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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로운 Sep 27. 2023

여행을 가려고 그만둔 건 아닌데(12)

암스테르담 - 누가 네덜란드에서 자가격리를 해요;;

암스테르담에서 온전히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어야 했던 날, 이 날은 아침에 코로나 검사를 후딱 받고서 첫 날 가지 못했던 볼렌담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출국 전 24시간 이내에 받은 신속항원 검사 결과만 인정이 됐었기 때문에, 내일 비행기를 타려면 오늘 검사를 받아야했다. 시내 검사소에 8시 반에 방문을 했고, 30분 후에 결과를 메일로 알려준다고 해서 바로 볼렌담으로 가는 기차를 타러 걸어가는 길이었다.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고, 결과지가 메일로 날아왔길래 별 생각 없이 파일을 열어봤다.

Result : Positive

아 다행이다...응? 음성이면 Negative인데...? 응...?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시나리오라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당장 다음 주에 가기로 했던 여행들, 만나기로 했던 사람들이 생각나면서 부모님과 해리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서 급하게 전화를 했다. 코로나가 수그러들고는 있지만 아직은 위험했던 시기에 여행을 가는 게 탐탁치 않았던 부모님은 화를 내셨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계속 물어보셨는데, 나도 그때부터 알아봐야하는 문제였다. 나도 예상 못했던 시나리오라 대책도 빨리 알아봐야하는데 그걸 모르고 있으면 어떡하냐며 다그치기만 하는 부모님한테 나도 화가 났다. 더 언성이 높아질 것 같아서 얼른 전화를 끊었고, 해리한테도 담담하게 내일 출국하지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이제 와서 말하자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기계상 오류가 나는 경우도 있기를 기대하면서 그 순간부터 5번의 신속항원 검사와 1번의 급성PCR 검사까지 총 6번의 검사를 더 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신속항원 검사 비용만 5만원, 급성 PCR검사는 15만원 가까이 하는 네덜란드였기에, 검사비용만 40만원 넘게 썼지만 6번 모두 양성 판정을 받았다. 한 곳에서는 3번 연속으로 하려 했더니 직원 분이 소용 없을 거라고 나를 만류했다. 결제를 먼저 해버린 탓에 이 결제 건은 아껴두었다가 권고 격리기간이 끝나는 5일 후에 오라고 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볼렌담은 커녕 이제부터 지내야할 호텔을 알아봐야했고, 안그래도 비상금 탈탈 털어온 여행이었기 때문에 격리 기간동안의 지출을 어떻게 감당해야할지 막막할 따름이었다. 비행기 티켓은 환불 규정이 까다로웠던 것 같은데 정보가 자세히 나와있지 않아서, 바로 공항에 가서 환불이 되는지 라운지에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를 타고 공항에 가는 길에 급하게 외곽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다. 공항에 도착하고서는 내가 타는 항공사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 헤맸다. '왜 이럴 때 인포센터는 하필 또 이렇게 멀리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겨우 발견한 센터에서는, 항공사 측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여행사에 문의해야한다고 했다. 허탈했다. 3시간을 걸려 공항까지 왔는데 결국 여행사 문의라니. 결국 빈손으로 숙소로 돌아왔을 때, 신발과 양말이 비에 젖을대로 젖어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있었다. 상황 해결하느라 아픈 줄도 몰랐다. 땀에도 흠뻑 젖었던 상태라, 일단 샤워를 마치고서 여행사에 전화부터 했다. 고객 응대가 엉망진창으로 유명한 여행사라 사실 연결도 안될 거라는 생각으로 전화를 했는데, 정말 다행히 연결이 됐고, 또 좋은 직원을 만나서 비행기 티켓을 일부 환불받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를 고른 이유가 귀국하는 비행편의 가격이 압도적으로 저렴해서였는데, 이제 아무짝에 쓸모 없게 되었다. 전화까지 마치고 나니 잠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비 오는 길을 돌아다닌데다, 패닉인 멘탈을 부여잡고 부모님과 다투고 공항까지 다녀온데다 다음 숙소를 알아보고 항공편 환불 문의까지 마친 탓이었다. 저항 없이 기절하듯 낮잠을 잤다.

이 다음날부터는, 격리의 연속이었다. 네덜란드는 격리 의무가 있는 나라는 아니지만 PCR 검사를 하게되면 보건관리국에 등록이 되는 시스템이어서, 보건관리국에서 간단한 인적사항과 가이드를 전화로 알려줬다. 가급적 음식은 배달을 시켜 호텔 직원을 통해 받을 수 있게 요청하고, 나가야할 일이 있으면 마스크를 끼라고 했다. 약도 주고 공무원이 관리까지 해주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와 달리 네덜란드의 약도 안주고 호텔 직원에 양해를 직접 구해야하는 이 시스템이 너무 서러웠다. 4박을 끊은 숙박비와 다시 사야하는 귀국 비행편을 고려하면 이미 지출이 너무너무 컸기 때문에 제대로된 끼니는 생각도 안했다. 마스크를 끼고 근처 알버트하인에서 1유로 남짓하는 샌드위치만 4개를 사왔다. 어차피 약도 없으니 근처 약국에도 들러 스트렙실도 샀다. 그렇게 격리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호텔에서의 격리 생활을 시작했다.

비자발적으로 시작했던 자가격리 기간은 정신적으로는 피폐한 상태였지만, 또 의외로 지내다보니 은근히 좋은 면도 있었다. 격리 기간동안은 영화를 정말 열심히 봤다. 특히 격리 첫날부터 증상이 있어서, 나갈래야 나갈 엄두도 안났다. 책도 없고 TV도 볼만한 채널이 없었으니, 할 수 있는 거라곤 영화만 주구장창 보는 것이었다. 그동안 보고싶어요에 담아뒀던 영화들을 하나둘씩 처리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인생 영화 결혼이야기를 건졌고, 결혼이야기를 보고 난 직후엔 해리에게 줄 편지도 쓸 수 있었다. 증상이 조금 나아진 3일째에는 추천 받은 납작복숭아나 먹어볼까하고 사왔는데, 너무너무 맛있어서 그 자리에서 사온 복숭아를 다 해치웠다. 물릴대로 물린 샌드위치만 먹다가 신선한 과일을 먹어서 그런걸까, 다 먹자마자 납작복숭아를 사러 마트에 또 다녀오기도 했다. 안그래도 평화로운 도시인데 외곽까지 나오니, 그렇게 조용할 수 없었다. 높은 건물도 없어서 하늘이 탁 트여있었고 차도 많지 않았다. 근처에 작은 공원도 있어서 마스크를 끼고서 산책하다보면 피폐해졌던 마음도 조금은 차분해졌다. 하고싶지 않았던 자가격리는 2주동안 열심히 돌아다녔던 여행의 피로를 의도치 않게 조금씩 푸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증상이 거의 사라진 4일차 전까지 호텔에서 푹 쉬었던 기간은 예상 밖의 회복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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