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연 Nov 09. 2022

초등학생을 가르친다는 건

잠수 탈출기





  31살(만 29세) 미혼, 조카도 없는 나는 초등 강사가 되기 전 ‘어린이’를 만난다는 부담감이 컸다. 내 어린 시절 경험을 떠올리자니 까마득했고, 매체에서는 어린이들의 문제점만 다루었다. 부모에게 욕을 뱉는 아이부터 문해력과 학습 성취도가 전에 비해 떨어진 현상까지 부정적인 이야기가 훨씬 많았다. 삼 년간 서울의 모 대학 도서관에서 프리랜서로 일한 나에게 처음으로 생긴 어린이 고객이었고, 완벽하게 업무를 해내고 싶었다. 오은영 박사님의 방송부터 유튜브, 온갖 초등 관련 도서를 섭렵했다. 이때 난 중요한 사실을 하나 간과했는데, 바로 어린이 고객과 함께 있으면 절대 완벽한 업무를 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린이 고객은 준비한 일을 제대로 완수하게끔 두지 않는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을 건넨다. 대본처럼 짜둔 수업 흐름을 뚝뚝 끊는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에코 이야기를 한창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르키‘소스’에 꽂혀 케첩과 마요네즈 소스를 말한다. 지난번엔 즐거운 표정으로 열심히 수업을 듣던 아이가 이번엔 울며 연필을 던진다. 공부하기 싫다며 내 속을 아프게 한 아이는 집에 가기 전 띠부씰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 “학원 끊을 거예요!”,“운동화 끈 묶어주세요.”,“배고파요.”,“책상에 물 흘렸어요.” 등 나를 이모로 보는 게 아닌가 싶은 말도 한다. 이렇게 수업을 마치고 나면 멍해진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지.


  “선생님, 제발 답을 알려주세요.”

  “알려주고 싶어도 글쓰기는 답이 없는 걸.”


  글쓰기는 어른에게도 어렵다.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치고 다시 생각하는 작업이다. 아이들은 이 지루한 싸움을 학교보다 싫은 학원에서 한다. 스스로 원해서 오는 아이는 몇 명이나 될까. 대부분 중학교 수행과 고교 학점제를 대비하고 싶은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온다. 태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만난 아이들에게 연필을 쥐어주고, 생각을 끄집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유튜브와 구글, 네이버 검색이 궁금한 걸 다 알려주는 세상에 살다 보니 강사가 입으로 답을 말해주길 기다린다.


  나는 롱초롱한 눈빛들을 애써 외면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한숨을 쉬며 연필을 잡는다. 다른 손으로는 이마를 짚거나 머리카락을 붙잡기도 한다. 스스로 무엇이든 써보게끔 하면 재미있는 글이 많이 나온다. 크크루삥뽕 같은 요즘 언어, 삐뚤빼뚤한 글씨체, 마침표 없는 문장. 겉으로 보기엔 서툴러도 어려서 할 수 있는 생각과 마음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학부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리니까 어린 생각을 한다. 어리니까 화장실을 가려고 복도에서 달리기 시합을 한다. 어리니까 의자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고, 어리니까 나와 친구들에게 말실수를 한다. 가르쳐주면 된다. 다음엔 그러지 않도록, 다른 곳에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에 단 두 시간이다. 내가 아이를 바꾼다면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나 자신도 바꾸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데, 나와 보내는 두 시간이 아이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내가 감히 아이를 바꾸겠다는 마음을 먹어도 될까? 글 쓰는 법만 잘 가르치기도 어려운데 말이다.


  초등학생을 가르친다는 건 균형 잡기 연습이다. 보육과 교육 사이. 나는 애매한 위치에 서 있다.


작가의 이전글 삶은 잠수가 아닌 헤엄이기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