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순으로 정리한 슬라이 스톤의 명곡들
꽤나 오랜 시간이 흘러 슬라이 킬링 트랙 파트2를 마쳤다. 파트1과 2 사이 3주간 각종 기사와 영상,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슬라이 스톤의 의이와 가치를 더욱 절감했다. 개인적으로 감동했던 순간은 스티비 원더의 두 차례 트리뷰트. 2025년 7월 3일 영국 Lytham Festival 무대에서 'Thank You (Falettinme Be Mice Elf Again)'을, 7월 7일 버밍엄 유틸리티 아레나(Utilita Arena)에서 펼친 공연에서 'Everybody Is A Star'를 연주했다. 일곱 살 터울의 두 흑인음악 천재가 음악의 혼으로 교류하는 아름다운 모습. 스티비를 통해 슬라이를 더 깊고 낱낱이 느꼈다.
Everybody Is a Star(1969) / < Greatest Hits >
신곡과 기존 히트송 배합이 두루 우수한 1970년 컴필레이션 < Greatest Hits >에서 'Thank You (Falettinme Be Mice Elf Agin)’의 7인치 싱글 B면으로 발매된 ‘Everybody Is a Star’에서 패밀리 스톤의 달콤함을 맛본다. 아스라하게 퍼지는 슬라이의 오르간과 프레디, 로스, 래리 그레이엄이 주고 받는 보컬, 제리 마티니의 보드라운 색소폰. 마지막 "빠빠빠" 하는 코러스도 사랑스럽고. 이들이 나긋나긋한 분위기에도 강했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명곡답게 'Jump'의 포인터 시스터스와 훵크 메탈, 스카 펑크 등 이색적 음악을 구사했던 피시본(Fishbone), 심지어 그웬 스테파니 이 곡을 커버했다. 최근 스티비 원더의 2025년 7월 7일 버밍엄 콘서트에서 이 곡을 연주해 슬라이를 향한 애정을 표시했다. 스티비는 1974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천재 음악가와의 만남을 회고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1s2gqDs_U&list=RD3-1s2gqDs_U&start_radio=1
Family Affair (1971) / There’s A Riot Goin’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평화와 긍정을 주창했던 패밀리 스톤은 1971년 정규 5집 < There’s A Riot Goin’ >에서 어두움을 드리운다. 월남전 후유증과 흑인 공민권 운동의 쇠락을 반영한 사운드와 가사는 더욱 진중해졌다. 더 이상 세상을 아름답게만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걸까. 진중한 메시지는 밀도감 높은 드럼과 적극적인 오버더빙, 날카로운 커팅 기타 등 더욱 견고한 프로덕션과 섹시다크한 사운드로 이어졌다.
2021년 롤링스톤 선정 500대 명곡에서 57위에 오른 ‘Family Affair’는 1970년대 사이키델릭 소울의 상아탑으로 평가받는다. 재즈 펑크, 힙합 장르에 막대한 파급을 미친 이 곡은 존 레전드와 조스 스톤 등이 리메이크했으며 주라식 파이브(Jurassic 5)의 ‘Verbal Gunfight’와 엔싱크 ‘I Just Wanna Be with You’, 블랙 아이드 피스 ‘Weekends’ 등 수차례 샘플링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ag5RKD0VHk&list=RDxag5RKD0VHk&start_radio=1
Thank You for Talkin’ to Me Africa (1971) / There’s A Riot Goin’
최고작 There’s A Riot Goin’ 에서 하나만 소개하기란 아무래도 아쉽다. 아프리카로의 영원한 귀속을 소망하는 레게 뮤지션들의 라스타파리처럼 대륙을 향한 근원적 애착을 표현한 듯한 B면 마지막 트랙 ‘Thank You for Talkin’ to Me Africa’는 내용적으로나 풍부한 소리적으로 이 명반의 문을 닫기 제격이다. 래리 그레이엄의 미니멀한 베이스라인이 절제된 편곡을 알리는 가사를 통해 금방 ‘Thank You (Falettinme Be Mice Elf Agin)’의 변용임을 눈치채게 된다. 하지만 히피즘과 흑민 공민권 운동 등 격동의 1960년대 말을 비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본작의 흐름에 따라 원본의 흥겨움 옅어진채 냉소가 가중되었다. 7분여간 큰 변화없이도 흥미로운 곡조를 창출해내는 패밀리 스톤은 역시나 즉흥성과 반복성의 잼(Jam) 스타일에 강함을 증명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F3TQlgybz0&list=RDtF3TQlgybz0&start_radio=1
Time for Livin' (1974) / Small Talk
모델 겸 배우 캐시 실바(Kathy Silva) 옆에 아기를 안고 있는 슬라이의 흐뭇한 표정처럼 낙관주의를 띄는 1974년 작 < Small Talk >는 한편 가정의 안정에 음악적 칼날이 무뎌진 탓일까, 내리막의 시작이었다. 빌보드 200(앨범 차트) 성적은 15위로 퍽 준수했지만 비평은 참담했고 심지어 유명한 록 평론가 로버트 크리스트가우는 “슬라이의 리듬 감각이 사라졌다”라며 핵펀치를 날렸다.
허나 현악기의 높은 활용과 “시대는 바뀌고 있어(Time’s a changin’, rearrangin’)이 되풀이가 뇌리에 남은 ‘Time for Livin’’과 쫀득한 그루브로 싱글 차트 84위를 획득한 ‘Loose Booty’처럼 이 앨범에도 몇몇 좋은 곡들이 있다. 의외로 1980-90년대 끝빨 날렸던 백인 힙합 그룹 비스티 보이스와 연관이 깊은데, ‘Loose Booty’ 속 “Shadrach, Meshach, Abednego”란 주문과도 같은 구절을 ‘Shadrach’이란 곡에 심었고, 1992년 음반 < Check Your Head >에선 ‘Time for Livin’’을 하드코어 펑크로 재해석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Bt9Fb5B858&list=RDlBt9Fb5B858&start_radio=1
I Get High On You (1975) / High On You (슬라이 스톤 솔로)
발매 50주년을 맞은 슬라이 스톤의 유이한 솔로 음반 < High On You >는 명반 칭호는 무리일지언정 무시하는 것도 곤란하다. 프레디 스톤과 신시아 로빈슨 등 패밀리 스톤 구성원들이 참여한 이 작품은 빌보드 앨범 차트 45위에 올랐고, 두 개 채널의 사용하는 스테레오의 두 배로 총 네 개 채널을 사용하는 쿼드라포닉(Quadraphonic) 시스템으로 풍부한 사운드를 지향했다.
'Nightshift'와 'Brick House'의 코모도스의 인스트루멘틀 펑크 명곡 ‘Machine Gun’을 연상하게 하는 가늘고 날카로운 키보드와 쫀득한 펜더 로즈의 ‘I Get High On You’는 슬라이 베스트 트랙에 넣어줄만한 순도 높은 곡. 핫100 52위에 그쳤지만 알앤비 차트 3위로 알앤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고 보면 슬라이 앤더 스톤만큼 "High(붕 뜬다)"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음악가가 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VnU2DN9Y0hY&list=RDVnU2DN9Y0hY&start_radio=1
Heard Ya Missed Me, Well I’m Back (1976) / Heard Ya Missed Me, Well I’m Back
“북치고 장구치고”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앨범 표지의 1976년 작 < Heard Ya Missed Me, Well I’m Back >에서 슬라이 스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귀환 인사를 건넨다. 비록 신시아 로빈슨을 제외한 대부분의 원년 구성원이 떠났지만 여성으로만 이뤄진 소울 그룹 리틀 시스터의 벳 스톤(Vet Stone)이 지원 사격에 나섰고 ‘Baby I Love Your Way’와 ‘Show Me the Way’의 피터 프램튼이 ‘Let’s Be Together’란 곡에서 기타를 쳐줬다.
신당동 단골 음반 가게에서 최근 이 음반을 발견해 반가웠다.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초기작 LP들이 의외로 아주 잘 보이진 않는다. 뉴욕 레코드 가게에서 < Greatest Hits >는 자주 봤는데 말이다. 신당동에서 1집 < A Whole New World >와 < Life > 오리지널 LP를 구했으니 나름의 인연인 셈. 최근 바닥에 패밀리 스톤 LP 잔뜩 늘어놓은 게시물을 봤는데 나도 언젠가 CD와 LP를 긁어모아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음감회 열고픈 마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960bhrExDW0&list=RD960bhrExDW0&start_radio=1
Remember Who You Are(1979) / Back on the Right Track
패밀리 스톤의 1979년 작 < Back on the Right Track >은 제목처럼 정상 궤도에 재진입엔 실패했다. 27분 미만의 짧은 분량도 아쉬운 데다가 연미복을 빼입은 독사진 앨범 아트처럼 사실상 슬라이의 독집과도 같았다. 물론 로스 스톤(로스마리 스튜어트)와 프레디 스톤(프레디 스튜어트) 등 혈육이자 구성원들의 조력은 있었으나 예전만 한 결속력은 아니었다. 대신 제리 버틀러, 에드윈 스타 등과 협업했던 마크 데이비스가 키보드 연주와 프로듀싱을 맡았다.
빌보드 앨범 순위 152위에 그쳤으나 < Remember Who You Are >에도 쏠쏠한 트랙이 더러 있는데 보코더를 활용한 A면 마지막 곡 ‘The Same Thing (Makes You Laugh, Makes You Cry)’와 표제곡 ‘Back on the Right Track’이 그 예시다. 싱글 컷 되어 빌보드 알앤비 차트 38위에 오른 ‘Remember Who You Are’는 심지어 롤링 스톤스와 키스마저 시류에 영합했던 디스코 시대에 뚝심있게 소울 훵크를 지켜온 충심의 지표와도 같다. 미발표했거나 덜 알려진 트랙들을 모은 2001년 컴필레이션
https://www.youtube.com/watch?v=1WJOw6vZNwU&list=RD1WJOw6vZNwU&start_radio=1
High Y’all(1982) < Ain’t But the One Way >
슬라이가 펑카델릭의 1981년 피 펑크(P-Funk) 앨범 < The Electric Spanking of War Babies > 수록곡 ‘Funk Gets Stronger (Killer Millimeter Longer Version)’ 슬라이 크레딧의 답례로 펑카델릭/팔러먼트 리더 조지 클린턴이 참여하기로 했던 1982년 작 < Ain’t But the One Way >가 패밀리 스톤의 마지막 정규 음반. 1983년 싱글 발매한 ‘High Y’all’이 차트인도 실패했지만 외려 마흔 살에 다다른 음악 작가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불꽃이다.
자신의 이름을 담은 44초짜리 짤막한 인터루드 ‘Sylvester’에서 재즈 록 기운의 ‘We Can Do It’으로 넘어가는 구간과 오르간을 비롯 슬라이 멀티 인스트루멘털리스트로서 진가가 나타난 ‘High Y’all’, 킹크스의 로큰롤 고전 ‘You Really Got Me’ 커버 등 놓칠 수 없는 부분이 다수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 색소폰 연주자 겸 플루티스트 팻 리조(Pat Rizzo)가 참여한 ‘Ha Ha, Hee Hee’는 숨겨진 1980년대 훵크 명작으로 일컬어진다. 놀랍게도 한국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에서 좋아요 개수가 75개로 매우 높기도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MLCp0SUqZy0&list=RDMLCp0SUqZy0&start_radio=1
Get Away(2011) / I'm Back! Family & Friends
슬라이 스톤 개인 명의로 발매한 두번째이자 마지막 앨범 < I’m Back! Family & Friends >은 오랜 기다림의 마침표를 찍는 선물과도 같았다. 로스엔젤레스 독립 레이블에서 발매한 이 음반의 참여진은 인디와 거리가 멀었는데 도어스의 레이 만자렉과 하트의 앤 윌슨, 명기타리스트 제프 벡 등 화려했다. ‘Dance to the Music’과 ‘(I Want to Take You) Higher’, ‘Stand!’ 등 패밀리 스톤 대표곡을 새로이 채색했고 세 곡의 신곡을 실었다.비록 올뮤직 별 하나 메타크리틱 100점 만점 37점, 롤링스톤 별 세 개 등 비평적 시선은 저조했지만 팬들에겐 슬라이의 21세기 몇 안 되는 음원이라는 것만으로 그 의미와 가치는 충분하다. 힙합과 라틴, 본류인 훵크까지 두루 품은 'Get Away'는 이제 과거의 명성과 업적에서 "벗어나고 떠나는(Get Away)" 후련한 마음을 공유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pK1OLARof5s&list=RDpK1OLARof5s&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