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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던 May 21. 2024

그게 뭐든 낭만이었나.

11월과 12월 사이, 넷.




    






    비혼이라는 표현보다는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 정도가 나의 정체성을 더 뚜렷하게 담아낸다. 대체 무슨 차이가 있나 싶으신 분들을 위해 부연설명을 덧붙인다. 어학사전에 '비혼'을 찾아보면 결혼을 하지 않음 외에 다른 뜻이 없다. 허나 사회적으로는 보다 풍부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지닌 상태라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결연한' 의지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다만 결혼을 해야겠다는 대단한 의지도 없을 뿐.


    사실은 무념무상의 삶을 살고 있는 얼레벌레 인간일지도...?


    지금의 연애 상대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에 대한 가능성이나 로맨틱한 환상보다는 연애를 하고 싶다는 딱 한 가지에 집중했다. 단순하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구나, 에서 시작하는 연애 말고 내 마음이 요동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관계 말이다. '그런 사람 쉽지 않지, 탐나는 사람은 다 결혼했다니까.' 귀에 피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결혼 세계관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딱 떨어지는 생각일 수도 있지 않은가. 덤덤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수개월 간 반해 마지않을 사람을 찾아다닐 수 있었던 동력은 세상에 한 가지 세계관만 있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덕분이었다.








돈을 들여 마련한 삼선슬리퍼가 아깝지 않도록 비는 계속 내렸다. 물에 최대한 닿지 않기 위해 발바닥에 온갖 힘을 주느라 딱딱한 슬리퍼 바닥이 발을 긴장시켰다는 건 집에 돌아와서나 깨달았다. 정작 힘이 잔뜩 들어갔던 이유는 ‘이제는 뭘 어째야 하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삼선 슬리퍼를 신고 빗물 웅덩이에 철벅철벅 용감하게 발을 담그는 것뿐이었다. 정신없이 눈 앞을 가로막던 빗줄기 속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나니 베이지 어닝에 우드 프레임을 가진 프로젝트 창이 돋보이는 와인바 앞에 서 있었다.


후보군으로 보여준 곳에 서너번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고 양말이 흠뻑 젖어버렸지만 후회 없을만한 장소였다. 아쉽게도 이 취향의 와인바는 현재 연남동에 남아있지 않지만 나에겐 여전히 그 곳이 이 연애 시작의 '킥'이었다. 


축축한 트위드 셋업을 걸친 채로 의자에 앉아 있으니 밀려오는 찝찝함을 모른채 할 수는 없었지만 비에 젖어 추위에 잔떨림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담요를 가져다 주냐고 물었던 다정함이 좋았고, 담요를 사양하자 볼품없이 달달 떨리는 두 무릎을 잡아주는 과감함이 좋았다. 거기에 슬쩍 열린 창문 사이로 들치는 미약한 빗줄기도 낭만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 날, 언제든지 설렐 준비가 되어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틀이 지난 빼빼로데이를 핑계로 가죽자켓 안 주머니에서 슬쩍 꺼낸 빼빼로에 심장이 간지러웠고,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흡연을 위해 바깥으로 나가 있는 그가 창 사이로 눈을 맞춰 오는 것도 웃음을 건네 오는 것도 견딜 수 없을만큼 좋았으니 말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나는 철저히 돌아버릴 준비가 되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좋아하지도 않는 와인을 홀짝이고 또 홀짝이고 홀짝이고...


목이 탈 때 마다 화이트 와인을 한 모금씩 들이켰을 뿐인데 보틀에 가득했던 알콜은 닳아만 가서 애가 탔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유치한 이야기를 참 많이도 했다. 유치해서 모른 체 하기엔 너무나도 중요했을 '너의 마음은 어때?'식의 대화 말이다. 그 때 30대 후반의 연애는 더 팽팽하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전과는 다르게 무엇하나 직접적이지 않았다. 이제와 그는 나의 마음이 줄곧 중립이어서 어려웠다고 하지만 나는 내 평생 이만큼 마음을 표현한 적이 없었는데 왜 이렇게 반응이 없나를 고민했었다. 


'넌 고백만 하면 되는데 뭘 이렇게 사려?' 이것이 속마음이었다.

물론 그 '고백'이 쉬울리가 없겠지만 말이다.








돌고 돌아 대화 속에 '자만추' 이슈가 튀어나왔을 때 약간의 문제가 발발하고 말았다. 나는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로 그는 자고 만남 추구로 이해한 것이다. 감히 언어의 역사성을 간과하고 만 것이다. 


당시 꽤 오랜 시간 연애를 쉬고 있던 탓에 연애의 어리숙함을 애써 덮고 있었는데 여과없이 숨기고 싶은 사실을 걸려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그는 모르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비로소 내가 연애 어리버리킹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눈치가 없진 않지만 눈치를 보고 싶지 않아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고 그는 직접 말하고 행동하기 보다는 빠른 눈치와 상황파악을 적극 활용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틴더에서 시작한 연애도 별거 없어.
11월과 12월 사이,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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