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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재 Mar 15. 2022

미국은 왜 우크라이나를 버렸나?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파병하지 않는 부정의하지만 영리한 이유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1990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해체 이후 이렇다 할 패권주의적 야욕을 드러내지 않던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그 발톱을 드러냈다. 개전 초기, 재래식 전력과 비대칭전력 양쪽 모두 미국에 버금가는 강대한 러시아군 앞에 우크라이나군은 속수무책으로 패퇴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고 보니 러시아는 생각보다 전쟁을 쉽게 끝내지 못했다. 세계 곳곳에서 비난 여론이 빗발쳤고, 러시아 국내 여론 역시 썩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세계의 자유 진영은 유례없이 강력한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를 발효해 러시아 경제의 숨통을 조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미국이 있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연일 러시아를 비판하는 데에 각별한 공을 쏟고 있다. 트럼피즘의 망령으로 시끄러운 정계 역시 러시아를 향한 비판만큼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한마음 한뜻이다. 무엇보다 그 비판은 그저 허울 좋은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러시아의 UN 연설에 각국 외교관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도, 세계 경제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러시아를 상대로 거래를 끊은 것도 모두 미국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하지만 경제, 정치, 외교 전방위에 걸쳐 러시아를 압박하는 미국이 유독 군사적 영역에서만큼은 소극적이다. 이러한 사실은 각국의 이해관계를 명확히 알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 의문스러운 지점일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책임이 미국의 방관에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인이라면 현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두 패권국의 완충지대에 있는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은 ‘미국이 여차할 때 우리를 군사적으로 도와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기인한 자주국방 레토릭을 강화한다. 하지만 과연 미국의 군사적 무관심은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혹은 거짓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America abandons Ukraine - Vinod Tripathi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의 군사적 무관심은 사실이다. 미국은 처음부터 러시아를 상대함에 무력 사용을 상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세계대전의 가능성이다.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이며, 그 무엇과 바꿔서라도 막아내고자 하는 가능성이다. 사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미국이 참전을 꺼리는 이유를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에 따른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바 있고, 실제로 이를 상당히 의식하는 모양새이다. 특히 러시아와의 전쟁이 두 진영 간의 전면전으로 확전된다면 거의 무조건 핵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기에 미국은 직접 참전을 꺼릴 수밖에 없다.


 둘째, 미국 내 정치적 입장의 차이다.

 현재 미국을 이끄는 주체는 트럼프를 몰아내고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당의 바이든 행정부이다. 바이든은 공식적으로 트럼프의 고립주의 노선을 폐기하고 동맹국과 연대하는 방식으로 외교정책을 전개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러한 정치적 입장은 미국이 러시아와 1대1로 담판을 짓는 트럼프의 스타일보다는, 미국의 우호국과 함께 러시아의 각종 행보를 보이콧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한다.

 더욱이 바이든은 오바마 행정부 당시 외교를 맡았던 인사라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과거 이라크 전쟁에 단호히 반대하는 입장을 꾸준히 견지했고, 이는 전임 정부의 기반이었던 네오콘(Neoconservatives)의 무분별한 전쟁 개입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더 최근의 일인 미국의 아프간 철수를 기억해도 좋다) 따라서 바이든이 이끄는 미국 정부 역시 전쟁 개입을 최소한으로 하는 대신 동맹국들과의 ‘포위 작전’을 구상하는 쪽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치적 노선은 그저 효율성에 기초한 전략이라기보다 바이든과 민주당의 가치를 보이고 내정에서 확실한 색깔을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다.


 셋째,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유용성이다.

 조금 깊이 들어간다면, 확전 가능성 때문에 참전을 거부한다는 미국의 행보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점을 시사한다. 만약 미국의 직접적 군사적 개입으로 핵전쟁이 우려된다면, 어째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승인하여 간접적으로 돕는 방안도 거부하는 것일까? 이는 냉정하게 말해 우크라이나가 그 수준의 전략적 가치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경제력이 매우 작고, 항공 우주 분야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과학기술력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뛰어난 농업 생산력과 러시아 견제에 탁월한 지리적 이점을 가지긴 했지만, 사실 미국은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자극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쁘다고 생각할 뿐 미국과 패권을 다툴 국가로 보고 견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또한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이점은 터키와 폴란드의 존재로 상쇄된다. 러시아의 패권주의는 대양 진출 욕구와 연결되는데, 이는 돈바스 전쟁, 크림 전쟁 및 우크라이나 전쟁의 한 요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지역의 점령으로 흑해에 직접 영향을 투사할 수 있어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호시탐탐 우크라이나를 노렸다. 하지만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잃더라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 바로 터키와 폴란드이다. 터키는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을 틀어막고 있는 미국의 중요 동맹국이다. 러시아가 제아무리 우크라이나를 합병한다고 해도 대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이 두 해협을 반드시 지나야만 한다. 따라서 러시아의 대양 진출은 터키가 갑자기 친러국가로 돌변하지 않는 이상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 어렵다. 또 폴란드 역시 ‘유럽의 방패’로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중인 만큼 설령 우크라이나를 잃더라도 미국의 ‘방패’들은 건재한 셈이다.


 넷째, 신냉전의 격화 양상이다.

 미국은 절대로 세계의 패권을 내어주지 않는다. 미국은 과거 미국과 대항할 수 있었던 유일한 국가인 소련을 무너뜨렸고,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미국을 추격하던 일본도 플라자 합의를 통해 미리 꺾어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중국이 미국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이 ‘신냉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은 거시적 관점에서 그 신냉전의 기선제압이었다. 즉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작은 ‘전투’ 하나의 결과에는 관심이 없고, ‘신냉전’이라는 중요한 ‘전쟁’에서 승리하려 하는 것이다.

 사실 미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면 외교적 계산은 더 간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에 하나 미국이 참전하고도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향후 신냉전에서 미국의 역량이 의심받게 될 것이고, 미국이 승리하더라도 국력 소모가 크거나 인명 피해가 많이 난다면 국내 여론의 악화를 감수해야 한다. 이겨봐야 본전인 싸움을 하느니, 차라리 내 편이 더 크고 강하다는 것을 보이기만 하면 ‘전투’에서는 져도 ‘전쟁’에서는 이기게 된다는 것이 미국의 계산이다. 곧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 모두가 미국에 동조하는 모양새를 갖추기만 하면 정말 중요한 싸움인 신냉전에 필요한 재원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인 것이다.


 여기까지 정독한 독자 여러분은 어쩌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럼 미국은 그렇게 자유의 수호자인 척을 하면서 실은 자기 이익에 따라서만 움직인 거네?” 이 비판은 상당 부분 사실이며, 정글 같은 국제관계의 진리를 다시금 일깨우는 지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국의 외교정책이 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여겨지는지 분석해 볼 필요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국정연설 - BBC


 이제부터 우리는 미국의 입장이 되어 미국의 외교 전략을 살펴보자. 당신은 지금부터 미국 국무부의 직원이다. 먼저 국무부의 최우선과제부터 생각해보면, 국익에 가장 핵심적인 두 원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현재 미국 외교의 최대 과제는 신냉전의 승리이고, 이를 위해 중국과 그 잠재적 동맹인 러시아의 힘을 약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차기 정권을 재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국민 여론이 나빠질 정도로 돈을 쓰거나 많은 사상자가 되도록 나와서는 안된다. 이 두 원칙에 유의해서 미국 정부의 사고 흐름을 따라가자면 다음과 같다.     

1. 먼저 우크라이나에서 꼭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가? 

 아니다. 위에서 이미 보았듯 우크라이나의 뒤에는 터키와 폴란드가 건재하고,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도, 경제 대국도 아니다. 즉, 신냉전의 승패를 결정지을 만한 중요도가 있는 지역이 아니다. 따라서 크게 보았을 때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어떻게 되던 상관이 없다.


2. 우크라이나에 파병해야 하는가?

 이것 역시 아니다. 1번 논증에서 우크라이나는 별로 중요한 지역이 아님을 보였다. 그런데 그곳에 굳이 파병하여 국력과 인명을 소모한다면 국내 여론과 신냉전에서의 승리 모두를 잃을 수 있다. 또 확전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파병은 하지 않는다.


3. 우크라이나를 NATO에 가입시킬 것인가?

 이것도 아니다. 이 사안은 유럽 국가들의 의견을 들어 보아야 하겠지만, NATO 국가들 역시 난색을 표한 바 있다. NATO는 현재 유럽에 부는 군축의 바람 때문에 군비 부족에 신음하고 있는데, 경제력이 매우 약한 우크라이나를 같은 편에 넣어봤자 나가는 돈만 더 들 뿐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던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유용성도 생각보다 크지 않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넓은 의미에서’ 보면 유럽이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유럽이 아니다. 유럽이 이들을 도와줄 명분도, 실리도 없다.


4. 그럼 우크라이나를 그저 내버려 둘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미국의 동맹국 사이에서 불안감이 생길 수 있다. ‘여차할 때 미국이 도와주지 않을 수 있다’는 동맹국의 불안감은 미국의 대외 안보 정책에서 불안정성을 증대시킨다. 따라서 이 불안감을 잘 다독여야 한다. 두 번째, 세계의 경찰이라는 타이틀이다. 세계의 경찰 주제에 눈앞에 보이는 불의에 맞서지 않는다는 인식이 생기면 미국이 향후 타국에 개입할 명분이 사라진다. 세 번째, 신냉전에서 중국-러시아 동맹 쪽이 더 강건해 보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는 미국에 대한 회의는 중립을 표방한 국가들이 상대편이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그저 내버려둘 수는 없다.


5. 그렇다면 어떻게 우크라이나 사태를 처리할 것인가?

 미국의 시민이 죽지 않고 돈과 국력을 적게 소모하며, 신냉전의 승리에 필수불가결한 동맹국과의 연대도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은 바로 ‘러시아 왕따하기’다. 일단 경제 제재부터 시작하여 외교, 안보, 문화 모든 면에서 러시아를 배제한다. 미국 정부는 연일 러시아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선전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미국이 동맹국을 돕고자 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고, 동맹국에는 ‘우리가 미국과 같은 편이니 함께 제재에 동참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어 동맹관계를 강화한다. 이를 통해 견고해진 동맹국과의 연대로 중국과의 신냉전에서 승기를 가져간다.


6. 결론: 미국의 득과 실

득: 미국은 동맹국을 반드시 돕는다는 인식, 러시아에 대한 동반 제재로 얻어낸 동맹국 사이의 연대감, 미국에 거스르면 미국의 수많은 동맹국도 함께 적이 된다는 전 세계적 선전, 잠재적 적국인 러시아의 돌이킬 수 없는 경제적 손해, 동맹국 사이에서의 안보 위기감 고조로 유럽 국가들의 군비 증강, 무엇보다 이 모든 이득에도 경제적/정치적으로 미국은 아무런 손해를 입지 않음

실: 신냉전의 결과에 별 상관없는 우크라이나의 인명, 경제 피해


 보이는가?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아무것도 잃지 않았지만,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었다. 말 그대로 '손 안 대고 코 풀기'를 한 것이다. 명분과 실리, 그리고 전쟁에서 이길 구상까지 완벽하게 마치고 외교 전략을 짠 미국의 강력한 싱크탱크는 가히 경이로운 수준이다.


한중정상회담: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양쪽의 외교관계를 모두 신경써야 하는 어려운 위치에 있다    - The Diplomat


 하지만 이 사례에서 미국의 위대한 외교 전략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 외교의 어두운 면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실 이 글이 가지는 정말 중요한 교훈은 '세계의 경찰' 미국도 오직 정의와 부정의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청년이 죽어간다. 하지만 어찌 보면 미국은 러시아를 향해 팔짱을 낀 채 호통만 치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부정의이지만, 동시에 미국의 입장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이 합리적인 결정을 어떻게 다른 나라와 국민에게 납득시킬 것이냐는 질문이야말로 외교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미국은 이 외교의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과도하게 정치화된 외교적 이념 갈등에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어려운 외교를 하고 있다. 신냉전이라는 살얼음판을 걷는 와중에 미국과 중국 한쪽만을 섣불리 선택할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이 우리 앞에 있다. 두 패권국 사이에서 미국과 같은 '영리한 줄타기'를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서는 국가와 국민이 어떤 수준의 외교적 사고가 가능한지가 특히 중요하다. 정권교체가 머지 않은 요즘, 우리나라가 앞으로 외교의 본질적 내용을 잊지 않음으로써 영리한 외교정책을 수행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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