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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던 Jul 27. 2023

투잡의 열정을 귀여워하지 마시오.

퇴근 후 무언가를 하겠다는 결심이 얼마나 비장한 것인지 아시오?







니들이 몰 알아?(쎈 척 입니다, 여러분)



'본업이 있으시네요?' 아니 선생님,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에 차등을 두시려는 겁니까? 잔인도 하여라. 본인은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웃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하고 싶어.'라는 욕망이 역마 행진을 하면 한 번에 두세 개 종목의 출발선 위에 서고 마는데 그중 트로피를 높게 들어 올려 본 적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원래 인생에 트로피를 높게 들어 올리는 것은 희소성을 띄는 순간이 아닌가. 아무튼 직업적 수상 여부는 여러 곳에 에너지를 나눠 쓰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는 기가 막히게 샷을 내리지만, 아이스크림을 예쁘게 퍼 담는 건 하지 못하던 30대 카페 아르바이트생, 본인은 10년 동안 머릿속에서 그림만 그려왔던 운동강사를 하겠다며 덜컥 한 학기 등록금의 금액을 지출했다. 아, 물론 벽장 속 귀신처럼 붙어있던 회사는 성실하게 다니면서 말이다. 기세등등 다양한 친구들이 많았지만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그리고 조용히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자격증이 트로피가 되어주진 못했다. 그 어떤 욕심도 없는 나에게 이 자격증을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들겠다는 야욕이 생겼을 때부터 자격증은 트로피로 변모할 잠재력을 상실해 버렸다.


ISTP가 ISTJ가 되진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발군의 계획성까지 끌어모았다. '23년 하반기까지는 운동강사로 핫데뷔를 하고, 24년 7월까지는 운동강사의 입지를 다니고 그 후엔, 대망의 퇴사 버튼을 누르자.' 그 결심이 평생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인스타그램을 개설하게 했고, 지인 대상으로 개인레슨을 영업하게 했으며 사내 동아리를 모집하게 했다. 녹초가 된 몸으로 퇴근을 하는 순간마다 회사에서는 숨만 쉬자라고 그렇게 다짐했으면서 자신이 J로 변태 하지 않았을까, 의심할 정도의 계획이라니. 실상, 나의 MBTI는 ISTj는커녕 INTP가 되었는데.


무척이나 고양되어 있던 의욕이 결국 면접 기회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막상 순위권 경쟁 앞에 서고 나니 모든 것이 무기력해졌다. 마치 다 태운 인센스 스틱처럼 후드득 떨어진 의욕 잔여물이 부유하고 가라앉고 또 부유하고 가라앉고 결국, 누구보다 몰입했던 지난날에 대한 믿음이 그나마 남아있던 불씨를 완전하게 꺼버렸다. 그럼에도 모든 면접 과제를 준비했고 심지어 면접 자리에서는 칭찬까지 들었다. 


"찢었어."


정말 찢었다고 생각했는데 찢은 건 구름 위 쿠션감을 느끼며 방방거리고 있던 기대감.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면접 때로 타임워프를 해봅시다. 


30분 면접 내내 달콤한 말로 설탕 코팅 된 귀는 한 단어를 듣고도 모른 척했다. 찢었어,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에서 눈치 없이 구정물을 흘리고 있던 '부담'이라는 단어. 현재 나의 커리어가 부담된다는 말씀이었는데, 정작 본인은 현 직장에 무게를 두고 있지 않아서 퇴사 준비가 되어 있었단 말이다! 숨만 쉬면 정년까지 탈없이 다닐 수 있는 현 직장을 과감히 때려치우고 0원에서 시작하는 삶을 구축할 만반의 준비 말이다! 모두가 말리는 삶을 살아온 나는 현실을 살아가는데 쫓아야 하는 것들을 적당히 포기하고도 행복할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적당한 포기.'까지만 마음먹은 게 문제일까 싶지만 어쨌든 이런 마음가짐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한 내 탓도 있겠지. 


아, 그리고 진지하게 첨언하건대 본인보다 능력이 훌륭한 강사님이 채용되셨을 거라고 믿는다. 다만, 본인의 마이너스 요인에 현재 커리어가 어떻게든 작용했다면 그것은 아주 조금, 어쩌면 그 보단 새끼손톱만큼 조금 더 억울하다는 것뿐. 나는 지금 인생 최고의 열정맨이 되었으니까!


왜 갑자기 꼬리내리냐고 물으신다면,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원망 섞인 항거가 아니라 간절한 요청이니까.

제발, 물어봐주세요. 얼마나 열정을 수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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