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플루겔혼의 마술사여 안녕히!

by 염동교

클래식 오브 클래식(Classic of Classic) 음반 가게 속 LP 에서 종종 보는 표현이다. 아무 설명도 없는 것보단 음반 상태나 간단한 설명 정도를 첨부해 놓으면 좋지 않은가. 세월을 뚫고 모두가 사랑하는 고전의 자리에 오른 작품들을 일컫는 클래식, 그런 클래식 중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를 자랑하는 작품들을 일컬어 클래식 오브 클래식이란 표현을 쓰곤 한다.

chuck-mangione-1.jpg

1970-80년대 국내 퓨전 재즈로 범위를 한정하면 이러한 “클래식 오브 클래식”에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 우선 조지 벤슨의 < Breezin’ >과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 Winelight >가 떠오른다. 하모니카가 보드라운 은하수를 그리는 앨범 아트의 < Lee Oskar >도 거론될만 할 것이다. 오스카는 덴마크가 낳은 세계적인 하모니카 연주자. 2025년 7월 22일 향년 84세 나이로 고향 뉴욕 로체스터에서 세상을 떠난 명 플루겔혼(Flugelhorn) 연주자 척 맨지오니의 1977년 작 < Feels So Good >도 이 대열에 포함될 법하다. ‘Feels So Good’과 ‘Maui-Wai’, ‘Theme from Side Street’가 수록된 그 음반 맞다.


Trumpet_and_Flugelhorn_600x600.jpg



제목부터 벌써 두번이 나온 생경한 단어 플뤼겔혼. 트럼펫의 사촌격 되는 이 금관 악기는 트럼펫보다 더 따스하고 보드라운 소리를 낸다. 나팔에 다다르기까지 일직선인 트럼펫과 달리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것도 특징. 아트 파머나 프레디 허바드 같은 재즈계 명 연주자들도 한때 플루겔혼을 다뤘다.


1960년대 최고의 “재즈 사관학교”라고 불릴만한 아트 블래키 메신저스에서 트럼펫을 연주한 그는 1966년 라이브 앨범 < Buttercorn Lady >으로 발매된 라이트하우스(The Lighthouse) 재즈 클럽 공연에 참여했다. 피아노에 키스 자렛, 베이스에 레지 존슨 등 라인업이 막강했다. 60년대에 형 갭 맨지오니와 함께 “The Jazz Brothers”란 이름으로 몇 장의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KUaTtzZx2o&list=RDJKUaTtzZx2o&start_radio=1


1970년대 후반 퓨전 재즈 작풍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숨겨진(?) 수작이 바로 1973년도 음반 < Land of Make Believe >다. 후에 1975년 작 < Chase the Clouds Away >(표제곡 강추!)에도 참여하는 재즈 보컬리스트 에스더 새터필드(Esther Saterfield)와 친형 갭 맨지오니(Gap Mangione)가 피아노로 참여한 이 음반은 12분 러닝타임 표제곡 포함 단 6곡만 들었지만 그 순도가 어마어마하다. 이지리스닝과 보컬 재즈, 라틴 재즈까지 한데 섞인 크로스오버 재즈의 절경을 볼 수 있다.


라디오-프렌들리. 척 맨지오니에게 적합한 단어다. 누구나 “어 이게 그거구나” 할 법한 멜로디의 ‘Feel So Good’이 각종 CF에 사용되었고 멋들어진 도입부의 ‘Give It All You Got’이 전설적인 디제이 황인용의 “영팝스” 시그널로 활용되었다. 도전적 제목을 지은 이유가 뭘까 종종 고민하나 가사가 없는 곡이다보니 알 도리가 없다. 상상에 맡길 뿐. 선율감이 또렷하면서도 뿌리에 있는 라틴의 묘한 이국적 채취가 묻어나온 그의 플루겔혼 연주는 모던재즈 역사에 방점을 찍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FCvVLuzlbc&list=RD7FCvVLuzlbc&start_radio=1


< Chase the Clouds Away >(1975)나 < Bellavia >(1975), < Main Squeeze >(1976)같은 1970년대 중반 작품들은 거를 타선이 없고 편안하게 쭉쭉 감상할 수 있다. 정점은 물론 1977년 작 < Feels So Good >과 1978년 < Children of Sanchez >, < Fun and Games >. 1년마다 수준급 음반이 나올만큼 창작력이 왕성했던 시절로 보컬리스트 돈 포터가 참여한 14분짜리 ‘Children of Sachez’도 맨지오니 커리어의 백미다. 이 곡으로 그래미 “베스트 팝 인스트루멘털 퍼포먼스”도 받았다. 다만 음악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올뮤직에서 별 한 개를 받은 1984년 작 < Disguise >를 비롯해 1980년대 작품들은 트랙의 순도나 전반적인 완성도 측면에서 과거의 기라성에 비해 아쉬웠다.


국내의 많은 척 맨지오니 팬들이 1981년 < Tarantella >를 언급한다. 디지 길레스피와 갭 맨지오니, 칙 코리아 등 그의 음악 인생에서 중요한 아티스트를 대거 초빙한 라이브 앨범으로 크로스오버 재즈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고향인 이탈리에어사 발생한 대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기획한 이 콘서트는 소규모 라이브에이드 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LP 레이블도 이탈리아 국기의 삼색이 펼쳐져 있다. 앨범 아트 속 인자한 웃음에서 감지했던 선한 품성이 작품 활동으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선한 기획뿐만 아니라 맨지오니 고유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몽땅 담긴 < Tarantella >를 들으며 재즈 역사 거목을 떠나보낸다.


https://www.youtube.com/watch?v=xwVCY1ZCoFQ&list=RDxwVCY1ZCoFQ&start_radio=1&t=432s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