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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공오삼이 Mar 08. 2021

J의 비밀정원

on time: 정원 집사의 습관

비엔나 | 나비온실


작년 가을, 나는 독립했다. 스물여덟이었다. 고향과 부모님 곁을 떠나 타지 생활을 시작한 지 8년이나 지났건만 이제야 완벽히 혼자가 되었다. 낯선 서울 땅에서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여동생과 의지하며 함께 지냈다.


언니 혹은 여동생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자매들의 관계를 딱 잘라 하나로 정의하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나에게 여동생은 누구보다도 날 것의 내 모습을 잘 아는 우리 가족 멤버이자 집 앞 편의점이든 동남아의 어느 호텔이 함께 하면 편안한 영혼의 단짝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 동생은 집주인과 재계약을 앞두고 분가(分家) 선언이라는 폭탄을 내게 던졌다. 나에게 주어졌던 독립이라는 자유는 타의적이었고 수동적이었다. 나는 혼자 만의 공간을 채울 용기와 결단이 부재했다. 즉, 정신적으로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공간을 채우는 것이 무슨 그런 거창한 준비가 필요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천만의 말씀.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개념의 생성과 소멸의 차원을 넘어서는 엄청난 경험이다.


작은 도구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이 도구가 나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원초적인 고민부터 시작해 쓰임새, 다른 사물과의 어우러짐, 위치, 크기, 나무, 천, 유리, 금속 다양한 촉감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 과장 조금 보태어 수십 가지는 되었다. 그 해 가을 내 방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물들과 그 안의 나에 대해 몰두(頭)했다. 인생에서 처음 맛보는 새로운 고민의 연속이었다. 변화에 익숙지 않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혼란스러웠고, 나조차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확신이 없어 깊은 고민에 빠졌다.


ㅡ 이 공간 정말 어떻게 하지?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中


어영부영 고민을 해결하지 못해 겹겹이 쌓아둔 짐과 찝찝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흘러가는 이야기로 H가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라는 프랑스 영화를 추천했다. 처음 듣는 제목에 자연스레 이미지 검색을 했건만 이게 웬걸.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자마자 '이거다!' 싶은 생각이 뇌리에 꽂혔고 온종일 떠나가질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 나누는 저 탁자에 함께 있고 싶었다. 그 이후 나는 정원을 콘셉트로 다양한 식물과 그에 어울리는 질감의 사물들로 공간을 채웠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공간에서 7개의 화분과 3개의 화병, 1개의 행잉 플랜트의 집사가 되었다. 집사로써 나는 매일 새벽 꽤나 분주하다.


1. 아침 인사하는 일

식물들도 귀로 듣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동물과 다르게 움직임이 없어 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식물들도 우리의 말을 감정적으로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좋은 의도를 가진 긍정적인 말을 전할 경우 식물의 뿌리와 줄기가 더욱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가 하는 일은 물을 마시러 냉장고를 향하며 마주하는 화분들에 인사를 건네는 것. 지난밤 잘 잤는지, 물이 부족하진 않은지 물어본다. 일방향 소통이라 처음엔 어색할 수 있지만 가만히 귀 기울여 보고 눈여겨보면 어느 순간 양방향 임을 알 게 될 것이다. 말로 소리 내어 표현을 하다 보니 나 스스로를 덜 깬 잠에서 깨어나 정신 차리게 되는 것은 덤이다.


2. 물을 주는 일

화분에 심긴 식물마다 필요한 물의 양과 주는 주기가 다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물 하나하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기억하게 된다. 물을 주었는데도 문제가 있을 경우 걱정도 되고 꽤나 고민스럽다. 어렸을 때 강아지 한번 키워보지 못한 나에게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책임감과 사랑을 주는 또다른 방법을 배우는 인생 경험이 되고 있다. 누군가에게 아무런 계산 없이 아낌없이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무언가 주는걸 참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역할을 찾은 것 같다.

화병에 담아 수경 재배하는 식물들 특히 꽃은 매일매일 물을 갈아주면 오랫동안 볼 수 있고, 가끔 눅눅하게 물러진 가지 끝부분을 잘라주면 더욱 좋다.


3. 새로운 화분을 구경하는 일

나에게 가장 가성비 있는 소비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식물 구매'라고 답할 것이다. 나의 공간이 생기고 나서부터 식물을 보러 시장을 가고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가게도 생겼다. 한 달에 한 번, 나의 월급날 화분을 보러 가는 규칙을 세울 정도로 애착이 가는 행위이다. 분갈이되지 않은 식물들은 만원이 넘지 않는 게 대부분인데 푸릇하고 정직한 흙의 기운이 전달되어 내 기분을 변화하게 만드는 가장 가성비 좋은 소비라고 생각한다.


꽃시장의 경우, 마감하는 시간에 맞춰가면 시중에서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장에선 일반 꽃집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종류의 꽃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 수 있어 좋아한다.

직장인이다 보니 주말에 주로 방문하며 마감시간 한두 시간 전 도착해 그 달의 꽃과 화분을 쇼핑한다.

ㅡ 고속터미널 꽃시장 : 토요일 오전 12시
ㅡ 남대문 꽃시장 : 토요일 비교적 늦은 오후 4시



지금 3분의 2 정도 완성된 나의 공간, 나만의 비밀정원을 돌아보니 지도와 닮았다. 내가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것들을 잊지 않고 많이 떠올리게 해주는 그런 공간. 완성되면 어떤 모습일지 2021년이 기대된다.

 


J 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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