스럽기도 했다. 애초에  직장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알아서일까? 너무 일찍 알아버린 탓일까? 내가 버티는 유일한 방법이 이직이었다. 직장이 바뀌면 모든 상황이 바뀔 줄 알고 3년 주기로 참 꾸준히 직장을 업데이트 해왔다. 그래서 나의 이직은 내 남편에게 놀림거리가 되곤 했다. '3년 주기설' 어쩌고 저쩌고.

이제는 정확히 안다. 흔히 워라밸이 좋고, 복지가 좋다는 꿈과 환상의 일터는 어딘가 있겠지만 나한테는 없다는 것을. 만약 있더라도 그곳에서도 주연급의 연기력이 필요하겠지.

직장과 가정은 별개가 되어야 하는 걸 잘 알지만 직장생활만 11년차에게도 그것만큼은 참 어렵다. 상사의 기분을 하루 종일 맞추고, 독한 말로 수십 번 찔리고 퇴근하면, 딱 지하철 타고 집으로 돌아올 에너지만 남아있었다. 더이상 누군가를 이해할 에너지도 없는데 별거 아닌 걸로 또 대치되고 긴장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마치 내 상사처럼 독한 말로 톡 쏘아붙이곤 했다. “내가 집에서까지 불편해야 해? 내 맘좀 편하게 해 주면 안 돼?” 내 활력을 일보다는 상사의 부름과 감정상태를 맞춰야 하는데 긴장했고, 내일의 출근을 걱정하는데 다 소모했다. 내 에너지가 얼마나 소중한데 이렇게 낭비하는 게 끔찍했다. 결국 돌고 돌아 나는 정말 직장생활이 맞지 않는구나를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돌고 돌아 깨닫고 있다.


반면, 내 남편은 상대적으로 순탄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듣고 싶었던 그 말, 한번 해 주기가 그리 어려운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남편의 첫 직장은 나의 두 번째 직장이었고, 나름 경력직인 나에겐 한 살 연하의 대학을 갓 졸업하여 매사 열심히인 신입사원인 남편이 안쓰럽기도 했다. 본인한테 불리한 상황이 오더라도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불편을 감수하면서 일을 끝끝내 해내는 모습은 캔디 같았고 내 동정심을 자극하고, 챙김을 유발시켰다.

내 첫 직장을 두 번째 직장과 비교했을 때, 나름 합리적이고 인정 많은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었다면, 남편을 만난 두 번째 직장은 착한 사람들끼리 비효율적으로 일하는 안타까운 일터였다. 우리 부부에게 박한 회사였지만 지친 내색은커녕 늘 내 앞에서 보란 듯이 극복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직장생활 얘깃거리만 나오면 아주 우쭐대며 어깨가 넓어지는데 그 모습이 꽤 귀엽기도 하다. 직장에서 갈수록 인정받는 남편을 보면 축하해주는 동시에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 위축되었다.

성공은 정말 아무나 하는  아니구나.’  불행한 직장생활이 남편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 이유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를 자극하는 건 직장생활만큼 가정생활에도 충실하다는 것이다. 방전되면 모든 걸 놓고 싶어 하는 나와는 다르게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친정엄마에게 전화로 안부를 챙긴다거나, 빨래와 설거지, 분리수거를 놓친 적이 없다거나. 거기다 아기가 태어나고 육아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잘 해내는 모습은 한편 나를 비참하게 만들 때가 있다. 자랑처럼 하는 말이 아니다. 처음엔 자랑인 양 남들에게 이 정도로 나한테 잘한다고 으쓱댄 적도 있는데 남편이 쏘아 올린 그 공이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나는 받을 준비는커녕, 공이 떨어지면 한 박자 늦게 겨우 달려가는 정도이다. 남편이   해낼수록  박탈감은  커져만간다.

나는 결혼생활보다 직장생활이 훨씬 더 힘든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 이만큼 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의든 타의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니 탓이고, 네 덕분이 맞다. 힘들다  때마다 그렇게 남의 편처럼  한말로 자극하고 버티게 했으니까. 과정이 어쨌든 원래의 나라면 버티기 힘들 이 직장생활을 10년 넘게 하고있는 것은 다 네 탓이 아니라 덕분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어딜 가도 수두룩한 꼰대 상사 비위 맞추는 것보단, 이미  년째  식구로 지낸  남자와 사는  훨씬 수월하다고. 하다 보면 나도 그랬듯이 누구나 자신만 모르는 결혼생활에 의외의 재능을 발견할  있다고. 그리고 결혼생활만큼은 너보다 잘할 수 있다고.


살다 보면 결혼생활보다 더 어렵고 고된 일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결혼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단, 아는 것만도 못한 진실은 까보 지도 말자. 내가 이 결혼생활에 만족하는지, 당신이 나를 동업자 생각하는지의 진실은 일단 묻어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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