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국가대표 음악인들의 가슴 울리는 한 마디

19:95 – 20:25 45개의 음(音)과 한 마디

by 염동교

2004년부터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과 라이브 뮤직의 고유성을 책임지고 있는 EBS 스페이스 공감이 노들섬 노들 갤러리 2관에서 <19:95 – 20:25 45개의 음과 한 마디 >라는 특별 전시를 기획했다. 음악가 하나 하나의 목소리는 각기 음표와 같다는 명제로 45개의 문장을 배치했다. 스페이스 공감 선정 한국 대중 음악계 8인의 PIONEER(선구자)가 남긴 문장이다. 입구에 놓인 오선지엔 마음에 드는 한마디를 그리면 하나의 악보가 될 수 있도록 “인터랙티브 전시”를 기획했다. 크라잉넛 리더 한경록도 본인의 직접 구성한 선율을 전시장 작은 건반으로 연주했다.


20250909_135224.jpg
20250909_135644.jpg
20250909_135709.jpg


북아일랜드 자이언트 코즈웨이를 연상하게 하는 원주들과 은색과 흰색, 회색으로 구성된 신비로운 전시장에 관련 음악가들의 작품이 계속해서 흘렀다. 흰색 원기둥에 적힌 “45개 한마디”는 아무래도 가시성은 떨어졌지만, 한 음절 한 음절 꼭꼭 씹어 읽는 집중력을 일으켰다.


암막처럼 어두운 공간에서 가수들의 열띤 무대가 숨 쉬고 빛나는 "LIVE THEATER"에서 총 3팀의 영상 공연을 관람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마무리하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와 독보적인 감성으로 한국 인디 록에 발자국을 남겼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2014년 작고한 영원한 마왕 신해철. 공연 중간 삽입된 인터뷰가 아티스트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WKFbC30Hve0&list=RDWKFbC30Hve0&start_radio=1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에게선 산울림을 비롯한 1970-80년대 복고성을 읽었다. 엄청나게 기교 넘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의 환각성을 자아내는 기타 솔로와 담백하면서도 일상과 삶에 내밀하게 붙어있는 조웅의 노랫말이 산울림을 비롯한 당대 청춘 밴드를 상기했다. 커팅기타가 리드미컬한 ‘샤도우 댄스’와 “장수”란 본질적인 목표를 노래한 ‘건강하고 긴 삶’, 전통가요 내음이 물씬 나는 ‘남쪽으로 간다’까지 이들의 정규 2집 < 우정모텔 >(2011) 매력을 잔뜩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20250909_135825.jpg
20250912_170110.jpg



여주와 부산을 비롯한 고별 투어를 준비하는 이들이 마침 2025년 뮤콘 토요일 무대에 선다길래 일정을 마치자마자 신한블루스퀘어 SOL 홀에 향했지만 안타깝게도 입장 불가했다.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소리로만 그들의 연주를 감상해야 했다. 자신만의 붓 터치로 한국 인디록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구남을 많은 팬이 기억할 것이다.


인디 신에 시나브로 장타를 날린 달빛요정만루홈런에게선 숙명론적 불안과 연약을 읽었다. 당차고 유쾌한 모습 안엔 끝없는 번민과 고뇌가 들어있지 않았을까? 괜스레 그의 급작스러운 죽음이 더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투박하다고 표현하며 실제로 연주나 보컬에서 그런 면도 있지만 30분간의 짧은 콘서트 속 ‘행운아’와 ‘절룩거리네’를 비롯해 몇 개 트랙에서 외려 영미권 록 명곡들의 향기를 느꼈다. 그의 표현처럼 “인디 중에서도 인디”인 그가 신해철이 진행하던 라디오의 인디 차트에서 톱에 오를 만큼 사랑받은 이유일 테다.


전문용어로 “내야뜬공”을 뜻하는 데뷔작 < Infield Fly >와 야구공이 큼지막하게 그려진 2012년 EP < 너클볼 콤플렉스 >,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하는 고교야구의 아마추어리즘을 음악가로서의 자신에 대입한” ‘굿바이 알루미늄’ 등 야구를 너무나 사랑했던 그가 하늘에서 본인이 응원하는 선수와 팀을 열심히 노래하며 행복하길 기원한다.



1990년대 대중음악 아이콘답 신해철 편은 꽤 많은 이들이 찾았다. 공연 내내 손뼉을 친 중년여성과 야광봉을 흔들던 바로 내 옆 관객, ‘날아라 병아리’ 후렴구에서 눈물을 훔치던 이까지 모두 이 1990년대 음악 작가에 대한 각자의 향수를 지닌 듯 보였다.


재즈와 스윙 성향을 지닌 크로스오버 밴드 새바와 함께한 이날 무대는 2007년 작품 < The Songs For the One >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워낙 다채로운 음악색을 선보인 신해철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이색적인 자리에 있다. 최희준의 ‘하숙생’과 사월과 오월의 ‘장미’, 배리 매닐로우의 ‘When October Goes’ 등을 재즈와 스윙으로 리메이크한 이 음반은 사실 평단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신해철의 드넓은 음악 팔레트를 인증하는 사료 역할론 충분했다.

새바의 스윙 리듬과 함께 상기한 스탠다드 넘버를 주로 연주했지만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머야’같은 록 성향의 곡도 꺼내 들었고, 미디로 찍어서 만든 ‘재즈카페’가 풍부한 생악기와 만나 “재즈”가 들어간 제목에 가까운 느낌으로 되살아났다. 역시나 마무리는 ‘그대에게’로 장식했다. “내 삶이 끝날 때까지, 언제나 그댈 사랑해”라는 마지막 나레이션이 유독 뭉클하게 와닿았다.



비록 2차원 화면에 갇힌 비실재지만 신해철의 무대를 다시금 보는 것만으로 팬들에게 큰 선물이요, 행복이었다. 반응이 영 약한 걸 보고 “역시 무료 관객은 안돼”라며 공연 도중 농을 던졌는데, 이날 온 관객들이라면 노래 하나하나에 엄청나게 호응하고 환호하지 않았을까 싶다.


국내의 대중음악 아카이빙은 미비하다. 여러 도시에 대중음악 박물관이 있지만 직접 가보면 허술한 경우가 허다하다. 공공기관과 사기업의 투자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통해 장기간 준비해야 하는 일이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는 것도 사실. 한시적 전시지만 EBS 스페이스 공감의 < 19:95 – 20:25 45개의 음과 한 마디> 가치가 명징한 이유다. 대중음악을 단순히 여흥과 락의 도구로 치부하지 않고 법과 의술처럼 하나의 학문 체계로 대하는 태도가 “케이팝 강국”의 위상을 이어가는 길일 테다.


20250909_134946.jpg
20250909_134831.jpg
20250909_135120.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