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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Jun 03. 2023

화학과 학생, 미술관 큐레이터로.(2)

준학예사 필기 합격 이후 실무 경력 쌓기

1부에서 이어집니다.


전국에 있는 거의 모든 미술관에 지원했다.


준학예사 자격은 필기시험과 실무경력 둘 모두를 만족해야 취득할 수 있다. 이때 실무경력이 조금 까다로운데, 아무 곳에서나 일할 수 없으며 아무 일이나 해서도 안된다. 수많은 문화예술기관이 있지만 학예사 자격증을 관리하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정한 곳(경력인정기관)에서의 경력만 인정받는다. 그리고 그 기관에서 학예업무를 진행한 경력만 인정받을 수 있다. 도슨트, 봉사활동 등은 인정받지 못한다. 준학예사가 되려면 1년의 경력이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필기시험에 합격하는 것보다 경력을 쌓는 것이 더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보통 준학예사 필기시험을 보는 사람은 전공자가 아닌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필기시험 합격장 하나만 가지고 취업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일자리가 적은 직종이면서 학력 인플레는 심한 바람에 인턴자리에 지원하는 석사학위자도 많은 현실이라 타 전공자에게 돌아갈 자리는 매우 적다. 그래서 한국박물관협회와 사립미술관협회에서는 준학예사 필기 합격자를 위한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준학예사 제도의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나는 사립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예비학예인력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미술관에 지원하였다. 해당 사업에 참여하는 미술관에서 각각 인력채용 공고를 올리므로 각 미술관 홈페이지의 공고를 확인하면 된다. 매년 1~2월에 한꺼번에 공고가 올라오며 제출서류 양식이 통일되어 있어 여러 곳에 지원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지원이 쉬운 만큼 경쟁률이 꽤 있는 편이기도 하다. 22곳에 지원해서 3곳에서 서류합격 연락을 받았고 최종적으로 1곳의 면접에 참석하여 합격하였다. 



여기서부터는 합격을 위한 나름의 팁이다.


1. 국공립미술관 인턴 프로그램보다는 사립미술관 예비학예인력 지원사업의 허들이 낮고, 수도권보다는 지방의 경쟁률이 낮다.

모두 생각하는 바가 똑같다. 규모와 인지도 면에서 더 좋은 직장으로 평가받는 곳은 사립보다는 국공립 기관일 수밖에 없기에 국공립 기관의 허들이 높다. 학력 혹은 경력 면에서 합격자의 수준이 훨씬 높은 편이다. 그러므로 비전공 필기합격자가 아무런 경력 없이 합격하기에는 사립미술관 쪽이 더 쉽다. 사립미술관 중에도 서울에 위치한 기관들은 국공립만큼이나 수준이 높은 곳이 더러 있으며 이곳 또한 경쟁률이 높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취업시장의 인력 풀과 비교하여 본인의 어필 요소가 충분치 않다면 눈높이를 낮추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지방의 미술관들은 안타깝게도 지원하는 사람 수가 수도권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다. 문화예술의 수도권 집중화의 폐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양질의 인력이 제대로 수급되지 못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지역 미술관에 전략적으로 지원하여 본인의 특장점을 잘 어필한다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합격할 수 있다.


2. 많이 지원하자.

이러한 지원 프로그램의 경우 사실상 1년에 1번 공채처럼 채용시장이 열리는 것 이외에는 취업이 쉽지 않다. 채용된 인력이 중도에 퇴직할 경우 그런 관에 한정하여 재공고가 나지만 예비인력의 경우 그런 사례가 많지 않다. 따라서 채용이 이루어지는 1~2월에 여러 미술관을 잘 확인하여 최대한 많은 곳에 지원하기 바란다.


3. 여러 일에 두루 쓸만한 사람임을 어필하자.

사립미술관들은 학예실의 규모가 대부분 작다. 학예실장을 포함하여 적게는 3명에서 많아야 6명을 넘기지 않는 곳이 대부분일 것이다. 따라서 직원 한 명이 여러 일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고, 채용을 희망하는 기관에서도 한 가지 일에 특화된 사람보다는 여러 일을 두루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게다가 예비학예인력 제도로 채용된 인원은 인턴처럼 인식되므로, 더욱 자잘한 여러 일을 맡게 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컴퓨터 활용능력,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SNS를 활용한 홍보, 글쓰기, 사진 촬영, 도슨트 경험, 외국어 능력, 운전면허 등 본인이 어필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가능한 많이 어필하는 것이 좋다. 



여기부터는 실제로 취직할 경우 하게 될 일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수많은 잡무들 속에서 보람 찾기 하는 날의 연속이다. 지자체에서 지원받아 수행하는 여러 사업에 대한 행정업무가 기본이 된다. 이나라도움, 나라장터를 사용하거나 지자체 사업을 집행하며 발생하는 서류를 처리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이러한 사업에 지원하기 위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에 이르는 전반적인 행정사무 관련 업무의 비중이 가장 높다. 다음으로는 미술관 전시장 관리 업무의 비중이 높다. 발권을 하고 전시장 내부 환경을 관리하게 되는데, 업무의 강도는 낮지만 자리를 차지하고 시간을 오래 보내야 하는 일이므로 꽤나 지루한 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 업무는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일이기에 학예실 직원 중 누군가는 미술관이 문을 열 때 꼭 출근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근무표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 이유 때문이다.


전시 관련 업무는 즐거운 일 중 하나이다. 전시기획론을 배웠다면 익히 알고 있을 그 모든 절차의 일을 하게 된다. 작가를 선정하고, 각각의 작가분들과 연락하여 작품 제작 및 운송을 조율하며, 전시실 디자인을 업체 외주로 진행하고 도록을 제작하는 등의 일들을 직접 하게 된다. 학예실장 및 사수를 보조하며 업무를 진행하게 될 텐데 이때 가능한 한 많은 일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바라던 일은 바로 이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는 몸을 쓰는 일도 많고,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는 업무도 많기에 사무실에 앉아서 모니터만 쳐다보는 생활과는 꽤나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 업무에 즐거움을 느낀다면 앞으로의 미술관 생활에도 긍정적인 기대를 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잡무가 많지만 그렇다고 보람이 없지는 않다. 잡무들을 처리하다 보면 종종 회의감이 찾아오지만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의 좋은 평가들과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면 그 감정들이 눈 녹듯 사라진다. 전시를 기획하고 설치하며 수장고와 전시장에서 그 많은 작품을 실제로 바라볼 때도 고생보다는 즐거움이 앞선다. 그렇기에 실무를 먼저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지금의 입장에서 돌이켜보면 미술관에서의 경험이 정말 중요했다. 학교에서 이론을 배울 때의 경험과 미술관에서의 경험 사이의 괴리가 크기에 현장을 겪어보지 못한다면 학위 취득 후에 너무 먼 길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다. 


첨언하자면, 미술관과 갤러리는 정말 다르다. 갤러리의 경험으로 시장 전체를 판단하는 것도, 미술관의 경험으로 시장 전체를 판단하는 것도 모두 위험한 접근이다. 둘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 다른 역할을 해내는 것뿐이므로 미술관에서의 경험이 맞지 않았다면 갤러리에서 일해보고, 또 반대의 경우에도 다른 영역에서 일해보며 맞는 옷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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