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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빈 Dec 23. 2022

마음의 독은 땀으로 뺀다.

현자의 가르침 2

첩첩산중의 현자는 인생의 위기를 여러번 넘긴 존재이다. 불면증은 어쩌면 현자의 유전자에서 나에게 흘러온 것일 수 있지만, 수많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 본 현자의 잠에 대한 태도는 초연하다. 잠을 못 자도 그 다음 날 꽤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고, 심지어 많은 성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수십년의 경험으로 익혔다. 


그렇지만 밤은 이상한 시간이다. 낮 동안 처리하지 못한 감정들이 밤에 기어나와서 잠을 방해한다고 하는데, 잠 못자는 나날이 길어지면, 이 감정들이 나의 낮 시간 역시 스멀 스멀 잠식하려고 한다. 그렇게 마음에는 사르르한 독이 퍼져나가게 된다.


마음의 독은 사람을 자꾸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아픈 곳으로 더 더 깊숙히 들어가 해답이 없는 질문을 끊임 없이 던지게 하고, 쓸모 없는 생각의 꼬리를 자꾸 자꾸 늘린다. 


현자는 나에게 말했다. 마음의 독은 땀으로 빼야 한다. 밖으로 나가서 많이 움직이고 활동해라. 현자 역시 세상이 무너질 듯한 경험을 하고 밖으로 나가 끊임 없이 뚝방길을 걸었다. 몸을 피곤하게 하면 잠도 조금씩 길어진다. 


어떤 학자들은 리비도(단순한 성욕이 아닌 생활의 에너지)가 안으로 집중되면 우울증이 온다고 한다. 밖으로 표출해야할 에너지를 내 안의 생각으로만 자꾸 파고드는 데에 쓸 때 우울증이 생긴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에너지를 밖으로, 밖으로 방출할 때 나의 내면과 외부의 밸런스가 다시 맞춰진다. 


나는 오랜만에 겪는 한국의 추위를 온 몸으로 맞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감싸고 밖으로 나간다. 만보를 채우겠다는 것이 하루의 목표이지만 이제 만이천, 삼천보까지 거뜬히 채운다. 음산하고 어두운 독일의 겨울과 비교하였을 때, 머리를 쨍하게 식혀주고, 정신을 번뜩 들게 해주는 한국의 추위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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